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운동권 스타'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86 맏형' 우상호 정무수석 … 정청래 당권 도전86세대, '용퇴론' 풍파 겪고도 정치 일선 등장"86세대 자주 반미 인식 … 국제 정세와 엇박자"
  • ▲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선서를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좌파 진영 주류 기득권인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이 다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한때 세대교체론에 직면해 청산 대상으로 지목됐으나 아직도 여권 주요 요직에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반미 자주 등 특정 이념에 경도된 86세대가 정치 일선에서 아직도 활발히 활동하는 것을 두고 정치를 퇴행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8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30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의 재산·학위 의혹 등을 문제 삼으며 임명에 반대하고 있지만, 현재 민주당 의석수라면 야당의 협조 없이 인준이 가능하다.  

    '86세대 운동권 스타'였던 김 후보자는 19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하며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전국학생총연합 의장을 지냈다. 그는 1985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서울 지역 5개 대학의 학생 70여 명은 미국문화원을 기습 점거해 사흘 간 농성을 벌였다. 이 사건으로 일부 학생들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김 후보자는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32세 나이로 국회 입성에 성공하며 최연소 국회의원 타이틀을 얻었다. 하지만 두 번의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18년 동안 정치 낭인 생활을 하며 풍파를 겪기도 했다. 이후 2020년 21대 총선에서 당선돼 정치에 복귀한 김 후보자는 신(新)친명(친이재명)계로 떠올랐다. '이재명 2기' 체제에서는 수석최고위원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이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활동했다. 

    최근 국회와 대통령실의 가교 역할을 맡은 우상호 정무수석은 '86세대 맏형'으로 불린다. 우 정무수석은 80년대 대표적 학생 운동권 단체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1기 부의장 출신이다. 그는 지난해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으나 이재명 정부에 복귀한 뒤 서울시장과 강원도지사 출마 후보군으로 꼽히고 있다.
    ▲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 참배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건국대 84학번 출신인 정청래 의원은 이 대통령 뒤를 이어 민주당 당대표 자리를 노리고 있다. 그는 1989년 주한미국대사 관저 점거 사건에 가담했다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현주 건조물 방화예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 처분을 받았다.      

    여대야소 정국에서 정 의원이 당권을 거머쥐면 86세대가 입법권을 장악하는 의미를 갖는다. 여기에 이 대통령이 책임총리제를 약속한 만큼 김 후보자 임명이 이뤄지면 정부 권력 일부는 86세대에 넘어가는 꼴이 된다.

    이 외에도 정부 주요 부처인 법무부와 기획재정부 장관에 각각 86세대인 윤호중 의원과 김태년 의원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윤 의원은 19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의 폭행 주도자로 지목돼 징역형을 선고받고 이후 사면복권됐다. 김 의원은 경희대(수원캠퍼스)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전대협 1기 상임운영위원 출신이다.    

    86세대는 민주화 운동 경력을 발판 삼아 제도권 정치에 진입해 오랫동안 좌파 진영 기득권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들의 과잉된 이념, 권위주의, 패거리 정치 등이 문제점으로 꼽히면서 끊임없이 세대교체론이 제기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박지현 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2022년 '86세대 용퇴론'을 공개적으로 언급해 내홍에 불을 지폈다. 당시 박 전 위원장과 같이 공동비대위원장을 맡았던 윤호중 의원이 회의 도중 박 전 위원장의 용퇴론에 반발하며 책상을 치고 나간 일은 유명한 일화다.  

    학생운동권에 몸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이 대통령은 일찍이 86세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2024년 당대표 시절 민주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86세대 용퇴론'에 대해 "민주화 운동을 한 게 잘못한 것도 아니고 잘라야 할 이유인가"라고 반문했다. 

    86세대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끈끈한 유대감도 엿보인다. 정청래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파행으로 끝났음에도 "인사청문회 합격을 축하한다. 총리 잘 하시라"라고 했다.

    82학번 출신으로 반미 성향 조직 '삼민투' 연세대 위원장을 지낸 박선원 의원은 지난 24일 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성경책을 펼치고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후보자가) 엄청난 역경을 이기면서 이 구절을 몇 번이나 되새겼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대선 전인 지난 5월 86세대의 좌장격인 송영길 소나무당 대표를 면회했다. 송 대표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1심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상태였다. 김 후보자의 면회 이후로 여권 지지층은 '송영길 사면론'을 띄우기 시작했다.  

    86세대이며 민족해방(NL) 계열 운동권 출신인 민경우 시민단체 길 대표는 86세대가 정치 일선에 등장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86세대 운동권이 학생운동 시절 경도된 특정 이념 성향이 시대적 흐름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민 대표는 "86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집단적 시대 인식은 두 가지다. 자주 반미와 경제적 재분배"라며 "2025년 국제 정세와 엇박자가 날 가능성이 크다. 대북 화해나 대미 자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제적 재분배는 시대가 안정됐을 때 필요하지만 지금은 경제가 성장해야 하고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라며 "분배 위주의 경제관은 새로운 시대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반면 86세대가 우려할 만큼 세력을 형성하고 있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민주당 청년대변인 출신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 소장은 "김 후보자 외에는 86세대가 정치 일선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보기 어렵다"며 "우상호 정무수석보다 직급이 높은 97세대(90년대 학번·70년대생) 강훈식 비서실장이 더 큰 역할을 맡고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정청래 의원도 86세대 정체성을 이용해 당대표를 도전한 것은 아니다"라며 "86그룹이 하나로 모여 그것을 지렛대로 당대표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에 출연해 "국민께서 비판하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며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지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