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당국, 이틀쨰 강경 단속에 곳곳에서 시위대와 충돌주지사 요청 없는 주방위군 투입, 1965년 이후 '60년 만'캘리포니아주지사 "의도적 혼란 야기-위기 조장"…'쇼' 비판트럼프, 주방위군 배치에다 국방장관에 정규군 투입 권한 부여
  • ▲ LA 다운타운에 배치된 주방위군. AP=연합뉴스. ⓒ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불법체류자 체포·추방에 나선 이민당국과 이에 반발하는 시위대가 연이틀 충돌하면서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투입을 명령한 주방위군 300명이 8일(현지시각) LA에 도착하면서 과잉대응 우려도 커지고 있다.

    AP통신과 CNN 방송,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당국은 이날 오전 LA 주요 지역 3곳에 주방위군 총 300명이 배치돼 활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은 이날 CBS방송에 출연해 "오늘 투입된 주방위군은 이런 유형의 군중 상황대응을 위해 특별히 훈련받은 병력"이라고 밝혔다.

    놈 장관은 주방위군 병력이 "(불법이민자 단속) 작전수행을 위한 안전을 제공하고, 평화로운 시위를 가질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이라면서도 구체적인 활동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그는 "2020년 일어난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2020년 5월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사건 당시 인종차별에 항의하며 미국 전역으로 확산한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BLM)' 시위를 말한다. 이 시위는 시간이 지날수록 격화해 폭력성을 띠면서 수개월간 지속한 바 있다.

    놈 장관은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체포돼 구금된 불법이민자들이 구금시설에서 기본적인 물과 식량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는 시위대의 주장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답변을 피하면서 "폭력이 발생했을 때 그 시설에서 사람들을 출입시키는 것은 극도로 어려웠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댄 본지노 부국장은 이날 오전 엑스(X, 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불법이민 단속작전은 계속될 것이며 폭력을 사용해 이런 작전을 방해하는 사람은 누구나 조사받고 기소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LA와 뉴욕에서 이미 다수의 체포가 이뤄졌다"며 "(시위대가) 폭력을 선택하면 좋지 않게 끝날 것이니 현명하게 선택하라"고 덧붙였다.

    LA에서 대규모 시위는 6일 ICE와 FBI 등이 다운타운의 의류 도매시장과 홈디포 매장을 급습해 이들 지역에서 일하는 불법이민자 44명을 체포·구금하면서 촉발됐다. 일부 현지 언론들은 체포된 불법체류자가 120명 이상이라고 전하고 있다.

    당시 ICE의 단속현장을 비롯해 불법이민자들이 구금된 연방 구금센터 주변과 히스패닉계 주민들이 다수 거주하는 패러마운트 지역 등에서 당국에 항의하는 시위가 잇달아 벌어졌다.

    시위는 이틀째인 7일에도 이어졌고 거리 곳곳에서 나무와 쓰레기 등이 불에 타 연기가 솟구쳤으며 시위대가 국경순찰대 차량을 발로 차는 등 과격한 상황이 벌어졌다.

    당국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최루탄과 섬광탄, 고무탄 등을 이용해 강경하게 대응하기도 했다.

    LA 경찰당국은 소셜미디어 엑스를 통해 "수차례 경고를 했지만, 시위대가 해산하지 않아 여러 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에도 LA 남쪽 콤프턴 지역에서는 소규모 시위대와 당국 요원들의 물리적인 충돌이 빚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 캘리포니아 파라마운트의 한 산업단지 밖에서 한 시위자가 불길에 잡동사니를 넣고 있다. 250607 AP/뉴시스. ⓒ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SNS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민주당 소속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주지사 등이 시위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연방정부가 개입해 문제를, 즉 폭동과 약탈자들을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방위군 2000명을 LA에 투입하는 내용의 명령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은 미국 관련 법률인 연방법 제10편의 1만2406조를 인용하고 있다. 이 조항은 "미국 정부의 권위에 대한 반란 또는 반란의 위험이 있을 경우" 연방정부가 주방위군을 배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대통령이 "침략을 저지하거나 반란을 진압하며 법 집행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주방위군을 소집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주방위군의 배치는 대부분 각 주지사의 권한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 조항을 통해 뉴섬 주지사의 권한을 우회한 것이다.

    CNN은 미국 대통령이 시위 진압을 위해 주방위군을 연방정부 명령으로 동원한 사례는 1992년 흑인 인종차별 문제로 촉발된 LA폭동 이후 33년 만에 처음이라고 전했다.

    또 미국 대통령이 주지사의 요청 없이 주방위군을 동원한 것은 1965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민권시위대를 보호하기 위해 앨라배마에 군대를 보낸 이후 60년 만에 처음이라고 인권단체들은 지적했다.

    뉴섬 주지사는 트럼프 정부의 주방위군 투입에 대해 "의도적으로 시위대를 자극하는 조치"라며 "필요에 따른 것이 아니라 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트럼프 대통령)는 더 많은 단속과 더 큰 통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혼란을 바라고 있다. 주방위군을 동원하려는 연방정부의 시도는 법 집행 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쇼'를 위해서일 뿐, 공공신뢰를 훼손할 것"이라면서 시위대를 향해 "침착함을 유지하고 절대 폭력을 사용하지 말아라. 평화를 유지하라"고 당부했다.

    히스패닉계 이민자단체인 라틴아메리카 시민연합도 주방위군 투입에 대해 "상황을 더 고조시키는 매우 우려스러운 조치"라고 규탄했다.

    민주당 소속인 캐런 배스 LA 시장은 "모든 사람은 평화롭게 시위할 권리가 있지만, 시 외곽 지역에서 발생한 소요사태 보고는 매우 걱정스럽다"며 "폭력과 파괴는 용납될 수 없고, 그런 행위에 가담하는 사람들은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주방위군 투입 명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시위를 반란에 준하는 사건으로 보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방위군 외에도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에게 연방 기능과 자산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수의 정규군 병력 투입 권한을 부여했다고 NYT는 전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엑스를 통해 "LA에서 약 160㎞ 남쪽에 있는 펜들턴 캠프의 해병대 병력이 고도의 경계 태세에 있으며 동원될 수 있다"고 밝혔다.
성재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