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물가 급등 우려 발언에 업계 전체가 '꽁꽁'대출금리, 통신·전기·가스요금, 원자재 기업 등도 긴장'공정'을 이유로 또 다른 '불공정' 만들어서는 절대 안 돼"기름값 묘하다" 한 마디로 시작된 '알뜰주유소 부작용' 명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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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이미지는 ChatGPT(OpenAI)의 이미지 생성 기능을 통해 제작됐습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시장을 바짝 긴장하게 하고, 관련 업종 주가는 곧바로 요동치게 된다. 특히 당선 초기 힘이 가장 좋은 시기의 발언은 그 어느 것보다 무겁다. 모두의 관심을 끌게 되고, 자칫 정부 모든 행정력이 집중되기도 한다. 큰 불만 끄려다 잔불에 화를 키울 수 있다.
최근 서민 물가의 가파른 상승에 대한 우려를 담은 이재명 대통령의 "라면값 2000원이 진짜냐"라는 말 한마디는 관련 업계는 물론 식품 가공업계 전체를 꽁꽁 얼어붙게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라면 원료인 밀가루를 수입해 공급하는 제분 업계 역시 언제 화살이 자신들에게 날아올지 전전긍긍이다. 대통령 말 한마디는 곧바로 관련 업계의 가격 인상 자제 및 인하 압박으로까지 작용하게 된다. '원료 수입-생산-유통-판매' 공급망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 주요 소비재의 가격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정치적 불확실성 때문에 가공식품 위주로 저희(정부)가 눌러놨던 것들이 많이 오른 부분도 있다는 게 당시 비상경제점검 TF 회의에 참석한 김범석 기재부 1차관의 설명이다. 이 대통령의 '라면 2000원' 발언은 의도적으로 흘린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미 공정위의 일부 조사 결과 인지하고 있을 수도 있다.
가공식품 및 외식업계가 정국 혼란기를 틈타 가격 인상에 나섰고 물가 상승을 초래한 것은 통계를 보면 사실로 드러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탄핵 정국인 작년 12월부터 올 5월까지 6개월 동안 5~10% 이상 급등한 품목은 초콜릿, 커피, 양념 소스, 식초, 빵, 잼, 햄, 베이컨 등 19개 품목에 달한다. 아이스크림, 유산균, 냉동식품, 어묵 등도 5% 안팎의 상승률을 보였다. 가공식품 73개 품목 중 계엄 사태 직전인 작년 11월 대비 물가지수 상승 품목은 52개로 71% 품목이 오른 셈이다.-
- ▲ ⓒ통계청
공정위 역시 이 같은 움직임을 감지하고 지난 4월 현장 조사를 시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빵, 과자, 라면 등 주요 가공식품의 가격 인상 과정에서 업체 간 담합이 있었는지를 파악 중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바짝 긴장한 관련 업계의 경우 추가 인상은 멈출 것으로 보이지만, 원재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만큼, 내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원료와 새로운 시장을 찾아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후보 시절부터 민생 회복을 주요 공약으로 내 걸었던 만큼, 이번 물가 상승에 따른 서민 경제의 어려움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실제 최근 한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6명(60.9%)이 현재 느끼고 있는 가장 큰 경제적 어려움으로 '물가'를, 민생경제 회복을 위한 최우선 대책 역시 '물가 안정'을 꼽는 등 심각한 수준이다.
물가 안정을 위해 새 정부가 우선으로 추진할 정책으로는 '농축산물·생필품 가격 안정(35.9%)'이 가장 많이 꼽았고, 이어 '공공요금(전기·가스·수도) 부담 경감(21.8%)', '환율 변동성 완화 ‧ 수입 물가 안정(17.2%)', '세금 부담 완화 ‧ 생활비 지원 강화(17.1%)', '에너지 ‧ 원자재 가격 안정(7.8%)' 등의 순이었다.
민생경제 회복을 최우선 순위에 둔 이 대통령의 입에 라면에 이어 앞으로 오르내릴 수 있는 추가 품목 및 업종들이다. 라면에서 시작된 물가 관리는 맥주, 초콜릿, 커피 등 가공식품을 넘어,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통신 요금, 대출금리 등의 분야로 확산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이통사와 은행 등 금융사, 한전, 가스공사 등 공기업, 원자재 기업 역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업계의 가격 인상 자제 및 인하 등 단기적으로 민생경제에 긍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거나, 관련 정부 부처의 과잉 충성으로 이어지면 심각한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김민석 총리 후보자가 발 빠르게 움직이고 나섰다. 오는 13일 비공개로 식품·외식업 협회와 전문가 등을 한 자리에 모아 의견 청취 및 대응 마련에 나선 것이다.
이후 순서는 불 보듯 뻔하다. 농식품부(농식품 가격)를 중심으로 최소한 가격 인상 자제는 물론, 일부 제품가격 인하를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 명백한 자유시장경제 역행이다. 게다가 '담합' 조사라는 압력 행사가 가능한 공정위는 움직임만으로도 업계를 길들일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 같은 정부 시스템의 움직임은 향후 민생경제 회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분야로 이어질 수 있고, 방통위(통신 요금), 금감원(금리), 산업부(에너지), 기재부(관세) 등 범정부 차원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과거를 살펴보면 정부의 지나친 개입은 부작용이 크다. 개입하더라도 단기간으로 끝나야 한다.
"기름값이 묘하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탄생한 알뜰주유소는 15년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석유 유통시장의 '기형아'로 평가받고 있다.
석유공사와 도로공사 등 정부가 정유사로부터 대량으로 싼값에 석유제품을 사들여 알뜰주유소에 싸게 공급하는 방식인데, 당시 정부는 이를 통해 휘발유 기준 ℓ당 100원 정도의 가격 인하 효과를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실제 거래에서 국민은 단 한 번도 100원이라는 상대적 혜택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이 주변 주유소 대비 20~30원 수준만으로 경쟁이 충분하다 보니, 소비자가 받아야 할 혜택 대부분은 업자의 배만 불렸다는 평가다.
정부가 나서서 '알뜰주유소', '알뜰폰'에 이어 '알뜰라면' 등 모든 '알뜰ㅇㅇ'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공정'을 위해 또 다른 '불공정'을 만들어서는 절대 안 된다.

최정엽 산업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