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 퇴직금 '복지금' 운영사, 퇴직자·탈퇴자에 960억 지급 연체납입 누계 4388억인데 잔고는 10억도 안 돼 '기금 고갈'현재 가입자 3만6751명…일시 지급 땐 필요 재원 7482억 필요운영 책임자 "공중분해하고 디폴트 나야 해결" 파산 인정서울시로 번진 책임론…2024년 '복지금 의무가입' 승인 여파
  • ▲ 서울 지역 개인택시 기사들의 퇴직금 역할을 해온 복지금의 운영사 사무실 ⓒ김승환 기자

    서울지역 개인택시 기사들의 퇴직금 역할을 해 온 복지금이 파산 위기에 처한 것으로 확인됐다.

    복지금 운용사는 택시기사를 그만둔 이들과 복지금 탈퇴자에게 지급해야 할 960억 원 가량을 연체 중이지만 잔고는 10억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16일 본보 취재에 따르면 복지금은 근로기준법상 퇴직금 제도 적용 대상이 아닌 개인택시 기사들이 퇴직자에게 십시일반 모아 건네던 전별금에서 출발한 제도다.

    이후 제도화 돼 40여 년간 운영되면서 납입금 환불과 가입 기간에 따른 증액이 적용됐고 사실상 퇴직금 제도로 자리잡았다.

    현재 파악된 복지금 가입자는 3만6751명으로 운영사가 파산할 경우 최대 피해 규모는 7482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복지금 운영 관계자는 "제도를 공중분해하고 디폴트가 나야 해결된다"며 파산 상태임을 사실상 인정했다.

    일각에서는 서울시가 개인택시기사의 복지금 가입을 의무화한 것에 문제를 제기하며 시를 상대로 배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준비하고 있어 논란은 확산될 전망이다.
    ▲ 복지금 관련 내부 자료 내용 (좌) 퇴직자와 복지금 탈퇴자 미지급금 현황 (우) 현재 복지금 가입자들의 납부금액과 지급예상액

    ◆4388억 걷었는데 잔고 10억도 없어…미지급액도 960억 원

    개인택시 기사는 법적으로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퇴직 시 별도의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은 1982년부터 일종의 퇴직금 성격을 지닌 복지금을 설립·운영해왔다.

    초기에는 조합원들이 일정 금액을 모아 퇴직자에게 나눠 지급하는 전별금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후 조합 이사장 선거 과정에서 납입금 환불과 가입 기간에 따른 증액이 선심성 공약으로 등장하고 적용되면서 사실상 퇴직금 제도로 자리잡았다.

    본보가 입수한 복지금 운영사 내부 자료를 보면 지난 4월 말 기준 서울 개인택시 기사 3만6751명이 복지회에 가입돼 있으며 누적 납입금은 4388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퇴직자에게 지급하지 못한 미지급금이 960억 원에 달했다. 개인택시를 이미 그만둔 퇴직자 몫이 약 800억 원, 탈퇴자 환불금이 159억 원이다.

    복지금 운영을 맡고 있는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의 차순선 이사장은 "현재 잔액은 10억 원도 되지 않는다"며 "그마저도 복지회 직원들의 퇴직금이 포함돼 있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매달 조합원들이 납입하는 회비로 미지급금을 충당하고 있지만 탈퇴자가 늘면서 적립금 유입은 줄고 미지급금 누적액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2023년 약 300억 원 수준이던 미지급금은 2024년 들어 960억 원으로 세 배 이상 불어났다.

    ◆투자 없이 불어난 지급 부담…복지금 운용사 대표 "사실상 파산" 인정

    복지금 기금 고갈의 주된 원인은 운용 실패와 지급 수요 급증으로 분석된다.

    운영 초기에는 가입자가 많고 퇴직자는 적어 적립금이 빠르게 쌓였다. 하지만 40여 년이 흐르면서 장기 근속자와 고령 퇴직자가 증가하며 적립금 유입보다 지급 수요가 급격히 커졌다.

    기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일정 부분을 투자해 수익을 내야 하지만 복지금 운영사는 마곡에 위치한 가스충전소 1곳 외에는 별다른 투자 자산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마저도 기대만큼의 수익은 나오지 않았다.

    차 이사장은 "충전소를 통한 수익을 높이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이용을 독려했지만 협조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복지금 제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혜택이 줄면서 탈퇴자가 늘어나고 기금 고갈은 더욱 가속화됐다. 

    현재 가입자를 기준으로 일시에 복지금을 모두 지급하려면 6522억 원이 필요하다. 미지급금까지 포함하면 운영사가 감당해야 할 재원은 7482억 원에 이른다.

    차 이사장은 "이제는 남은 조합원들에게 더 내라고 하거나 받을 사람에게 덜 주자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공중분해하고 디폴트가 나야 해결된다"고 사실상 파산을 인정했다.

    복지금이 파산된 경우, 유일 자산인 마곡 가스충전소를 청산한 뒤 잔여 재원을 조합원에게 분배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정리될 가능성이 크다. 차 이사장에 따르면 해당 자산의 가치는 약 3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서울시내 개인택시 기사 3만6751명의 퇴직금 대부분이 사라질 위기에 놓인 셈이다.
    ▲ 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가입시 복지회 의무 가입이 명시된 정관 개정안.

    ◆서울시로 번진 책임론…'복지금 의무가입' 승인 여파

    일부 개인택시 기사들은 복지금 파산 사태에 대해 서울시의 책임을 묻는 집회와 시위를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기사 A씨는 "서울시가 개인택시 기사들의 복지금 가입을 의무화했다"며 "제도를 승인한 당사자인 서울시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94조에 따르면 관할 지자체는 택시조합에 대해 정관 변경 승인, 임원 개선 명령, 조합 해산 등의 권한을 가진다. 

    서울시는 지난해 개인택시조합 정관 개정을 승인하면서 조합 가입 시 복지회도 자동 가입하도록 한 조항을 받아들였다.

    개인택시 기사들은 일반 보험사에서 영업용 차량 보험 가입이 어려워 조합이 운영하는 공제회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기사의 99% 이상이 택시조합에 가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조합 가입과 동시에 복지회 가입까지 이뤄지는 구조 자체가 강제성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관계자는 "택시조합은 사적 자치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조직으로, 정관 변경 시 적법성과 타당성이 있으면 승인하도록 돼 있다"며 "서울시가 복지금 운영에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복지금 의무가입 조항과 관련해서도 서울시는 "조합이 처음에는 영구가입 형태로 승인을 요청했지만 반려했다"며 "법률 자문을 거쳐 '가입 후 3개월 뒤 탈퇴 가능' 조항을 포함하는 조건으로 승인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