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의지 없는 南北美 구상 실현 가능성北 내부 시각 강조 … '내재적 접근' 논란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압박 정책 비판"北 인권 개선 공개 요구 부적절" 주장국정원 전 간부들 "한미동맹 균열 우려""실패한 대북유화론자 임명은 시대착오적"
  • ▲ 2023년 9월 6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신분이던 이재명 대통령이 단식투쟁 7일차인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단식투쟁천막에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2019년 6월 30일 남북미 판문점 3자 회동에서) 트럼프는 문재인이 근처에 있지 않기를 원했지만 문재인은 어떻게든 참석해 이를 3자 회담으로 만들려고 했다."

    북한 체제를 북한 내부의 시각으로 이해한다는 '내재적 접근법'을 주창해 온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이재명 정부의 초대 국가정보원장으로 내정되자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서 묘사한 당시 한미 간 미묘한 긴장 관계가 재조명되고 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과 2019년 2월 하노이 정상회담에 참여했던 볼턴 전 보좌관은 회고록에는 "문재인이 있는 것을 김정은이 원치 않는다는 것은 확실했다"며 "트럼프는 점점 더 확실해지는 김정은-트럼프 회담에 문재인이 끼어들려는 시도를 통제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볼턴은 당시 판문점 회동을 포함한 일련의 북미 협상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 시도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2018년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성사를 비롯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관련해 "이 모든 외교적 소동(diplomatic fandango)은 남한이 만들어낸 것으로, 김정은이나 우리의 진지한 전략적 목표보다는 남한의 '통일' 의제와 더 관련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볼턴의 회고록이 제기한 당시 북미 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 논란과 같은 문제는 현재 더욱 복잡해진 한국의 외교 환경에서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새 정부 첫 인사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석 국정원장 후보자,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이 대통령, 강훈식 비서실장, 위성락 안보실장, 황인권 경호처장.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종석 내정, '남북정상회담' 위한 포석?

    현재 대한민국의 대외 환경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보다 더욱 비관적이다. 당시 단기적으로나마 미국의 최우선 관심사였던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 관계 개선 문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미중 패권 경쟁 등 급박한 국제 정세 속에서 점차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이러한 대외 환경 악화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평화가 경제'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초대 국정원장으로 이종석 전 장관을 지명한 것은 제4차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 관계 개선의 포석으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부터 멘토로서 신뢰를 쌓은 이종석 내정자는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설계한 핵심 참모다.

    ◆이종석과 이재명의 오랜 '멘토' 인연

    이 내정자와 이 대통령의 인연은 2010년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에 당선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성남 지역구민으로 인연을 맺은 이 내정자는 2016년 성남시가 전국 최초로 설치한 '남북교류협력위원회'에서 부위원장을 맡아 본격적인 협력을 시작했다.

    이후 이 내정자는 이 대통령이 경기지사 시절 대북·안보 분야 멘토 역할을 했고 제20대 대선에서 그의 전국 지지 모임인 '민주평화광장'의 공동대표로도 활동했으며, 이번 대선에서 '국익 중심 실용외교'라는 이재명표 대외전략의 밑그림을 그렸다.


    ▲ 소련 장교들과 함께 갑자기 나타난 김일성 (1945 평양). ⓒ뉴데일리DB

    ◆논란의 '내재적 접근법' …  김일성 항일투쟁 극찬 논란

    이처럼 이 대통령의 신뢰를 받은 이 내정자가 학문적으로 강조한 접근법이 바로 북한 체제의 내부 논리와 북한 관점에서 북한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내재적 비판적 접근법'이다. 그러나 이는 북한 정권의 본질적 문제를 간과하거나 독재 체제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오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이 내정자는 1989년 성균관대 석사학위 논문 '북한지도집단의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연구'에서 "김일성은 항일 빨치산 운동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정당성과 정통성을 얻어 북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다"면서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운동을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확립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했다.

    이어 "김일성은 군사 지도자로서의 탁월성을 보여줬다"며 "동만주 일대를 배경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공산주의자들 중 최고 지도자였다"고 극찬했다.

    아울러 '보천보 전투'를 "역사적 의의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고 평가했고, 김일성이 주도한 '조국광복회'를 "진정한 의미의 우리나라 최초 반일 민족통일전선체"라고까지 묘사했다. 그는 해방 후 북한에서 이뤄진 공산화 숙청 작업을 "사회개혁" 또는 "민주개혁"으로 표현해 폭력적 과정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내정자는 1990년 3월 성균관대 학보에 "통일의 제1 요건은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는 자주성 확립과 평등의 존중"이라고 강조했는데, 이는 당시 북한이 내세우던 '자주 노선'과 일맥상통한다. 1990년대 초 '역사비평' 등에 발표한 글에서는 기존의 전체주의적·냉전적 북한관을 비판하고 북한을 다른 이념과 체제를 가진 사회로서 객관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1993년 박사논문 '조선로동당의 지도사상과 구조 변화에 관한 연구'에서는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대해 "김일성이 집중적으로 비판한 것은 사회주의 선진국이나 대국의 경험을 무비판적으로 추종적으로 받아들이는 교조주의였으며 그것은 다름 아닌 사대주의 비판이었던 것"이라며 "특히 1950년대 이래 계속돼 온 사회주의 대국들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 행사 시도는 김일성 지도부로 하여금 외세 개입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게 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반사대주의·반교조주의의 고창과 함께 주체확립의 기치를 높이 들게 했다"고 기술했다.


    ▲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2019년 5월 12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모 시민문화제' 1부 토크콘서트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금강산 관광객 피살 이후 MB 대북 강경·압박정책 비판

    이 내정자의 이러한 내재적 접근법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설계에 핵심 논리로 작용했다. 그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안보와 평화 증진에 필수적이라고 역설하며 김대중 정부 시절 햇볕정책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고, 노무현 정부에선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정책 설계자로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그는 우파 정권의 대북 강경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왔다. 이명박 정부가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 사건' 이후 북한에 대한 강경 대응과 압박 정책을 강화하자 인터뷰에서 "우리(노무현 정부) 때는 그런 북한을 끌어가려고 했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는 북한의 버릇을 고치겠다고 한다"며 "(그러려면) 정교한 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북핵 문제와 金 씨 일가 문제는 北 내부 시각에서 이해

    이러한 배경에서 이 내정자는 민감한 북한 핵 문제나 김정은 체제의 성격도 북한 내부 시각에서 이해하려는 태도를 견지해 왔다. 

    "북한이 대단히 합리적이고 일관되게 움직이지는 않지만 상당히 호전적이고 돌발적인 태세를 보인다"면서도 우파 정권의 대응이 문제 해결에 역효과를 냈다고 평한 것이다.

    즉, 이 내정자의 눈에 비친 남한의 대북정책은 냉전적 이념에 매몰돼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는 이를 바꾸고자 학문과 정책 양면에서 노력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김정은 정권의 안정성과 통치에 대해 내부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발언으로 북한 정권을 두둔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2018년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인정하지 않지만 북한 주민 입장에서 김정은 정권은 정통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으로선 독재 세습정권인 김정은 체제를 인정할 수 없지만 북한 주민들에게는 나름의 정당성이 있는 체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의 이러한 접근법은 북한 정권의 독재적 본질이나 인권 문제를 소홀히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 아돌프 히틀러가 나치당의 완장을 차고 연설대 앞에서 강력한 몸짓과 표정으로 연설하는 모습. ⓒ뉴데일리 DB

    北 정권 본질 비판엔 소극적 … 전문가 "나치즘 비판도 불가능"

    이 내정자의 내재적 비판적 접근법은 송두율 교수('김철수'라는 가명으로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임명됐다는 황장엽 전 비서의 폭로로 논란이 된 인물)의 내재적 접근법과 비교된다.

    제성호 중앙대 명예교수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송두율의 '내재적 접근법'은 북한의 근본적 문제, 즉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제와 같은 부정적 측면은 외면하고 이를 적극 포용 내지 이해하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며 "이종석의 내재적 비판적 접근 역시 '내재적 접근법'에서 강조점의 차이에 따른 분화"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내재적 접근은 맥락에 대한 이해가 자칫 잘못을 용인하는 논리로 비칠 수 있고, 체제 내부 시각의 과도한 강조는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의 잣대를 소홀히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북한에 대한 본질적 비판을 회피함으로써 북한 정권의 실상을 외면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내재적 접근법은 북한 정권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하고 북한의 논리에 휘둘려 안보에 치명적 위협을 줄 수 있다"고 비판했다.

    내재적 접근이 북한 정권과 김 씨 일가의 독재적 속성을 희석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북한 체제를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평가하지 못하게 한다는 비판도 있다.

    제 명예교수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정책의 사상적 기초인 '대동아공영론'도 일본인의 내적 시각에서 보면 정당성을 가질 수 있고, '나치즘'도 '아리안 민족주의와 생존권 사상' 등 모두 나름의 자기 완결적 이론과 이데올로기성을 갖추고 있다"며 "내재적 접근법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나치즘'과 '일본 군국주의' 같은 체제도 비판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이종석 "북한 인권 개선 공개 요구는 부적절"

    이 내정자는 북한의 독재 체제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남북이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자칫 남북 관계의 불안정을 심화할 수 있다는 지론을 유지해 왔다.

    그는 통일부 장관 내정자 신분이던 2006년 2월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을 '친북 좌파'라고 규정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의 지적에 대해 "친북 좌파라는 딱지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북 인권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나 북한에 공개적으로 인권 개선을 요구하는 국제적 결의에만 참가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독재정권'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북한 체제의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실제 논문·저서·공개 발언에서 인권, 수령체제, 독재 등 북한 체제의 본질적 문제를 구체적으로 강하게 비판한 사례는 드물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물론 그의 접근법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냉전에 물든 기존 담론을 극복하고 '6·15 남북공동선언' 등의 성과를 도출한 포용정책의 이념적 설계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너무 더디지만 희망은 있다"는 낙관적 관점을 제시한 바 있다.
    ▲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3일(현지시간) 백악관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은 뒤 관련 답변을 준비해온 서류 속에서 찾고 있는 모습. 레빗 대변인은 한 기자가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입장을 묻자 "당연히 있다"라고 답했으나 준비된 자료에서 관련 내용을 찾지 못해 답변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는 자료를 뒤적이며 "분명히 어딘가에 있는데…"라며 머뭇거렸고 결국 "(한국 대선에 대해) 지금은 자료가 준비돼 있지 않지만 곧 알려주겠다"며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했다. 이날 이어진 국무부 브리핑에서도 한국 대선에 대한 공식 논평은 나오지 않았다. ⓒAP/뉴시스

    ◆전직 국정원 간부들 "쌍방울 징역형 확정 속 한미동맹 균열 우려"

    이처럼 이 내정자의 접근법과 배경이 국제사회, 특히 미국과의 관계에 미칠 영향을 두고 전직 국정원 간부들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직 국정원 간부는 "북한과 관계 개선을 무리하게 추진하면 한미동맹에 균열이 올 수 있다"며 "미국과의 사전 협의 없이 대북정책을 밀어붙이면 주한미군 감축을 넘어 철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신임 한국 대통령에게 축하 전화를 미루는 등 미국이 이재명 정부와 거리두기를 하는 듯한 모습도 이런 우려를 키우는 요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경기도지사 시절 측근이던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북한에 800만 달러를 불법 송금한 혐의로 지난 5일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확정받은 것도 외교적 부담이다.

    또 다른 전직 국정원 간부는 "이 사건으로 이 대통령이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아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가능성이 있다"며 "그렇게 되면 비슷한 처지로 국제적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과 자연스럽게 접촉이나 협력을 강화하려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 "실패한 대북 유화론자 임명, 시대착오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내정자의 대북 접근법이 현 시점의 북한 위협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 대북 전문가는 "이 내정자는 노무현 정부 시절 NSC 사무처장과 통일부 장관으로 재임하면서 북한의 핵 개발을 방조하고 김정일 독재정권을 강화하는 대북 유화정책을 추진했던 인물"이라며 "국정원이 잃어버린 정보기관의 야성을 되찾고 적이 두려워할 수 있는 선진 정보기관으로 거듭나야 할 때 이러한 인사가 과연 적절한지 심각히 되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제적 감각이나 경험, 전문성이 거의 전무하다고 평가되는 인물인데 글로벌 차원의 안보 통상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할 국정원의 수장을 맡는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시도"라며 "북한은 헌법에 핵무장국임을 명시하고 50기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했고, 김정은은 남한을 사실상 적대국이자 교전국으로 공식화했다"고 비판했다.

    결국 이 내정자의 대북정책의 성패는 한미동맹 유지와 북한 비핵화라는 엄중한 외교 현실을 얼마나 균형 있게 다루는 지에 달려 있다. 그의 '내재적 접근법'이 남북관계 진전을 이끄는 실질적 전략이 될지, 북한 체제 정당화 논리에 매몰돼 외교적 갈등을 불러올지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