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시민단체도 부실채권 매입 허용키로전문가들 '갸우뚱' … "시민단체가 왜?" 의문"시민단체, 은행서 저렴하게 부실채권 매입 수익화 가능성""시민단체, 경제적 '자생력' 갖게 돼 … 힘 굉장히 세질 것"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015년 서울시청에서 열린 주빌리은행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주빌리은행은 대출을 갚지 못해 가혹한 협박에 시달리는 악성채무자들의 빚을 시민의 기금으로 탕감해주기 위해 설립됐다.ⓒ뉴시스

    금융당국이 이른바 '착한 빚 관리' 명분으로 시민단체 등 비영리단체에 은행의 부실채권 매입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각에선 이재명 대통령의 배드뱅크 추진으로 시중에 급격하게 늘어날 부실채권 물량을 시민단체 등 민간에서 소화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부실채권 매각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확보한 일부 시민단체의 영향력만 비대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금융위, 시민단체에 '부실채권 시장' 빗장 푼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개인금융 채권의 관리 및 개인금융 채무자의 보호에 관한 감독규정' 변경을 통한 비영리법인의 개인 부실채권 매입 허용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행법상 은행 등 금융회사가 보유한 부실채권은 원칙적으로 등록된 대부업자나 유동화전문회사, 그리고 이들 회사가 출자해 만든 특수목적법인(SPC) 등 극히 제한된 기관만이 매입할 수 있다. 

    이는 전문성과 자금력을 갖춘 기관만이 채권 추심 및 관리 업무를 담당하도록 해 무분별하고 불법적인 추심으로부터 채무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하지만 금융위가 추진하는 이번 개정안은 여기에 비영리법인, 즉 시민단체나 사회적 기업 등도 특정 조건을 갖추면 부실채권을 직접 매입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금융위는 이들 단체가 영리 목적의 대부업체와 달리 채무자의 상황을 고려한 상환 유예, 원금 감면 등 유연한 채무 조정을 통해 취약계층의 재기를 도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선한 의도? 글쎄" … 금융권은 '회의론'

    하지만 금융권과 전문가들은 '갸우뚱'하는 분위기다. 당국의 선한 의도와 달리 현실에서는 여러 부작용이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문제는 '전문성'이다. 부실채권 관리는 단순히 빚을 독촉하는 업무가 아니다. 채권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고, 담보물을 분석하며, 법적 절차에 따라 회수를 진행하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금융 영역이다. 수많은 채무자의 각기 다른 상황에 맞는 상환 계획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데는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필수적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민단체가 과연 전문성과 리스크 관리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선한 의지만으로 복잡한 금융 문제를 해결하려다가는 채무자에게 더 큰 혼란을 주거나, 매입한 채권이 다시 부실화돼 손실을 떠안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채권 추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분쟁이나 민원에 대한 대응 능력 부재도 문제로 꼽힌다.

    '시민단체 배불리기' 비판 … 또 다른 권력화 우려도

    일각에서는 이번 정책이 사실상 특정 시민단체에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어주는 '특혜'가 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시민단체가 비영리법인이라 하더라도 조직 운영을 위한 자금은 필요하다. 만약 은행으로부터 헐값에 부실채권을 대량으로 넘겨받은 뒤, 자체적인 추심 활동을 통해 원금 이상의 금액을 회수한다면 그 차익은 고스란히 단체의 운영 자금으로 귀속될 수 있다.

    이는 '공익'을 명분으로 내세운 새로운 형태의 수익사업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정치권의 입김이 센 국책은행이나 시중은행이 '울며 겨자먹기'로 특정 시민단체에 헐값으로 부실채권을 넘기는 관행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 이사장은 "누구나 하고 싶어하는 선망의 대상인 수익 사업을 시민단체에게 허용해 준다는 게 말이 안 된다"며 "시민단체 밀어주기에 불과하며 경제적으로 자생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정식 연세대학교 경제학 교수는 "은행이 부실채권을 담보보다 싸게 시민단체에 매각하게 되면 시민단체는 차익을 얻어 수익을 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예컨대 100만원 짜리 부실채권이 있고, 담보가 70만원이라면, 은행은 통상적으로 담보 70만원을 회수하고 30만원을 손실 처리한다.

    하지만 이젠 은행이 시민단체에 100만원 짜리 부실채권을 50만원에 넘기고, 시민단체는 담보 70만원을 팔아 20만원 수익을 볼 수 있다. 즉 은행이 20만원 더 손해를 보는 구조다.
    ▲ 2015년 5월 서울시 시민청에서 '주빌리 은행' 출범식이 열렸다. 사진은 주빌리 은행 공동 은행장을 맡았던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왼쪽)과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의 모습ⓒ연합뉴스

    성남시절 '주빌리 은행' 도돌이표

    이번 개정안은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 공동은행장을 맡았던 '주빌리 은행(Jubilee Bank)'과 닮아있다. 당시 주빌리 은행의 작동 방식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구조적 취약성과 잠재적 위험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주빌리 은행은 먼저 시민단체와 같은 비영리법인이 금융회사로부터 장기 연체된 부실채권을 액면가의 3~5% 수준이라는 헐값에 사들인다.

    그후 채무자가 원금의 7% 정도에 해당하는 소액만 상환하면 나머지 빚 전액을 탕감해주는 파격적인 방식이었다. 표면적으론 채무자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는 구제책처럼 보였다.

    문제는 "누구 돈으로?"였다. 주빌리 은행의 재원은 국가 예산이 아니었고, 결국 금융회사가 보유한 부실채권을 사실상 헐값에 '기부'하는 방식과 기업 후원금 및 개인 기부금 등 민간 모금에 의존했다. 즉 정부가 추진해야 할 공적 정책의 비용을 민간 부문에 암묵적으로 전가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코로나19 시기에 운영됐던 한국자산관리공사 주도의 '개인연체채권 매입펀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한국자산관리공사의 모델은 비록 운영 기간이 계속 연장되는 등 문제점이 있었지만, 최소한 국가 공공기관이 정해진 예산과 협약에 따라 운영하는 공적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이번 '배드 뱅크' 정책은 이러한 공적 채무조정 기능을 사실상 민영화하고, 전문성이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할 수 있는 수많은 비영리단체에 외주를 주는 형태다. 

    이는 채무조정 과정의 일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관리 감독의 사각지대를 만들 위험이 크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김병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