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12일 중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백두산 서파에서 관광객들이 천지를 살펴보고 있다.ⓒ 이종현 기자

    백두산 정상에 서면 천지 앞에 모인 한국인들의 모습이 신기하다. 저마다 다른 지역에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곳에 모였을까. 마치 갓 태어난 포유류 새끼들이 어미의 젖꼭지를 찾아 헤매듯, 우리도 무언가에 이끌려 이 산을 오르는 것은 아닐까.

    포유류 새끼는 태어나자마자 시각도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채로 본능만으로 어미를 찾는다. 냄새와 온기만을 의지해 생존의 원천을 향해 나아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백두산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과 묘하게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왜 백두산에 오를까. 단순히 높은 산이어서? 천지가 아름다워서? 아니면 교과서에서 배운 '우리나라의 최고봉'이라는 지식 때문에? 고조선 단군이 한민족의 터를 잡은 곳이라? 하지만 정작 그곳에 도착해서 느끼는 것은 그런 이성적 이유를 넘어선 무언가다.

    천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에는 공통된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은 듯한, 아니면 원래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돌아온 듯한 안도감이다. 백두산이 우리에게는 어미의 품과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 지난 12일 중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백두산 서파에서 바라본 천지 모습ⓒ 이종현 기자

    갓 태어난 새끼가 어미의 젖을 찾듯, 우리도 어떤 본능적 그리움에 이끌려 이 산에 오르는 것은 아닐까. 분단된 현실 속에서도, 복잡한 역사의 굴곡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갈망.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원초적 질문의 답을 찾으려는 무의식적 충동.

    백두산 정상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는 왜 그렇게 자연스러울까. 서로 다른 억양으로 말하고,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같은 어미를 찾아온 형제자매 같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아직도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새끼 포유류가 어미의 젖을 찾듯, 우리도 우리만의 젖꼭지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고향일 수도, 정체성일 수도, 평화일 수도 있다. 백두산은 그런 우리의 본능적 탐색이 잠시 멈춰 서는 곳이다.

    산을 내려오는 길, 뒤돌아본 백두산이 어미 산처럼 느껴진다.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그런 존재. 포유류 새끼가 배불리 먹고 어미 품에서 잠들듯, 우리도 이 산에서 무언가를 채우고 돌아간다.
    ▲ 지난 12일 중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백두산 서파에서 바라본 남파ⓒ 이종현 기자

    남파 코스는 백두산을 오르는 세 개의 길 중 가장 신비로운 곳이다. 왜 신비로울까? 바로 하루에 딱 1,500명만 입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500명은 중국인 전용이어서, 사실상 외국인이 갈 수 있는 자리는 1,000명뿐이다. 북파가 하루 16,000명, 서파가 8,000명인 것과 비교하면 정말 까다로운 곳이다.

    남파 코스의 가장 큰 난관은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이라는 점이다. 3일 전 자정에 온라인 예약이 오픈되는데, 거의 3초 만에 매진된다. 그야말로 클릭 전쟁이다. 게다가 들어 가는 과정이 까다로워 현지 가이드는 남파 코스를 말린다. 
    ▲ 지난 12일 백두산 서파산문에서 천지를 향해 올라가는 1,442개계단길을 가마꾼 들이 오르 내리고 있다.ⓒ 이종현 기자

    서파 코스는 트레킹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딱 맞는 길이다. 가장 큰 특징은 1,442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는 점이다. 숫자만 들어도 숨이 막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힘들지 않다.

    서파에서 바라보는 천지는 다른 어떤 코스보다 가깝게 느껴진다. 마치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서 천지를 감상할 수 있다. 5호 경계비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은 서파를 찾는 사람들의 필수 코스다. 서파 코스는 하루 8,000명까지 입장할 수 있어서 남파보다는 예약이 수월하다. 하지만 그래도 1-2주 전에는 예약하는 것이 좋다. 연길에서 3시간 정도 가면 도착할 수 있어서 접근성도 나쁘지 않다.
    ▲ 지난해 6월 11일 북파지역 천문봉에서 바라본 백두산 천지.ⓒ 정산윤 기자

    북파 코스는 백두산을 오르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이다. 왜 인기가 많을까? 바로 가장 편하게 천지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승합차를 이용하면 별다른 체력 소모 없이도 천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래서 노인분들이나 체력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다.

    북파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볼거리다. 천지는 물론이고, 장백폭포를 볼 수 있다. 이 폭포는 천지 북쪽에서 떨어져 나오는데, 높이가 60m나 된다. 몇 백 미터 밖에서도 폭포 소리가 들릴 정도로 웅장하다. 물줄기가 비탈진 벼랑에 부딪혀 물보라가 이는 모습이 특히 장관이어서 '비룡폭포'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온천지대도 북파만의 특별한 볼거리다. 평균 온도가 60~70도인 온천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을 직접 볼 수 있다. 여기서 삶은 계란과 옥수수를 맛보는 것은 북파 여행의 별미다. 
    ▲ 지난 13일 중국 연길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백두산 천지 모습.ⓒ 이종현 기자

    백두산 여행의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보는 백두산의 모습이다. 연길공항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항공편에 탑승할 때는 반드시 좌측 창가 자리를 선택하자.

    비행기가 이륙해서 고도를 높이면, 창밖으로 백두산의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며칠 동안 힘들게 올라서 봤던 천지가 하늘에서는 작은 호수처럼 보이고, 험준했던 산세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지상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백두산의 웅장함과 전체적인 아름다움을 비행기에서만 볼 수 있다.

    특히 날씨가 맑은 날에는 천지의 푸른 물빛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많은 여행자들이 이 순간을 놓치고 후회한다고 하니, 미리 좌석을 선택할 때부터 좌측 창가를 요청하는 것이 좋다. 백두산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받는 특별한 순간이 될 것이다.
이종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