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락·이종석 '균형인사'에 한미 긴장 우려박지원 '6인회' 첫 공개, 자주파 논란 재점화노무현 정부 시절 자주·동맹 갈등 되풀이?"자주파 부상에 한미 정보협력 약화 가능성"자주파 '6인회', 뿌리 깊은 '反美 카르텔' 논란
  • ▲ 2024년 6월 19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긴급 간담회에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등 '6인회' 인사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이종석·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문정인 전 외교안보특보. ⓒ뉴시스

    미중 양국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해 온 이재명 대통령이 국가안보실장에 '대미(對美) 동맹파'로 꼽히는 위성락을, 국가정보원장에 대북 포용정책을 강조해 온 '자주파' 이종석을 기용하면서 외교·안보 라인을 이른바 '좌(左)자주·우(右)동맹' 구도로 구성했다. 국가정보원에는 남북 및 대중·대러 관계를 중시하는 자주파를, 국가안보실에는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동맹파를 배치해 미중 간 전략적 균형을 이루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이종석 내정자가 좌파 정부의 외교·안보 핵심 인사들로 구성된 '6인회' 소속이라는 폭로까지 나오면서 이 대통령의 외교·안보 실험이 한미동맹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박지원發 '6인회' 논란 … 자주파 파장 커져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장을 지낸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9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에서 이 대통령의 최근 인선에 대해 "이종석 국정원장 후보자는 사실 몇 년간 계속된 6인회라는 모임에 저와 함께하고 있다. 임동원, 정세현, 문정인, 이종석, 서훈, 박지원이 멤버"라고 밝혔다. 이어 "같이 한두 달에 한 번씩 오찬하면서 서너 시간씩 얘기를 나누고 늘 의견을 교환해 온 사이다. 그런데 거기는 상당히 자주파들"이라고 덧붙였다.

    박 의원은 이종석 내정자를 향해 "국정원장은 아무래도 대북 문제나 외교 문제도 하기 때문에 중국, 러시아를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는 도랑에 든 소이기에 미국 풀도 먹어야 하고 중국 풀도 먹어야 하고 러시아 풀도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위 실장을 향해선 "트럼프 대통령이 특히 안보는 미국과 하고 하고 경제는 중국과 한다는 '안미경중'을 굉장히 싫어한다. 그러한 한미 관계는 '찐미'인 위 실장이 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左자주 右동맹' 정책 충돌 우려 … 盧 정부의 '자주파 vs 동맹파' 갈등史

    이번 외교·안보 인사의 배경에는 이 내정자를 통해 대북 포용정책을, 위 실장을 통해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대외정책을 펼친다는 이 대통령의 구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좌자주 우동맹' 인사는 북핵 대응 방식이나 정보 공유 범위 등 정책 방향과 우선순위 설정에 있어 정책 혼선이나 내부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반미(反美)면 좀 어떠냐'는 구호를 내걸고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외교·안보라인이 동맹파 대(對) 자주파로 극명히 갈라져 임기 내내 치열한 노선 갈등을 벌인 대표적인 사례다. 동맹파와 자주파의 갈등은 주요 외교·안보 현안 때마다 표면화했는데, 2003년 이라크 추가 파병 과정은 노무현 정부 내부에 존재한 두 개의 목소리를 국민 앞에 선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그해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의 요청에 따라 이라크 2차 파병을 결정하자 정부 내 동맹파는 '상당한 규모의 전투병 파병이 필요하다'며 적극적으로 호응을 주장했다. 반면, 이종석 당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을 중심으로 한 자주파는 비전투병 위주로 소규모 파병해야 한다고 맞섰다. 노 대통령이 비전투병 위주의 파병을 결정하고 자이툰부대를 파견함에 따라 자주파가 우위에 섰다.

    ◆용산기지 이전, 자주파-동맹파 정면 충돌

    당시 주한미군의 용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는 협상을 둘러싸고도 자주파와 동맹파는 정면으로 충돌했다. 외교부 북미국(당시 북미국장은 위성락)을 비롯한 동맹파는 한미 관계를 고려해 신속한 이전을 원했다. 따라서 국회 비준이 필요한 협정 형식 대신 행정부 결정만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SOFA(주한미군지위협정) 문서 형식으로 처리하고자 했다. 그러나 자주파가 환경 문제를 명분으로 엄격한 국회 심의를 필요로 하는 협정 형식을 주장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자주파 투서' 사건으로 외교라인 흔들려

    협상 주도권을 둘러싸고 외교부와 청와대 NSC 간 갈등이 깊어지던 중 2023년 말 '자주파 투서 사건'이 터졌다. 당시 외교부 동맹파 인사들이 사석에서 청와대와 대통령을 비판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외교부 북미국의 한 간부는 "청와대 NSC의 젊은 보좌진은 마치 '탈레반' 수준" "윤영관 외교부 장관과 한승주 주미대사는 청와대 이너서클에서 밀려나 힘이 없다"는 등 노무현 정부의 외교 라인에 불만을 드러냈다. 

    내부 협상 전략 문건에는 "노무현 대통령이나 NSC 인사들은 반미주의자들이므로 협상에 개입을 최소화시킨다" "용산기지 이전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얼마가 들든 추진해야 한다" "국회와 국민이 문제 삼지 않을 수준에서 협정 형식과 표현만 바꾼다" 등의 방침이 적시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대목은 당시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공개한 청와대 공직비서관실의 2003년 11월 '용산기지 이전협상 평가 결과보고'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는데, 이를 계기로 청와대(자주파)와 외교부(동맹파) 간 불신이 최고조에 달했다.

    윤영관 당시 외교부 장관은 사태 수습을 위해 청와대와 외교부 양측 모두에 대한 문책을 건의하며 절충을 시도했으나, 청와대는 "우리 쪽 사람(자주파)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윤 장관 본인만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선에서 마무리됐고, 이후 외교부 내에서는 동맹파의 입지가 크게 약화했다.

    ◆'동북아 균형자론'이 부른 한미동맹 위기

    이후 노무현 정부가 한층 강화한 자주외교 노선은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의 자주노선이 '동북아 균형자론' 천명으로 정점에 달했다.

    노 대통령은 그해 3월 육군사관학교 연설에서 "우리의 선택에 따라 동북아 세력 판도가 변화할 것"이라며 '중견국가로서 균형자 역할'을 선언하자 미국 보수층에서는 곧바로 '한국이 동맹에서 이탈하려 한다'는 격앙된 반응이 나왔다. 이는 미국의 대중국 견제전략에서 한국이 독자노선을 취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고, 국내 동맹파 인사들도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청와대 자주파들은 이 구상을 밀어붙였고 일시적으로 자주파 노선이 정부 정책을 완전히 장악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2005년 말 불거진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문건 유출 파동'으로 자주파 내부 균열이 발생하면서 노무현 정부 말기에 한미동맹은 사상 최악의 상태로 치달았다. 후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을 때는 동맹 복구에 주력해야 할 정도였다.
    ▲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새 정부 첫 인사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석 국정원장 후보자,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이 대통령, 강훈식 비서실장, 위성락 안보실장, 황인권 경호처장.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제공

    ◆자주파 부상에 '한미 정보협력' 흔들리나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요직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박지원 의원이 자신을 포함한 '6인회'의 존재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배경에는 이재명 정부 내 외교·안보 정책 결정에 깊숙이 관여해온 자주파의 위상을 국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의도가 담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전직 외교·안보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박 의원이 6인회를 언급한 것은 자신의 독자적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며 "한국 정보기관에 자주파 성향의 인사가 중용되는 상황에서는 북·중·러 관련 정보를 미국과 공유하는 데 현실적 한계가 생길 가능성이 있고, 결과적으로 한미 간 정보 협력의 질적 수준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한 대북 전문가는 뉴데일리에 "한 개인의 반미·친북 성향이라면 그 개인의 생각만 바꾸면 되지만 6명이 매달 정기적으로 만나 성향을 공유해왔다면 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장기간 교류를 통해 반미·친북 성향이 고착된 집단을 미국은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단단히 결속된 카르텔 안에서 개인이 독자적인 견해를 유지하거나 행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친미나 보수 성향 인사 없이 자주파만 모인 '카르텔' 형태라면 미국과의 신뢰가 약화할 수밖에 없고, 결국 한미동맹과 정보 공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박 의원이 자랑하듯 공개한 '6인회'의 존재는 이 대통령에게도 외교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조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