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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파트 공사현장. ⓒ뉴데일리DB
"사망사고 당연히 없어야죠. 그렇다고 매출 3%를 내라는건 그냥 건설업 접으라는거에요." (대형건설 A사 관계자)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은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원칙을 따르고 있다. 한번 판결이 난 사건에 대해서는 다시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국가 기본법칙이자 최상위 법인 헌법에서도 보장돼 있다. 헌법 제13조 제1항을 보면 동일한 범죄에 대해 거듭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적시돼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법령이 건설업계만은 빗겨간 모양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은 근로자 사망사고시 시공사(건설사)에 매출액 3%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하는 '건설안전특별법안'을 발의했다. 이미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등 관련법안이 겹겹이 존재하는데도 추가로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의원은 안전관리 의무를 위반해 인명사고가 발생한 경우 건설사업자, 건설엔지니어링사업자, 건축사 등에 1년이하 영업정지 또는 매출의 3%이내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건설안전특별법안을 대표발의했다.
또 발주·설계·시공·감리자 등 건설공사 참여자가 사망사고에 연루될 경우 최대 7년이하 징역이나 1억원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형사처벌 조항도 담겨 있다.
이 같은 법안발의 소식에 건설업계는 '중복규제'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사망사고 관련 법안은 중대재해법과 건설산업기본법(건산법), 건설기술진흥법,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등 4개나 존재하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근로자 사망시 건설사 경영자를 형사처벌토록 하고 있고, 건산법도 책임 사업자에 대한 영업정지 조항이 명시돼있다. 또한 건설기술진흥법은 벌점,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은 선분양 제한을 각각 규정하고 있다.
이번 법안 발의를 두고 업계에서 겹겹이 규제라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는 이유다.
처벌 강도도 전례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건설사 규모나 실적에 따라 다르지만 연간 매출액 3%는 그해 영업이익과 맞먹는 수준이다.
1년간 벌어들인 돈을 몽땅 과징금으로 내라고 하니 건설사들의 불평, 불만도 이해는 할만하다.
물론 이같은 고강도 처벌은 건설업계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대형사, 중견사를 가리지 않고 잊을만 하면 터지는 사망사고 탓에 건설업에 대한 신뢰는 바닥에 떨어진지 오래다.
현재로선 건설사들이 다중규제라며 볼멘소리를 내봤자 '방귀 뀐 놈이 성낸다'며 역풍만 맞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채찍만으론 사망사고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용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시공능력평가 20대 건설사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자는 35명으로 직전년 25명보다 10명(25.0%) 증가했다.
2022년 중대재해법이 시행됐지만 사망사고가 줄어들긴커녕 되려 늘고 있는 셈이다. 경영자 처벌도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 과징금을 추가 부과한다고 해서 사망사고가 줄어들리 만무하다.
결국 이번에 발의된 법안은 사망사고 예방이라는 목적 달성엔 실패한 채 건설사들의 공사 참여 기피, 건설경기 위축이라는 부작용만 초래할 공산이 크다.
공사기피 기조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경우 정부 핵심목표인 주택공급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이미 천정부지로 치솟은 공사비와 인건비 탓에 적잖은 건설사들이 정부 공공사업에서 손을 떼고 있다. 이런 상황에 불가항력적 사고까지 모조리 과징금을 부과해버리면 건설사 입장에선 사업 참여에 더욱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더이상의 근로자 사망사고는 없어야 한다. 하지만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
'사후처벌'에만 초점을 맞춘 현 법·제도 방향을 '사전예방'으로 틀어야 한다. 건설사들이 부담하는 안전관리비용에 대한 정부 지원 등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적절한 채찍과 당근이 병행돼야 건설업이 살고 사망사고도 줄일 수 있다.

박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