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중개국 통해 미국-이스라엘에 의사 전달"미국이 이스라엘 공격에 참여 안 하면 협상 복귀"걸프 국가에도 "미국이 이스라엘에 휴전 요구하도록 압력 넣어달라"
  • ▲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나흘째 이스라엘과 무력공방을 벌이고 있는 이란이 상호 공격 중단과 핵협상 재개를 원한다는 신호를 제3국을 통해 이스라엘과 미국에 다급히 보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1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먼저 이란은 미국이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공격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미국과의 핵협상 테이블에 돌아오는 데 열려 있는 입장임을 아랍국가 당국자들에게 밝혔다고 WSJ은 소개했다.

    미국과 이란은 애초 오만에서 15일 6차 핵협상을 개최하기로 했지만, 그에 앞서 이뤄진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등에 대한 대규모 공격 이후 협상을 취소했다.

    동시에 이란은 무력공방을 억제하는 것이 상호이익에 부합한다는 메시지를 이스라엘 측에 전달했다고 WSJ은 보도했다.

    그러나 현재 이란 영공에 전투기를 자유롭게 보낼 수 있을 정도로 제공권을 장악한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을 더 파괴하고, 이란 정권을 더 약화하기 전에 무력공방을 중단할 이유는 희박하다고 WSJ은 진단했다.

    실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의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이 파괴될 때까지 공습을 계속하겠다고 밝혔으며 정권 교체가 목표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가능하다고 시사한 바 있다.

    그런데도 이란 측은 이스라엘이 소모전을 감당할 여력이 없어 결국에는 외교적 해결책을 찾게 될 것으로 예상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아랍국가 외교관들의 평가라고 WSJ은 소개했다.

    다만 이 같은 이란 측 판단의 전제는 이스라엘이 이란의 지하 핵시설 등을 파괴하기 위한 후속 공격을 미국 도움 없이 전개한다는 것이다.

    만약 미국이 이란 지하 핵시설 공격을 첨단무기 등으로 지원할 경우 상황은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이란으로서는 미국과의 협상 재개 조건으로 미국이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격을 지원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 아랍국가 외교관은 "이란은 미국이 이스라엘의 방어를 지원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에 물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이란은 미국이 공격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원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아랍 외교관은 "이란은 이스라엘이 장기전에 들어갈 여유가 없으며 결국 외교적 해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 "산속에 있는 포르도우 우라늄 농축시설과 같은 목표를 타격하려면 미국의 군사지원이 필요하다는 점도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 이스라엘 텔아비브 상공에서 이스라엘 방공 시스템 아이언 돔이 이란 미사일을 제거하기 위해 요격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250615 AP/뉴시스. ⓒ뉴시스

    이와 함께 이란은 미국과의 협상 재개에 대한 전망이 서지 않을 경우 핵프로그램을 가속하고 확전에 나설 가능성이 있음을 아랍 당국자들에게 밝혔다고 WSJ은 전했다.

    로이터통신도 이란이 이스라엘과 휴전할 수 있도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해달라고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등 중동 걸프지역 국가들에 요청했다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에 카타르, 사우디, 오만 등은 미국에 핵협상을 재개하고 이스라엘에 휴전을 압박할 것을 호소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아랍 외교관들은 이들 걸프 국가들이 미국이 이스라엘에 전투 중단을 요구하도록 만들기 위해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 국가는 협상이 재개되지 않으면 에너지 관련 자산이 위험해지고 석유시장과 세계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란이 휴전을 요구하는 것은 이란이 전투태세를 재편할 시간을 벌 수 있고, 이스라엘의 작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대 여론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WSJ은 분석했다.

    이 같은 보도가 나온 후 이집트 외무부는 요르단, 아랍에미리트(UAE), 튀르키예, 사우디, 오만, 등 20개 국가의 외무장관 공동성명을 내고 "이스라엘이 13일부터 이란을 공격하고 유엔 헌장을 위반하는 것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적대행위를 중단해야 하며 긴장을 완화해 휴전과 전면적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동성명은 또 "이란 핵프로그램에 대한 지속가능한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면서 미국과 이란의 핵협상 재개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캐나다에서 열리고 있는 주요 7개국(G7) 회의에 참석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공방에 대해 "이란은 이 전쟁에서 이기고 있지 않다고 말하겠다"며 "그들은 너무 늦기 전에 즉시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만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보도된 미국 ABC방송 인터뷰에서 WSJ 보도를 가리켜 "놀랍지 않다"며 "그들은 거짓말하고, 속이고, 미국을 함께 엮는 이런 가짜 회담을 계속하고 싶어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들은 핵무기와 대규모 탄도미사일 무기를 계속 개발하고 싶어 한다"며 "그들은 회담 중에도 이스라엘에 대한 두 가지 실존적 위협을 계속 조성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재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