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경찰 확대·국수본 개혁 등 새 정부 치안정책 윤곽민주당, 경찰권 강화 속 민주적 통제 장치 논의 본격화국가경찰·자치경찰 이원화 구조 속 실질개혁 가능성은?전문가들 "인사·예산권 없는 형식 자치 … 현장 혼선"
  • ▲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여당 주도의 경찰개혁 드라이브가 본격화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검·경 수사권 조정에 맞춰 경찰 역량 강화를 과제로 삼은 가운데 대통령 취임 이틀 만에 열린 '경찰개혁 대토론회'에서는 자치경찰제 확대와 국가수사본부 개혁 등이 집중 논의됐다.

    하지만 자치경찰제를 둘러싼 실효성 논란도 만만치 않다. 제도는 도입됐지만 인사·예산 등 실질적 권한은 여전히 국가경찰에 집중돼 있어 형식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휘체계의 이원화, 권한 중첩, 책임소재 불명확 등으로 행정 혼선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지방정부의 재정 여건에 따라 치안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 간 불균형 우려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자치경찰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해소하지 않는 한 경찰개혁의 효과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 경찰개혁 대토론회 개최 … 자치경찰·국수본 개혁 논의 

    5일 국회에서 임호선·신정훈·서영교·이해식·황운하·이상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 주최한 '경찰개혁 대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한국경찰학회, 한국공안행정학회, 한국보안관리학회 등 관련 학계도 대거 참여해 경찰개혁 방향을 놓고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이날 토론회에선 △새 정부의 자치경찰제 재설계 방안 △국가경찰위원회의 실질적 기능 강화 △국가수사본부 전문성 강화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자치경찰제는 중앙집권화된 국가경찰제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경찰조직의 설치·운영과 경찰권 행사의 귀속 주체가 지방자치단체인 경찰체제를 말한다.

    발표자로 나선 황문규 중부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중앙집권화된 경찰 권한 분리, 경찰의 민주적 통제를 위해 자치경찰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황 교수는 "국가 경찰조직의 특성상 경찰청장이 컨트롤하면 경찰조직이 자의적으로 운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경찰권 분산은 오히려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국가경찰위원회를 경찰행정 전반을 총괄하는 최상위 기관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이창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국가경찰위를 국무총리 소속 기관으로 재편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국가경찰위 구성의 투명성을 확보해 대표성을 담보하고 정치적 중립성, 전문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며 "심의·의결권을 경찰행정 전반의 제도개선 및 주요 정책 수립·집행에 관한 사무로 확대해야 실질 기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 역시 검찰 권한을 축소하는 대신 국가경찰위 실질화를 추진한 만큼 관련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윤석열 정부가 설치한 행정안전부 경찰국은 폐지 가능성이 거론된다.

    국가수사본부 개혁 방안도 함께 논의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은 1차 수사권을 확보했지만 사건 처리 지연과 전문성 부족 문제가 드러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김영식 순천향대 교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 수사 단계 점검·통제 시스템 구축, 디지털 수사역량 강화" 등을 제안했다.
    ▲ 경찰청 ⓒ뉴데일리DB

    ◆ "자치경찰제, 형식만 있을 뿐 실질 부족 … 인위적 개편 바람직한지 의문"

    전문가들은 현행 자치경찰제가 아직 형식만 있을 뿐 실질적 자치를 위한 요건은 갖추지 못한 상태라고 지적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지금의 자치경찰제 논의는 기존 틀을 유지한 채 이름만 바꾸는 수준에 머무를 우려가 있다"며 "국가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에서 자치경찰제가 과연 현실적으로 유효한지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에는 1800개가 넘는 자치경찰 조직이 각각의 지역 실정에 맞춰 운영되고 있지만, 한국은 행정구역을 인위적으로 나눈 뒤 이를 자치경찰 단위로 삼는 방식이 과연 바람직한지 의문"이라며 단순한 제도 수입이 아닌 한국형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진정한 자치경찰제를 실현하려면 사후 수사 중심에서 벗어나 사전 예방 중심의 치안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며 "경찰의 정체성 자체를 시민 중심의 지역 치안 서비스 제공 기관으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사권과 예산권이 중앙이 아닌 지방에 실질적으로 이양돼야 한다"며 "현재처럼 예산이 중앙에서 배분되면 결국 중앙 통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했다.

    자치경찰제 도입의 실효성에 대해 한국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단순히 제도 중심의 논의만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도우 경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자치경찰제의 핵심은 지자체에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이 이양됐는지 여부에 달려 있는데, 현행 제도는 이에 크게 못 미친다"며 "사실상 지자체는 거의 아무런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자치경찰제 도입 당시 학계에서는 한국의 치안 체계가 자치경찰제와 맞지 않는다며 반대 의견이 많았다"며 "현장 경찰 역시 운영상 혼선과 지역 간 치안 불균형에 대한 우려를 꾸준히 제기해왔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자치경찰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지자체의 권한과 책임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강화하는 건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며 "한국 실정에 맞는 치안 모델을 먼저 정립한 뒤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교수는 "기존 체제의 문제점을 개선하기보다 무리한 구조 개편만 추진될 경우 새로운 혼란과 기존 문제의 중첩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하며 "일선 현장의 의견 수렴과 실질적 참여가 전제되지 않은 개혁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