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조사위, 3차원 지질 분석 착수 … 조사 연장 불가피'변성암 땅에 터널' 무리였나 … 붕괴 부른 구조 취약성8년 전 경고 무시? … 세종포천道 이미 '변성암' 지적연희동 싱크홀과 데자뷔 … '책임 불분명' 되풀이 우려
  • ▲ 3월 27일 오후 서울 강동구 명일동 대형 싱크홀 사고 현장에 복구 작업을 위한 흙더미가 산적해 있다. ⓒ정혜영 기자

    [편집자주] 한국은 1970년대 이후 국가 경제의 급속한 성장에 따라 고속도로·교량·항만 등 다양한 토목공사가 시행돼 왔다. 특히 수도 서울에선 다양한 '지하철 공사'가 활발히 진행 중이지만 이에 수반되는 지질학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쉽게 말해 토목공사를 담당할 '외과의사'는 많은데 정작 공사가 진행되는 땅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지형인지를 알고 있는 '내과의사'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변화무쌍한 지질에 맞게 칼과 톱을 대야 우리는 인명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뉴데일리는 인재(人災)가 천재(天災)로 탈바꿈되기 쉬운 싱크홀 사고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싱크홀 골든타임'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과 해외 사례를 집중 조명한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발생한 싱크홀 사고의 원인 조사 기간이 두 달 더 연장됐다. 당초 지하철 9호선 공사와 관련한 시공상의 문제로 원인이 좁혀지는 듯 했지만 중앙지하사고조사위원회(사고조사위)는 보다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요인이 작용했을 가능성에 주목하며 조사 기한을 늦추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의 이면에는 사고 원인이 단순히 공사 부실이 아니라 해당 지역 지반의 '지질 구조 자체'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을 수 있다는 전문가 분석이 자리잡고 있다.
    ▲ 변성암 단층 파쇄대 경사면과 터널 굴착 방향에 따른 붕괴 위험도를 나타낸 그림 ⓒ황유정 디자이너

    ◆ 왜 조사 연장이 불가피했나? … "3D 지질 구조 분석"

    국토교통부는 사고조사위의 보다 정밀한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조사 기한을 5월 31일에서 7월 30일까지 연장하기로 했다고 지난 27일 밝혔다.

    사고조사위는 지하안전법 시행령 40조 1항에 따라 구성 후 6개월까지 조사가 가능하다. 앞서 국토부는 3월 24일 명일동 땅꺼짐 사고 나흘 만인 3월 28일 사고조사위를 꾸려 사고 원인 규명에 나섰다.

    지금까지 사고조사위는 4차례 현장조사와 8건 토질시험을 진행했다. △사고 발생 지점의 지질 조건 △지하철 9호선 공사의 시공·관리 실태 △분야별 기술 자료 검토를 추진해 왔다. 

    위원회는 앞으로 3차원 지질 구조 분석에 돌입할 예정이다. 세종-포천고속도로의 시공·설계가 싱크홀 발생에 영향을 미쳤는지 검토에도 나선다. 이를 통해 단순한 부실 시공 여부를 넘어, 지반 연약성까지 폭넓게 규명한다는 계획이다.

    사조위원장을 맡은 박인준 한서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그간의 조사 결과뿐만 아니라 전문기관의 추가 분석 결과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해 사고 원인을 객관적으로 규명하고, 유사 사고 예방을 위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뉴데일리 단독 보도에 따르면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한 '세종-포천 고속도로 건설공사 지반조사(2017)'에는 명일동 일대가 변형되기 쉬운 '변성암 지질'에 속한다는 분석 결과가 이미 제시된 바 있다. (관련 기사: [단독] 명일동 싱크홀 지역 '변성암 지질' 8년전 경고 있었다)

    오랫동안 지각 변동을 받아 깨지기 쉬운 변성암 지질에 지하 개발을 실시하면 땅이 붕괴될 위험이 큰데도, 지하철 9호선 터널 공사의 설계·시공 단계에서 지질 검토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질 전문가들에 따르면, 변성암 지질대에 지하철 터널 공사를 시행할 경우 반드시 사전에 단층 파쇄대의 위치와 경사면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특히 단층 파쇄대의 경사면 방향이 터널 굴착 방향과 일치하는지 여부는 터널 안전성과 직결된다.

    단층 파쇄대는 암석이 단층 운동으로 인해 깨지고 파쇄된 구간으로, 강도가 매우 약하고 붕괴 위험이 높다. 이 때문에 굴착 방향이 단층 경사면과 반대라면 지반의 지지력이 급격히 저하돼 붕괴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번 명일동 싱크홀 사고와 관련해 해당 지역이 변성암 지질대이며 단층 파쇄대의 존재 가능성이 이전 조사에서 이미 제기된 만큼, 당시 지하철 9호선 터널 공사 전 사전 지질 조사와 방향 검토가 제대로 이뤄졌는지가 사고조사위의 핵심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발생한 대형 땅꺼짐(싱크홀) 사고로 오토바이 운전자가 추락한 가운데 3월 25일 오전 관계자들이 현장을 통제하고 구조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사고의 진짜 원인, 땅속에 있다 … '변성암 땅에 터널 공사' 쟁점

    명일동 싱크홀 단순한 시공 문제를 넘어 지질 구조가 결정적 요인일 수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변성암 지질과 단층 파쇄대처럼 약한 지반 위에서 터널을 굴착할 경우, 굴착 방향과 지반 구조가 맞물리며 붕괴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시공 문제를 넘어서 정밀한 지반 해석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충기 대한토목학회장은 "(사고조사위가) 설계나 시공 자료를 검토한 결과, 실제 지반 특성이 설계 당시 조사와 차이점을 발견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러한 차이를 규명하기 위해 정밀한 지질구조 해석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사고의 초점을 터널 붕괴에 맞춰야 한다"며 "이를 단순한 싱크홀 사고로만 본다면 책임 소재가 분산되고 정확한 원인 규명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과거 사례에서도 복합 원인과 책임 불분명 문제는 반복됐다. 2024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발생한 싱크홀 사고 역시 지하철 공사·노후 상하수도관·집중호우 등 여러 요인이 거론됐지만, 명확한 책임 규명 없이 사후 대책 마련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교수는 "준공 전 터널 붕괴는 토목공학 교과서에 나오는 기본 이론"이라며 2014년 석촌 지하차도 붕괴 당시 조사단장을 맡아 9일 만에 원인을 규명했던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당시에도 터널 안정성이 핵심 쟁점이었고, 이번 사고도 터널 붕괴 원인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 강동경찰서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입건 전 조사(내사)에 착수한 상태다. 경찰은 사고 원인 조사 결과를 토대로 위법 사항이 있는지 들여보겠다는 방침이다.

    명일동 땅꺼짐 사고는 지난 3월 24일 오후 6시 29분경 서울 강동구 대명초교사거리 도로에서 발생했다. 깊이 30m에 달하는 대형 싱크홀이 생기면서 오토바이 탑승자 1명이 사망하고, 사고 직전 도로를 지나던 차량 운전자 1명이 병원으로 옮겨졌다.
정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