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방 "아시아도 유럽만큼 GDP 5% 수준으로 끌어올려야"올해 'GDP 2.3%' 61조 책정…5% 수준으로 올리면 132조 달해나토-영국-네덜란드 등 유럽, 점진적 인상 혹은 역효과 우려 목소리폐기 앞둔 전술핵 구입, 핵잠수함 공동운용 등 카드로 '방기' 해소할까
  • ▲ 경기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에서 열린 주한미군 순환배치 여단 임무교대식에서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놓여 있다. 250618 ⓒ연합뉴스

    미국 국방부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으로 국방비를 지출해야 한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소위 '트럼프 청구서'가 날아온 것이다.

    한국은 지난해 GDP의 2.8% 수준인 약 66조원을 국방비로 지출했다. 새 기준대로라면 국방비는 100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일각에서는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나 미국 전술핵을 탑재한 미국 잠수함의 한·미·일 공동운용 등을 조건으로 내건다면 손해 볼 것도 없다는 셈법도 제기된다.

    미국 국방부는 19일 션 파넬 대변인 명의로 된 성명에서 "피트 헤그세스 장관이 오늘(18일 상원 청문회)과 샹그릴라 대화(아시아안보회의)에서 밝힌 것과 같이 우리의 유럽 동맹들이 우리 동맹, 특히 아시아 동맹을 위한 글로벌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며 "그것은 GDP의 5%를 국방분야에 지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파넬 대변인은 "중국의 대규모 군비 확장, 북한의 지속적인 핵·미사일 개발을 고려하면 아시아·태평양 동맹국들이 유럽과 같은 수준과 속도로 국방비를 늘리는 것은 상식적인 조치"라며 "동맹의 안보 이익에 부합하고, 미국 국민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더 균형 있고 공정한 동맹 분담'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현재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회원국들에 GDP의 5% 수준 국방비 지출을 새로운 가이드라인으로 요구하고 있고, 이를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동맹국에도 동일하게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한국은 GDP의 2.32%인 61조2469억원의 올해 국방예산을 책정했다. 이를 미국 측 요구대로 GDP 5% 수준까지 올릴 경우 132조원에 육박하는 액수가 된다.

    외교·안보계에서는 한국의 국방지출을 단기간 내 100조원대로 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헤그세스 장관 역시 전날 의회 청문회에서 유럽의 GDP 5% 국방지출에 대해 '국방비 및 국방 관련 투자'를 포괄하는 수치라고 했다.

    하지만 폭을 국방 관련 투자로까지 확대하더라도 한국 정도의 경제 규모를 가진 중견국이 국방 및 관련 지출을 GDP 5% 수준까지 올리는 일은 여타 분야 예산의 큰 삭감의 뒤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내에서의 합의조차도 도출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 주둔비용 중 한국의 부담액인 방위비 분담금(올해 1조4028억원)의 대폭 증액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으로서는 더 큰 틀에서의 '비용분담'을 요구받게 될 전망이다.

    엄효식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사무총장은 "단기적으로 국방비를 급격히 늘리는 것은 우리나라의 재정 여건을 고려할 때 어려울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주한미군 철수 또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고려, 국방비를 점차 증액해 유럽처럼 2030년까지 GDP 대비 3%로 인상하는 정도가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일단 'GDP의 5%'는 미국의 요구이자 희망사항이며 당장 그것을 관철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정부의 차분한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나토의 경우에도 마르크 뤼터 사무총장은 2032년까지 직접 군사비로 GDP의 3.5%를 지출하고, 나머지 광범위한 안보 관련 분야에 1.5%를 추가 지출해 총 5% 목표를 충족하는 방식을 거론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나토 회원국이 'GDP 5%의 국방비' 기준에 동의하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최근 GDP의 국방비 비중을 2027년까지 2.5%로 높이고 2029년부터인 다음 의회 임기에서는 3%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해 기준 GDP 대비 약 2% 수준인 국방비를 3.5%로 증액하고, 대비 태세를 뒷받침할 관련 인프라에 1.5%를 추가 지출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최근 뤼터 총장에게 보낸 서신에서 GDP의 5% 수준 국방비 지출 목표가 "불합리"하며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50312 AP/뉴시스. ⓒ뉴시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에 따라 일정한 국방지출 증액과 미국산 무기 수입 확대가 불가피할 경우 전술핵 재배치, 잠수함 공동운영 등 국방 관련 기술 확보가 한국 정부의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육군사관학교 출신 안보전문가인 박휘락 국민대 교수는 과거 뉴데일리에 "(트럼프 행정부의 이러한 요구는) 너무 포괄적일 뿐만 아니라 우리 비용 부담이 너무 커질 우려가 있다. 우리의 필요에 따라 한반도에 미국 전략자산을 전개한다면 우리가 다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 비용은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이 아니라 확장 억제에 관한 협정을 새로 만드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한국에 전술핵을 재배치하거나 전술핵 탑재 잠수함을 한·미·일이 공유한다면 방위비 분담금을 5~6배 올려줄 수 있다'는 식으로 한국 정부가 선제적으로 제안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동맹 경시론자인 트럼프 대통령이 밝혀온 한국의 핵전력 강화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은 사실상 '동맹 방기(放棄)'를 시사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역제안은 '동맹 방기' 우려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예산 제약으로 현대화를 포기한 일부 전술핵 무기를 방위비 분담금의 틀 안에서 현대화한 뒤 한국 방어를 위해 쓸 수 있다면 한·미 모두에 '윈윈'이 될 수 있다.

    미국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전략 및 전술핵무기 목적으로 B61 폭탄을 제작했지만, 예산 제약으로 100억달러를 들여 480여기만 정밀타격이 가능하도록 현대화했다.

    이와 관련,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뉴데일리에 "미국의 전술핵 현대화사업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그런데 전술핵 일부는 비용 문제로 현대화하지 않고 폐기한다. 그 폐기하는 전술핵 일부를 방위비 분담금 형식으로 현대화하고 한국만을 위한 핵무기로 보유할 수 있다면 한국에는 '남는 장사'"라고 말했다.

    만약 주한미군의 존재가 대한민국 안보에 필수 불가결하다면 한국이 주한미군 방위비를 전액 부담할 수 있다는 발상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의달 서울시립대 교수는 저서 '신의 개입: 도널드 트럼프 깊이 읽기'에서 "미국을 상대로 매년 30조~60조원의 무역흑자를 내고 있으면서 1억~2억달러의 분담금 증액을 망설이다가 더 큰 것을 놓치는 소탐대실의 잘못을 범할 수 있다"며 "매년 수조원의 선심성 예산을 쓰면서 방위비 분담금은 1000억원이라도 아껴야만 애국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분위기도 되짚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우리나라 유력 정당이 총선 공약으로 내놓은 국민 1인당 25만원씩 민생회복지원금에 들어가는 비용은 13조원으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10년 치가 넘는다"며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한국 정부가 뿌린 코로나 1차 재난지원금은 14조원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방위비 분담금 증액에는 극도로 인색한 한국 정치인과 정부가 자국민에게는 이처럼 돈을 펑펑 쓰는 행태를 미국도 잘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재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