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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가덕도신공항 사업에서 철수한 현대건설에 대해 '제재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하자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앞서 현대건설은 항공 안전사고 문제로 국토부 측에 공사기간을 2년 더 연장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국토부는 이를 단칼에 거절한 바 있다. 이에 현대건설은 짧은 공기로 인한 품질저하에 따른 안전문제를 염두해 사업철수라는 고육지책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를 두고 국토부 측이 '제재'라는 칼을 들이민 것이다.
지난 2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박 장관은 국가입찰에 참여했다가 철수한 현대건설에 페널티를 부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현대건설의 행위가 국가계약법 등의 제재대상이 되는지 부처간 면밀히 들여다 보고 있다"고 답했다.
여기서 언급한 제재란 공공공사 입찰제한을 의미한다. 가덕도신공항 사업지연 책임을 물어 일정기간 정부 발주사업에 발을 못 들이게 하겠다는 것이다. 컨소시엄 주관사이자 건설업계 맏형격인 현대건설을 시범케이스로 삼아 타건설사에도 재갈을 물리려는 심산이다.
하지만 사업이 추진된 일련의 과정을 뜯어보면 정치권과 국토부의 처벌 협박은 그야말로 '적반하장'이다.
가덕도신공항 사업은 부산 가덕도 일대 666만9000㎡ 부지에 활주로와 방파제 등을 포함한 공항시설 전반을 짓는 프로젝트다. 사업비만 10조5000억원으로 공공턴키(일괄공급)방식 사업중에선 역대 최대 규모다.
당초 이 사업은 2006년 노무현 정부때 처음 논의되기 시작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사업성 부족을 이유로 백지화됐다. 이후 박근혜 정부는 기존 김해공항 확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실상 폐기됐던 사업이 부활한 것은 문재인 정부때였다. 2021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부산 표심을 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공항건설을 밀어붙였다.
민주당은 앞서 2020년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등을 골자로 한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을 당론으로 발의했고 이듬해 2월 해당법안을 국회 통과시켰다.
사업성 부족으로 백지화됐던 사업이 정치논리와 포퓰리즘에 휘둘려 졸속으로 재추진된 것이다.
단순히 '돈'을 떠나 안전성 문제도 심각했다. 가덕도 신공항은 전체 면적 59%가량이 해상매립을 통해 조성된다. 쉽게 말해 바다를 흙과 콘크리트로 메우고 그 위에 공항을 건설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 경우 해저지반 침하로 인해 공항 전체가 조금씩 내려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바다를 메운 인공섬 위에 건설된 일본 간사이공항은 1994년 개항후 6년만에 11m나 가라앉았고 현재도 매년 6㎝씩 침하하고 있다.
2018년 태풍 '매미'가 덮쳤을 땐 활주로가 뻘로 뒤덮였고 계류된 항공기 엔진까지 침수됐다.
가덕도신공항은 간사이보다 입지조건이 더 불리하고 지반침하 위험성도 크다는게 건설업계 지적이다.
가덕도 경우 침하위험이 높은 해저 연약지반 두께가 60m로 간사이공항의 세배에 달하고 태풍이 이동하는 주요 길목에 위치해 침수 위험마저 높다.
당시 주무부처인 국토부도 문제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국토부는 안전성·시공성·운영성·환경성·경제성·접근성·항공수요 등 7가지 측면에서 공항 건설이 불가능하다며 '가덕도신공항 7대 불가론'을 국회에 제시하기도 했다.
그랬던 국토부가 지금에 와서는 안전문제를 방기한 채 시공사의 공기연장 요구를 무시하고 장관은 처벌을 운운하며 책임전가만 하고 있으니 코메디가 따로 없다.
공사난이도와 안전문제를 고려하면 공사기간을 늘려도 모자를 판인데 정부는 되려 개항목표를 기존 2035년에서 2029년 12월로 6년이나 앞당겼다.
2030년 부산 엑스포 유치에 대비한다는 명목 아래 사업목표를 2029년 12월 조기개항, 2031년 준공으로 변경한 것이다. 엑스포 유치는 실패했지만 완공 목표는 그대로 남았다.
공사를 맡은 건설사는 당장 5년안에 공항건설을 마쳐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해당사업의 시공사선정 입찰이 4차례나 유찰된 것도 이 때문이다.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현대건설컨소시엄도 안전상 이유로 공기를 기존 84개월에서 108개월로 24개월 연장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국토부는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
촉박한 공사기간은 안전사고와 공사품질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그 책임은 오롯이 건설사가 떠안아야 한다.
공기연장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업 철수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고육지책'이었던 것이다.
정치권과 국토부는 시공사에 책임을 지울게 아니라 포퓰리즘으로 점철된 가덕도사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수요와 경제성, 안전성 등을 꼼꼼히 뒤짚어본 뒤 필요하다면 사업을 접고 김해공항 확장 등 대안을 찾아야 한다.
나아가 공공사업 전반에 대한 혁신이 필요하다. 짧은 공기와 최소한의 공사비 등 '가성비'만 좇다간 건설사들의 외면을 받고 그로 인해 사업이 공회전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박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