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84조 불소추특권 첫 해석…재판중지 근거이 대통령 5개 재판 모두 정지될 가능성 커져고법 판사가 헌법재판관 역할 지적살아 있는 권력에 굴복한 '사법의 정치화'
  • ▲ 법원. ⓒ뉴데일리 DB

    법원이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을 사실상 중단했다. '헌법 84조'에 따른 조치라는 것이 법원의 설명인데,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돌려보낸 재판을 고법 판사가 논란이 분분한 헙법 조항을 근거로 판단한 것이 적합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재판을 받고 있는 후보가 대통령이 된 사례가 처음이어서 헌법 84조에 대한 첫 판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당수 법학자들과 법조계 인사들은 재임 전 일어난 사건과 재판에 대해서는 재판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 맞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헌법재판소가 헌법 84조에 대해 해석을 제대로 내리지 않은 터에, 고법 판사가 자의적으로 해석해 판결을 미룬 것은 "고법 판사가 헌법재판관 역할까지 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이번 결정으로 이 대통령이 재판을 받고 있는 나머지 사건들도 모조리 연기될 수밖에 없다는 뜻인데, 판사들이 살아 있는 정권의 눈치를 보는 이른바 '사법의 정치화'를 넘어서 '사법 조공'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84조 내세워 李대통령 재판 중지시킨 고법…다른 5개 재판도 '올스톱'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7부(이재권 부장판사)는 오는 18일로 예정됐던 이 대통령의 파기환송심 기일을 연기하고 추후지정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이번 결정이 "헌법 84조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기일 추후지정이란 기일을 변경, 연기 또는 속행하면서 다음 기일을 지정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소송 절차 중단 등으로 인해 법률상 소송 절차를 진행할 수 없는 경우, 관련 사건의 결론이나 감정 결과 등을 기다릴 필요가 있어 기일 지정이 무의미한 경우 등의 상황에서 기일을 추정해 두는 사례가 많다. 추정 상태가 되면 재판이 열리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재판 중지는 다름없다.

    여기서 고법이 이유를 든 것은 헌법 84조의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이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訴追)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소추'의 개념에 현재 진행 중인 형사재판이 포함되는지를 두고 명확한 규정이 없어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해당 재판부는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에 진행 중인 형사 재판도 포함된다고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헌정사 첫 사법적 판단이다.

    이에 따라 이 대통령 재임 기간 해당 파기환송심 재판은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 대통령의 다른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들 역시 유사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법조계에선 이날 서울고법 판단에 따라 다른 4개 재판 역시 올스톱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6월 24일 대장동·위례·성남FC 의혹 1심 공판 ▲7월 1일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 1심 공판준비 ▲7월 22일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 1심 공판준비 ▲위증교사 사건 항소심(기일 미정)이 진행 중인데, 서울고법의 선례를 따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대해 한 법조계 인사는 "서울고법이 '헌법 84조에 따른 것'이란 결론에 이르기까지 어떤 치열한 법리 검토가 있었는지 불분명하다"면서 "결국 사법부가 법적 판단을 포기하고 눈치를 본 것 같다. 이렇게 설명 없이 끝내버리면 마치 입법부에 굴복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고 지적했다.
    ▲ 이재명 대통령. ⓒ서성진 기자

    ◆살아 있는 권력에 굴복한 사법부…"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에서도 이번 조치가 법률 취지에 적합하느냐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판사들이 살아 있는 정권의 눈치를 보고 논란이 있는 헌법 84조를 근거로 재판을 중지시켜 줬다는 것이다.

    검사 출신으로 윤석열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법원 결정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헌법 84조는 대통령의 직무집행과 무관하게 임기 시작 전에 이미 피고인의 신분에서 진행 중이던 형사재판을 중지하라는 조항이 아니다"라며 법원 결정을 정면 반박했다.

    이어 "헌법에도 반할 뿐만 아니라 법원 독립을 근본적으로 해치는 잘못된 결정은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며 "다른 이 대통령 재판 중인 재판부들은 절대 이러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지낸 이헌 법무법인 홍익 변호사는 "헌법 교과서·주석서 어디를 찾아봐도 소추에 재판이 포함된다는 말이 없다"라며 "오히려 헌법주석서를 보면, 헌법 제84조에서 말하는 형사상의 소추는 기소를 의미한다는 것이 명백히 나와 있다"고 말했다. 진행중인 재판은 기소가 이미 끝난 것이어서 불소추특권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중앙대·숙명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역임한 조상규 법무법인 로하나 변호사는 "'헌법 84조에서 '소추'는 대통령이 된 후 기소를 말하는 것"이라며 "'내가 대통령 됐으니까 진행되고 있는 재판은 멈추라'고 하는 건 전례 없는 일"이라고 맹폭했다.

    일각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는 반응도 있다. 익명을 원한 고법 판사는 "재판을 속행했더라도, 민주당과 이 대통령이 재판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공포해버리면 그대로 정지된다"며 "구태여 입법·행정부를 자극하지 않으려 한 것 같다. 헌법 84조를 재판 정지로 해석하는 것이 크게 무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고 했다.

    11년간 헌법연구관을 지낸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실적으로 이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위 5개 재판 중 어느 재판부가 먼저 나서서 심리를 이어가려고 하겠느냐"며 "만약 재판부가 심리를 이어가려 한다면 다수당이자 여당인 민주당이 헌법 84조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판사 탄핵'을 추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른 재판부 판사들이 탄핵 되고 헌법재판소에서 수개월 혹은 1년 넘게 심판을 받는 모습을 보게 되면 누가 나서서 (이 대통령 사건)재판을 진행하려고 하겠느냐"며 "사법부에 '이재명 재판'을 기피하는 현상이 만연해 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학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