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제주체의 부채탕감 기대 습관화되면?나리 망하는 지름길 열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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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부채탕감은 결국 한국은행이 돈 찍어내는 것으로 귀결됦 것이다, ⓒ 뉴데일리
■ 빚 권하는 나라
부채탕감.
근원적 물음이다.
누군가가 자의로 진 빚을 왜 남이 대신 갚아야 할까?
정부가 갚는 게 아니라 실은 납세자들이 갚는 것이다.
정부는 거시적 접근이라 둘러댈 것이다.
거시 정책의 핵심은《총수요 진작》인데, 이는 추상적이다.
예를 들어,《소비 심리》는 수학이 아니다.
최근 논란이 된《승수효과》도 직관에 가깝다.
《승수효과》가 왜 발생하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돈’이 많이 돌면, 사람들이 돈을 더 쓸 것 같다는 느낌인 것이다.
《부채탕감》도 그 차원일 것이다.
반면 미시는 수학이다.
미시적으로, 부채탕감은《빚 권하기》다.
《부채 쌓기》 부채질인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도 빚 권하는 나라 다.
빚을 내 아파트를 짓고, 빚을 내 아파트를 산다.
그 결과 아파트 가격 상승만 부채질된다.
그에 따라 국민의 빚도 나라 빚도 부채질 된다.
■ 빚 갚는 사람만 바보 되는 나라
한국 정치꾼들 중에 인과 관계 파악에 어두운 이들이 있다.
빚을 갚은 사람들과 빚을 갚지 않은 사람들.
어느 쪽에 착한 이가 많을까?
채무가《가난》때문이라고 전제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 과거 보릿고개를 겪어 가난에 대한 트라우마가 깊다.
가난을 소재로 한 전래동화도 많다.
대개 빈자가 착하게 묘사된다.
빈자는《흥부》, 부자는《놀부》식이다.
가난 트라우마는 합리적 사고를 방해한다.
가난한 이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가난한 이가 무조건《흥부》같을 거라고 전제하면 이 또한 큰 오류일 수 있다.
빚을 갚은 사람들은 형편이 좋아서가 아니라, 사회규범을 따르기 위해서일 것이다.
■ 가난한 사람 이용, 권력 장악한 뒤…
미시적 가난도 심각하지만, 거시적 가난도 심각하다.
부자 나라에서 가난은 구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에서 가난은 임금님도 구제할 수 없다.
그럼 나라는 왜 가난할까?
무능한 정치인들이 위선적이기까지 해서다.
그들은 빈자들을 이용해 권력을 쥐지만, 정작 가난 문제에 대해 비전문가들이다.
당연히 가난구체책도 나올 수가 없다.
사회적 약자를 돕자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부채탕감엔 신중함이 요구된다.
신뢰 시스템이 붕괴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빚을 일부러 갚지 않고《전략적으로 파산 신청》을 하는 경우도 많다.
대한민국은 돈을 떼먹고 일부러 신용불량자가 되어도 시민권 행사가 제한되지 않는다.
지금도 충분히 신용 불량 국가다.
■ 부채탕감에 들어가는 돈도 국민 돈
빚을 쉽게 여기는 행태도 문제다.
사람들은 크게 ※ 위험 회피적 ※ 위험 중립적 또는 위험 애호적인 경우로 나뉜다.
사람들은 누구나《'돈’에 대한 로망》이 있지만, 쉽사리 사업을 시작하지 못한다.
《리스크(위험)》때문이다.
그렇기에 월급쟁이들은 박봉에 시달리며 열악한 근무 환경 속에서 스트레스를 감내한다.
《위험 회피적》인 경우다.
영화《타짜》를 보면, 불법 도박으로 큰 빚을 지는 이들이 많은데 바로《위험 애호적》인 경우다.
한몫 잡겠다고 욕심껏 투자를 하다 빚을 진 경우도 비슷하다.
현재 빚을 진 자영업자들 중에도 과거에 큰 돈을 번 적이 있을 테다.
그런 적이 없었다면, 부채탕감은 무의미하다.
과거와 달리 지금 빚이 많으니 그 빚을 탕감해주는 주장도 설득력이 약하다. 그게 말이 되려면, 과거 그들이 돈을 많이 벌었을 때 왜 사회적 기여를 하지 않았는지를 물어야 한다.
물론 부채탕감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부채탕감은 은행이 할 일이지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 모두가 탕감 기대하고 빚 낸다면?
부채탕감을 주장하는 정치인들도 실은 그 속내를 알기 어렵다.
그렇게《착한 주장》을 하면서 자신의 사재를 눈꼽만큼도 쓰지 않는다.
정치적 이윤을 챙기는데 성실한 이들의 피와 땀을 가져다 쓸 뿐이다.
심지어는 그 부채탕감 수혜자들 속에 자신들의 친척 또는 이해관계자들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
더 심각한 건 따로 있다.
앞으로 모든 경제주체가 부채탕감을《합리적으로》기대하는 것이다.
그 경우 빚을 지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빚을 갚으려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대한민국이《‘빚’으로 ‘빛’내는 신용불량 국가》가 되는 길이다.
문제는《선별(screening)》이다.
스스로 돕는 이들을 도와야 한다.
성실하지만 빚을 갚지 못한 경우와, 불성실하며 고의적으로 빚을 갚지 않은 경우를 어떻게 선별할 건지 정부는 답을 내놓아야 한다.

이양승 객원 논설위원 / 군산대 무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