'사드 보복'으로 끝난 박근혜 전승절 참석中 전승절 외교는 反美 진영 줄 세우기中 서해 인공섬 건설은 남중국해 판박이국제법·상호주의로 서해 인공섬 대응 필요방중 추진 전 한미 정상회담 일정 확정해야전승절 참석 전제조건은 인공섬 철거 확답
  • ▲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캐나다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6월 16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에 탑승하며 인사하는 모습.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외교'가 오는 9월 초 베이징에서 열릴 중국 전승절(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 행사 참석을 놓고 딜레마에 직면했다. 이번 초청은 단순한 행사 참석을 넘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교적 양자택일 압박이라는 중국 특유의 전략적 계산이 담겨있다.

    중국은 이 대통령에게 '미국의 대중(對中) 견제'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중국과 협력을 확대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서해에서는 불법 인공섬을 건설하며 한국의 해양주권을 압박하는 '화전양면전술'을 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대중 견제를 위해 한반도를 남중국해, 동중국해와 한 작전구역으로 묶는 '원 시어터 구상'을 추진하며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관세 카드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 외교는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충격을 줬던 박근혜 정부 당시의 전승절 참석 때보다 더욱 어려운 시험대에 올랐다.
    ▲ 박근혜(오른쪽 세번째) 대통령이 2015년 9월 3일 오전(현지시각) 중국 베이징 천안문에서 열린 '항일 전쟁 및 세계 반 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해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두번째) 러시아 대통령, 반기문(왼쪽 두번째) UN사무총장 등 각국 정상들과 함께 자금성 망루에 올라 박수를 보내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 교훈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9월 3일 중국 전승절 70주년 열병식에 자유주의 진영 정상으로는 유일하게 참석해 권위주의 국가 정상들과 천안문 성루에 올랐다. 중국은 박 대통령을 특별히 예우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과 나란히 배치하며 '한국이 중국에 기울고 있다'는 이미지를 국내외에 각인시켰다.

    당시 박 대통령은 한중 관계를 지렛대로 삼아 북핵 문제 해결에 중국의 협력을 끌어내겠다는 전략적 계산을 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시 주석과 여섯 차례나 정상회담을 가졌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한국의 중국 주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등을 성사시켜 '역대 최고' 수준의 협력 기조를 과시했다.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을 두고 미국은 겉으로는 "동맹국의 결정은 주권 사항"이라 했지만, 여러 외교 채널을 통해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며 한미 관계에도 미묘한 균열이 발생했다.

    전승절 참석 이후 한중 관계의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2016년 북한이 4차, 5차 핵실험을 강행했을 때 중국은 실질적인 협력을 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가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 결정을 내리자, 중국은 거세게 반발하며 '한한령'(限韓令) 등 전방위 경제 보복을 가했다.

    이로 인해 관광·문화·유통업계가 큰 타격을 입었고 한중 관계는 최악의 국면을 맞았다. 결국 후임 문재인 정부는 중국이 주장한 이른바 '3불'(사드 추가 배치 불가·미국 MD 불참·한미일 군사동맹 불추구) 입장을 밝히며 중국 달래기에 나서야 했다.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은 단기적으론 한중 밀월을 연출했으나, 장기적으론 북핵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얻지 못하고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전략적 입지만 좁히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중국의 유화적 제스처 이면에 숨겨진 전략적 압박 가능성을 냉정히 인식하고 신중히 대응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5월 9일(현지 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승리 80주년(전승절) 기념 열병식을 지켜보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AP/뉴시스

    ◆2025년의 전승절 외교는 '반미 진영 줄 세우기'

    2015년 중국 전승절 외교가 환대와 과거사 문제를 고리로 한국을 유인해 미·일과 거리를 두게 만드는 '당근 전략'이었다면, 2025년 전승절 외교는 훨씬 전략적이고 공세적인 '줄 세우기 외교'의 성격이 강하다.

    최근 중국은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GSI),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를 강조하며 미국 패권에 맞서는 다극질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은 2025년 전승절 행사를 사실상 진영 재편의 도구로 활용할 전망이다. 북한 김정은, 러시아 푸틴 등 권위주의 국가 정상뿐 아니라 여타 국가 정상들까지 초청해 반미 진영을 과시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전승절 초청 의사를 전달하며 한국의 참석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한국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연계해 시진핑 방한을 성사시키는 카드로 전승절 초청을 활용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는 한미동맹과 중국 사이에서 더 큰 고민을 야기할 수 있다. 중국은 "우리가 전승절에 한국을 환대하면 한국도 우리의 APEC 참석에 호응하라"는 식의 접근을 시도할 수 있다.

    중국은 한국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관세 압박으로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현실을 이용해 한국을 자국 편으로 끌어당기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

    시 주석은 최근 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국의 고율 관세 정책에 공동 대응하자"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전했다고 한다. 2015년에는 한국이 '실용외교'를 기치로 주체적으로 중국 행사에 참석한 모양새였다면, 2025년에는 중국이 노골적으로 한국을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행사를 지렛대로 활용하는 모양새다. 결국 2025년 전승절 참석 여부는 한국 외교의 진로를 가를 중대 행사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 한중 양국의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이 겹치는 서해 잠정조치수역에 중국이 2022년 일방적으로 관리시설이라며 설치한 석유 시추설비 형태의 구조물 사진을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이 24일 공개했다.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서해에 인공섬 세우는 中, '남중국해식' 전략 되풀이

    전승절 초청과 같은 중국의 우호적인 제스쳐 이면에는 서해에서의 '기정사실화(fait accompli) 전략'을 통한 압박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중국은 한국과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경계가 확정되지 않은 서해상 잠정조치수역(PMZ)에 일방적으로 대형 해양 구조물을 설치해 왔다. 2018년 '선란(深藍) 1호'를 시작으로, 2022년 석유 시추선 개조 구조물, 2024년 '선란 2호' 등 현재까지 3기의 시설물이 확인됐고, 서해에 대형 해상구조물을 총 12기까지 확대 설치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2022년에 설치된 가로 100m, 세로 80m에 높이 50m 규모의 고정 시설물의 실체는 중동 지역에서 사용되다 폐기된 해상 석유시추선을 개조한 사실상의 인공섬으로 확인됐다.

    중국은 '어업용 양식시설'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구조물은 중앙에 거대한 안테나탑까지 갖추고 있어 단순 양식 시설을 넘어선 용도로 활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우리 해양수산부도 "해당 구조물은 개조 전까지 실제로 석유 시추선으로 쓰였다"며 "축구장 크기의 작은 인공섬이라 할 수 있다"고 확인했다.

    선란 1·2호는 직경 70m, 높이 71m에 이르는 반잠수식 대형 철골 해상 플랫폼임에도, 중국은 이들을 해상 양식장 시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정보 당국과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조물이 중국 해군 및 해경의 전초기지나 관측기지 등 복합적 목적에 쓰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위성 사진 분석에 따르면, 선란 구조물은 6층 규모의 작업 공간을 갖추고 있어 추후 양식 목적 외에 확장된 기능을 수행할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외교부는 "해당 시설은 중국 연안 수역에 위치한 심해 어류 양식 시설로, 중국의 합리적 해양 자원 이용"이라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하지만 정작 우리 측의 현장 접근조차 중국이 제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2월 한국 해양과학조사선이 이 구조물 인근 해역 조사를 시도했으나, 중국 해경선이 막아서며 "중국 양식장 시설 근처에 접근하지 말라"며 사실상 한국 선박의 출입을 봉쇄했다.

    나아가 중국 해군은 지난 5월 최신형 항공모함 '푸젠함'의 서해 훈련을 감행하면서 이 일대 잠정 수역에 다수의 항행금지구역을 일방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조치가 우리 어선과 함정의 항행을 물리적으로 저해하고 정당한 해양 권익을 침해한다고 보고 구조물 철거와 철수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측은 한중 어업협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의 이런 서해 인공섬 전략은 남중국해에서 사용한 수법과 유사하다. 중국은 2013년부터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난사군도)에서 암초들을 대대적으로 매립해 7개의 인공섬을 건설했고, 현재 이들 인공섬 총면적은 18.8㎢에 달한다.

    이렇게 확보한 인공섬들에 활주로와 미사일 기지, 레이더 등 군사시설을 갖춰 실효 지배를 강화한 결과, 중국은 현재 남중국해 전체 면적의 80% 이상을 사실상 자국 해역이라고 주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애초에 남중국해에서도 중국은 처음에는 '기상관측소'나 '어민 피난시설' 등의 민간 용도 명분으로 구조물을 세웠다가 점차 군사기지화하는 전술을 구사했고, 이번 서해에서도 '양식장' 명목으로 유사한 '회색지대' 전술을 펼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승절 초청장과 같은 중국의 유화책이 동시에 진행 중인 해양·안보 분야 압박을 상쇄할지는 미지수다.
    ▲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 출입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서해 압박에 국제법과 상호주의로 맞서야

    중국의 전승절 초청은 한국에 양자택일을 압박하는 성격이 강하다. 참석 시 중국의 환대나 경제적 약속은 유동적 이익인 반면, 동맹과 국제 신뢰를 잃으면서 치러야 할 외교·안보 비용은 중국의 '서해 내해(內海)화'에서 보듯 지속적이고 클 수 있다. 중국의 복합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원칙을 견지하면서 비례적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외교적으로는 중국이 주장하는 해당 구조물이 '중국 관할 해역 내 합법 시설'이 아니라 양국이 분쟁 중인 해역에 통보 없이 설치된 불법 시설이며 '현상 변경' 시도임을 국내외에 명확히 제기함으로써 국제법에 기반한 원칙을 분명히 천명할 수 있다.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나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법적 대응도 하나의 방안이다. 중국이 관련 분쟁의 강제 관할권을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은 높지만, 법적 조치는 분쟁의 평화적 해결 의지를 국제사회에 전달하고 외교적 압박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2013년 필리핀이 남중국해 문제를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제소해 2016년 승소한 사례처럼 국제법적 판정은 국제적 지지를 얻는 근거가 된다.

    군사·안보 측면에서는 신중하면서도 명확한 대응책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추가로 구조물 설치를 시도하면 우리 군과 해경이 공동으로 현장에서 설치를 물리적으로 저지하거나 지연하는 방안도 검토 가능하다.

    윤석열 정부에서 국방부 차관을 지낸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4월 언론 기고에서 상호주의에 입각한 행동원칙과 비례성의 원칙을 강조하며 "PMZ에 구조물을 건설한다면 양측이 등거리 등면적의 비례원칙에 합의해야 한다. 중국이 어느 위치에 구조물을 세운다면 우리도 유사한 위치에 같은 크기로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래야 일방적인 해상 지배력 공고화를 막을 수 있다"고 제언했다.

    또한 국제 공조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과의 갈등 국면에서 한국이 고립되지 않도록 미국, 일본을 비롯한 주요 우방국 및 다자 체제와 협력은 필수다. 한미 양국은 인도·태평양 전략 차원에서 중국의 해양 팽창을 견제하는 공동 입장을 취할 수 있고, 한미일 안보 협력은 동중국해와 서해의 안보를 연결 짓는 광역 억제망으로 기능할 수 있다.

    나아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나 유엔해양법회의 등에서 이번 사안을 공론화해 규범에 기반한 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국제적 지지를 모으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호주, 인도, 유럽연합(EU) 등과도 해양 안보 대화를 통해 중국의 일방적 조치에 우려를 표명하고 협력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이러한 다층적인 공조는 중국에 대해 국제사회가 주시하고 있다는 압력을 가해 일방적 행동의 대가를 높이는 효과를 낼 것이다.

    ◆방중 전 한미 정상회담 일정 확정하고 인공섬 철거 확답 받아야 

    익명을 요청한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의 방한 취소 등 최근 한미관계에 우려스러운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며 "이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불참에 이어 중국 전승절 참석을 추진하는 것은 또 다른 전략적 실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최소한 한미 정상회담 일정을 확정한 후 미국의 양해를 얻어 중국을 방문하고, 시진핑 주석의 APEC 참석과 서해 불법구조물 철거에 대한 확답을 받아오는 조건을 내걸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한미관계가 견고하다면 중국의 서해 인공섬 설치에 우리도 맞대응 시설물을 설치하는 등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하지만, 한미관계가 약화되면 이런 대응은 불가능하다"며 "미국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대만이 중국의 공격을 받지 않는 이유와 같은 맥락에서 한국 역시 한미관계를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로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