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모녀 '유언장' 고발 '불기소·무혐의' … '정당성' 잃어구광모 회장, 3명 아닌 60여 계열 290개 해외법인 27만 가족이 먼저유언장 없이 메모 두 장 남기고 떠난 '화담(和談)' 참뜻 다시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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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의도 LG 트윈타워 모습. ⓒ뉴데일리
거칠게 흔들리고 있는 LG의 가풍 '인화(人和)' 정신이 새로운 변곡점을 맞고 있다. 그간 오해를 접고, 유언장조차 남기지 않은 화담(和談) 고(故) 구본무 선대 회장의 참뜻을 바로 세울 것인지, 또다시 분쟁의 소용돌이로 끌고 들어갈 것인지 갈림길이다.
화담의 부인이자 구광모 회장의 모친인 김영식 여사와 장녀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가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구광모 회장 친부, 고 구본무 회장 동생)과 하범종 LG 사장을 고발한 사건이 경찰과 검찰에서 잇따라 '불기소', '무혐의' 결정을 받았다.
최근 서울서부지검은 구본능 회장과 하 사장이 특수절도·특수재물손괴 혐의로 고발된 사건에 대해 '혐의없음'으로 처분했다. 앞서 경찰이 송치한 사건의 기록을 검토한 결과 증거가 불충분해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 마포경찰서 수사과 역시 같은 결론을 낸 바 있다. 2024년 9월 고발장이 접수된 이후 피의자 및 참고인 조사, 현장검증 등 수사를 진행한 끝에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고발인 측의 이의신청으로 사건은 검찰로 넘어 간 바 있다.
당시 김영식 모녀 측은 구 회장과 하 사장이 선대 회장의 곤지암 별장과 여의도 LG트윈타워 집무실 개인금고를 무단으로 열어 유언장을 가져간 뒤 고인의 뜻과 다르게 유지를 전달했다고 주장해 왔다.
경찰은 △모녀 측이 금고 안 물품의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한 점 △구본능 회장이 금고를 연 사실을 당시 이들에게 알린 점 △모녀 측이 금고를 연 이유를 묻거나 물품 반환을 요구한 정황이 없었던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특수절도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또 금고 개방 과정에서 위험한 도구를 사용한 정황도 없었고, 이후 정상적 작동한 만큼, 특수 특수재물손괴 혐의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쉽게 말하면, 고발 내용 자체가 틀렸거나 사실관계가 틀리지 않았더라도 법적 평가에 있어서 위법이 아니라는 뜻이다.
화담 고 구본무 선대 회장은 생전에 유언장이 아닌 메모지 두 장만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2017년 서울대병원 입원실에서 악성 뇌종양의 일종인 교모세포종 수술을 앞두고 당시 재무관리팀장인 하범종 전무(현 경영지원부문장 사장)를 불러 수술이 잘못될 것에 대비해 두 가지 당부사항을 전한다.
하나는 '수술이 잘못되더라도 연명치료를 하지 말라'는 것과, '본인 유고 시 양자인 구광모 당시 상무에게 경영권 재산을 전부 넘기라'는 내용이 담겼다. 하 전무는 그 내용을 담아 정리했고, 수술에 들어가기 전 화담의 자필서명을 받았지만, 첫 수술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1차 수술 8개월 후 병이 재발해 12월 재수술받을 때 화담은 다시 한번 하 전무에게 1차 수술 때 작성한 메모에 대해 '그대로 진행하면 된다'라고 재확인했다는 게 소송 과정 중 하 사장의 증언이다.
화담 타계 직후 유족들은 경영권 승계는 구광모 회장으로 한다는 데 동의했다. LG그룹은 1947년 창업 이후 LG家의 원칙과 전통을 바탕으로 단 한 차례의 분쟁 없이 '연암 구인회 창업회장→상남 구자경 회장→화담 구본무 회장'으로 경영권 재산은 그대로 물려져 왔다.
구광모 회장 역시 이 같은 전통에 따라 2018년 6월 취임한다. 원래대로라면 화담이 남긴 11.28% 지분 전부를 구광모 회장이 받아야 했지만, 5개여월 동안 수차례 협의를 통해 두 여동생에게도 각각 2.01%(당시 약 3300억), 0.51%(약 830억)를 나눴다.
만약 화담이 유언장을 남겼더라면 그대로 유지를 받들면 되는 것이지, 수개월간 협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누가 봐도 협의 과정을 통한 합의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세 모녀는 '유언장이 없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상속재산을 다시 분할하자'는 소송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소송과정에서 나온 증언을 토대로 존재하지도 않는 유언장을 훼손했다고 주장하며 고발장을 제출했지만 모두 '불기소',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LG 승계자는 의무만 있다. 경영권 주식은 소유할 수 있지만 단 한 주도 절대 처분할 권리가 없다. 그대로 다시 물려 줘야 할 문중 선산(先山)의 성격이다. 세모녀의 주장대로라면 화담 승계 과정에서, 훤미, 본능, 본준, 미정, 본식 등 4남2녀가 지분을 나눴어야 했고 지금의 경영권 유지를 위한 지분은 남지도 못했다.
75년 동안 이어져 온 LG의 상징인 '인화' 정신은 화담 고 구본무 회장 귀천(歸天) 5년 후인 2023년부터 지금까지 가족간 싸움으로 얼룩이 짙어지고 있다.
법적 제척기간인 3년을 훌쩍 넘어 '유언장이 없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상속재산을 다시 분할하자'라는 가족 간 소송은 그동안 LG家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다.
기업 후계 구도에서 많은 기업이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최근에도 여러 기업에서 진행 중이다.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한다. 3명의 가족이 우선인지, 60여 계열사 290여 해외법인 등 27만 가족이 우선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땐 초심으로 돌아가 보면 답이 보인다.
이번 LG 가족간 싸움의 해결책은 멀리 있지 않다. 이미 LG家 역사에 뿌리 깊이 새겨져 있다. 경남 진주 지수면 승산리 모춘당에는 '형제간과 종족 사이에는 서로 좋아할 뿐 따지지 마라', '작은 분을 참지 못하면 마침내 어긋나게 된다', '선대 훈계를 삼가 이어서 바르게 할 뿐 변하지 말라' 등 10개 덕목이 기둥을 떠받치고 있다. 가족은 서로 좋아만 해야지 싸워서는 안 된다.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사업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가족 간 진흙탕 싸움으로 LG 브랜드 가치와 주주가치 훼손은 안타깝다. 하루빨리 사안을 종식하고 기업 본연의 활동에 집중해야 한다.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소모할 때 미국의 통상환경은 강화되고, 중국의 레드테크는 급성장 중이다. LG가 본연의 기업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방향 전환이 절실하다.
더 이상 억지와 망신 주기는 멈춰야 한다. 멈출 수 있는 게 진정한 용기이자 그동안의 상처를 감싸 안을 수 있는 동력이 된다. 너무나 당연해 유언장조차도 남기지 않은 화담의 참뜻과 세차게 흔들렸던 LG 가풍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골든타임은 바로 지금이다.

최정엽 산업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