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美 항모 불법 촬영 유학생 첫 구속中 국가안전부, 관광객 위장 요원 파견간첩죄, 北 한정 … 中 스파이 처벌 난항中 국가정보법 '모든 국민 첩보원화' 논란국내 중국인 유학생 7만 명 돌파 '경고등'
  • ▲ 한국·미국·일본이 처음 실시하는 해상·수중·공중·사이버 등 다영역 군사훈련 '프리덤 에지'(Freedom Edge)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 해군의 제9항모강습단 소속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CVN-71·10만t급)과 이지스구축함인 '할시함'(DDG-97)이 2024년 6월 26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서 출항하고 있다. ⓒ뉴시스

    중국 공산당이 '국가정보법'을 통해 자국민에게 해외 정보 수집과 보고 의무를 부과하며 구축한 전방위적 정보 수집 체계의 실체가 최근 수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드론을 이용해 미군 시설을 불법 촬영한 중국인 유학생들 일부가 지난달 26일 구속됐고, 그로부터 나흘 뒤 주한중국대사관이 자국 유학생들에게 '긴급 주의령'을 내렸다.

    중국 국가정보법의 문제점와 함께 최근 적발된 간첩 행위는 단순히 중국인의 개별적 정보 수집 차원을 넘어 중국 국가안전부와 공안부 등 정보기관이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파견하는 전문 간첩 행위라는 점이 심각한 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즉, 일반 중국 국민은 중국 국가정보법에 따라 잠재적으로 정보 활동에 동원될 수 있고, 국가안전부나 공안부에서 파견된 전문 요원들은 유학생과 관광객 신분으로 위장해 조직적인 간첩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는 간첩법 적용 대상을 '북한'으로 한정한 탓에 사실상 간첩 행위를 벌이는 중국인들을 대부분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 시진핑(가운데) 중국 국가주석 등 최고 지도부가 2024년 7월 18일 중국 베이징의 징시호텔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20기 3중전회) 결의안을 거수로 통과시키고 있다. 당시 3중전회에서 발표된 사안들은 현존 정책에 대한 조정에 불과해 경제 살리기 대안이 제시될 것이라는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 신화통신/뉴시스

    ◆中 유학생, 외국인 최초로 형법상 '일반이적죄' 적용

    중국인 유학생들이 2023년 3월부터 2024년 6월까지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와 부산항에 입항한 미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 등을 9차례 촬영한 혐의로 적발돼 지난달 26일 구속됐다.

    이들이 촬영한 불법 영상물은 사진 172장과 동영상 22개 등 총 11.9GB 분량이다. 더욱이 이들이 마지막으로 드론을 띄운 2024년 6월 25일은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해당 항모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던 날이다. 자칫 한국 정상의 군사 행보가 타국에 감시 당하는 상황까지 초래할 뻔했다.

    범행을 주도한 40대 유학생에게는 외국인에게 사상 처음으로 형법상 '일반이적죄'를 적용했다. 형법 제99조의 일반이적죄는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해하거나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공여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으로, 그간 국내 간첩 사건에서는 좀처럼 적용되지 않던 조항이다.

    경찰은 해당 중국제 드론이 촬영 영상을 중국 내 서버로 전송하는 특성상 우리 군사 안보에 심각한 해악을 끼쳤다고 판단, 이례적으로 일반이적죄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만약 국산 드론을 썼다면 일반이적죄 적용이 어려웠을 것"이라며 '중국산 드론' 사용이 결정적 요소였음을 시사했다. 함께 가담한 30대 중국인 남녀 2명에게는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위반 혐의만 적용했다.

    ◆국내서 잇따르는 中 관광객·유학생들의 군사시설 촬영

    중국인의 군사정보 탐지 시도는 부산 유학생 사건뿐만이 아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4월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간담회에서 해당 사건 이후 최근 1년간 10건이 넘는 유사 사례가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촬영 대상은 군사기지와 전투기, 공항·항만, 국정원 청사 등 핵심 군사·국가 시설에 집중됐다. 촬영자 신분은 관광객 등 일시 방문객과 유학생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특히 지난 3월에는 관광 비자로 입국한 고등학생 두 명이 주한미군 기지가 있는 경기 수원 공군기지 인근에서 고성능 카메라로 F-16 전투기 등을 촬영하다 체포됐는데, 이들 중 한 명의 아버지가 중국 공안인 사실이 드러났다.

    이 청소년들은 수원뿐 아니라 평택의 오산 공군기지, 인천·김포 등 국내 주요 군사시설 4곳과 공항 3곳을 돌며 최신예 F-35 스텔스기 등 수천 장의 사진을 촬영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대사관, 이례적 '주의령' 발령

    이번 부산 드론 간첩 사건 직후, 주한 중국대사관은 이례적으로 자국 유학생들에게 '드론 촬영 주의령'을 발령했다.

    중국대사관은 이들이 구속된 지 나흘 만인 지난달 30일 소셜미디어에 '중국인 유학생을 위한 여름철 안전 수칙'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사진 촬영은 반드시 현지 법률·법규를 준수해야 하면서 드론 사용과 드론을 사용한 촬영에 주의하라"고 전했다.

    이어 "한국법상 군사기지와 군사시설을 임의로 촬영하는 것은 명백히 금지되고 있고, 비행금지구역·촬영금지구역 등 민감한 장소에서는 사진 촬영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중국 당국은 '자국민 보호와 법 준수'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이는 중국인들을 일사불란하게 통솔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사시 이들을 조직적인 정보 수집 활동에 동원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해외 중국인 모두가 첩보원?" … 中 국가정보법의 위력

    중국인이 유학생이나 관광객 신분으로 벌이는 간첩 활동은 전 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우주군 기지, 버지니아주 노퍽 해군 기지, 플로리다 키웨스트 해군기지, 미시간 캠프그레이링 훈련장 등 주요 군사시설에서 중국인 유학생들이 군사시설 촬영과 기밀자료 수집 혐의로 체포됐다.

    호주에서도 군사훈련 경력을 숨기고 학생 비자로 입국하려던 중국 유학생의 비자가 취소됐고,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 연구소에서 기밀 기술자료를 유출하려던 중국인 연구원이 적발됐다. 일본도 중국인이 군 사용 소프트웨어를 불법 구매한 사례가 드러났다.

    이러한 사건들의 배경에는 중국의 '국가정보법'이 있다. 중국 공산당은 2017년 국가정보법을 제정해 "모든 조직과 시민은 국가 정보 업무를 지원하고 협조하며 협력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명시했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국내외 모든 중국인과 기업에 대해 국가 안보와 이익에 관련된 정보 제공을 요구할 수 있고, '국가 안보'의 개념 또한 중국 당국이 필요에 따라 확장 해석할 수 있다.

    즉, 일반 중국 국민은 국가정보법에 따라 언제든 정보 수집 활동에 동원될 가능성이 있고, 국가안전부나 공안부 등 전문 정보기관 소속의 요원들은 유학생 또는 관광객 신분으로 위장해 조직적인 간첩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 국가정보국(DNI)은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국가정보법이 해외에 있는 기업·유학생·교민 등 모든 중국인을 중국 정부의 눈과 귀로 만들었다"고 경고했다.

    중국 당국이 해외 화교 기업인을 통해 상대국의 정·관계 인맥 정보를 빼내거나 유학생 단체를 동원해 현지 시위 현장을 촬영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정보망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된 중국 화웨이의 5G 장비 도입 문제나 틱톡과 같은 중국 소셜미디어의 데이터 유출 우려도 같은 맥락에서 불거진 논란이다.

    중국 정부는 이처럼 법적·제도적 장치를 활용해 전 세계에 촘촘한 정보 수집망을 구축하고 있고, 한국도 중국 정보기관의 활동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현실이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났다.
    ▲ 2019년 11월 전남대에서는 홍콩시위 지지를 밝힌 대자보와 플래카드를 중국인 유학생이 훼손하는 일이 벌어졌다. ⓒ뉴시스

    ◆중국인 유학생 급증, 보안 위협 증가 우려

    특히 현재 한국에 체류하는 중국 국적 유학생 수는 2024년 기준 7만 2020명으로, 전체 외국인 유학생의 34.5%에 달한다. 이는 단일 국가로는 압도적 1위 규모로, 우리 대학 캠퍼스 곳곳에 중국 학생 사회가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의 법과 제도를 고려하면 이들 중 일부가 중국 정보기관과 연결돼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도 최근 한중 관계 개선 움직임에 다시 급증하고 있다.

    ◆韓 간첩법, 北 외 '제3국' 간첩은 처벌 불가

    그러나 한국의 현행 형법 제98조(간첩죄)는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자"만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적국'은 판례상 한국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국가로, 사실상 북한을 의미한다. 6·25 전쟁 이후 현재까지 정전협정 상태인 북한이 유일한 '적성국가'로 간주돼 왔기 때문이다. 

    수원 공군기지 사건의 중국인 청소년들도 군사기지법 위반 혐의로만 입건됐고, 국정원 청사·제주공항 사건 등도 부정한 의도가 드러났음에도 현행법상 북한이 아닌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의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중국인 유학생들의 부산 미군 항공모함 촬영 사건에서도 북한과의 연계가 확인되지 않아 간첩죄 적용이 불가능했고, 군사기지법 및 일반이적죄와 같은 우회적인 조항으로만 처벌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일반이적죄는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해하거나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공여한 자"만을 처벌 대상으로 하기에 북한 외의 국가를 위한 스파이 행위 처벌이 극히 어렵다는 해석상 한계가 있다. 이번 부산 사건은 드물게 일반이적죄를 적용한 사례지만, 근본적인 법적 한계는 뚜렷하다.

    결국 수사기관은 간첩죄가 아닌 군사기밀보호법이나 군사기지법 위반으로만 기소할 수밖에 없고, 그 처벌 수위는 간첩죄(최소 7년 이상 중형)와 비교해 고작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수천만 원의 벌금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우리 군사기밀을 해외에 유출한 중대한 범죄조차 간첩죄 적용이 되지 않아 가벼운 형에 그친 사례가 많았다. 2018년 군 정보요원 명단을 5년간 중국 등에 판 전직 간부나 2020년 중국에 군사기밀을 넘긴 현역 장교도 간첩죄가 적용되지 않아 낮은 형량에 그쳤다.

    이 때문에 간첩죄의 적용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가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OECD 38개 회원국 중 간첩죄 대상을 '적국'으로 한정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며, 미국·일본 등 대부분 국가는 모든 외국을 대상으로 한 포괄적 간첩죄 규정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 국회에서도 2021년 이후 간첩죄 적용 대상의 확대를 위한 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으나 본회의 통과에 이르지 못했다. 2024년 1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에서 관련 개정안이 한 차례 의결됐지만, 본회의 처리는 여전히 정체된 상태다.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간첩죄 적용 대상 확대가 표현의 자유와 신체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고, 중국 등 제3국과의 외교 마찰 우려가 있다"며 반대 의견을 표명해 왔다.

    하지만 변화한 국제적 안보 환경을 고려할 때 법 개정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종석 신임 국가정보원장은 지난달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에서 "현행 간첩죄가 북한만을 적국으로 상정하고 있어 북한 외 국가를 위한 간첩 행위를 처벌할 수 없는 심각한 공백이 있다"며 "오늘날의 안보 현실은 북한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안보 위협 요인으로 대두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밝혔다.

    경찰청 공안문제연구소·치안정책연구소에서 25년 동안 안보대책연구관으로 근무한 대공 전문가인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최근 사건들은 중국 정보기관의 조직적인 지휘하에 진행된 것이며 중국이 한국 간첩법의 허점을 최대한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 원장은 뉴데일리에 "이런 간첩 행위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중국 국가안전부와 공안부가 유학생과 관광객으로 위장한 요원을 한국에 파견한 결과"라며 "중국은 '적국'이 아닌 외국을 위한 간첩 활동을 처벌할 수 없는 한국 간첩법을 악용해 공공연하고 조직적으로 간첩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번 드론 촬영 사건에서 간첩죄가 아닌 일반이적죄가 적용된 이유도 바로 이 법적 한계 때문"이라며 "한국의 간첩 관련 법제는 73년 동안 유지돼 온 낡은 법이다. 이를 시대 변화에 맞게 조속히 개정해 외국 간첩 활동을 제대로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만 안보와 국가 기밀 보호가 가능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조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