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4년 연임제 등 밝히며 임기 내 개헌 약속88체제 대통령들, 임기 중 개헌 한 번도 못 이뤄범여권 의석 190석, 힘에 의한 개헌 가능성 거론진영 아닌 여야 의견 합치된 통합형 개헌안 필수
  • ▲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이 확실시된 후 4일 오전 국회 앞에 마련된 더불어민주당의 국민개표방송 시청 현장에서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그가 공언한 '임기 중 개헌' 약속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높다. 1988년 체제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높은 가운데 이 대통령이 야당과 협상을 통해 '국민통합형 헌법안'을 도출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4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신분이던 지난달 18일 개헌 구상을 내놨다.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대통령과 검찰의 권한 축소, 5·18 정신 헌법 수록 등이 핵심 내용으로 분류됐다.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과 국무총리의 국회 추천, 대통령 직속 감사원을 국회 밑으로 재편, 대통령의 거부권 제한 등이 구체적인 안으로 거론됐다. 

    특히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에서 4년 연임제로 권력 구조를 개편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이 대통령의 견해다. 6공화국 체제에서는 대통령이 당선된 후부터 재평가를 받을 이유가 없기에 임기가 진행될수록 독선적인 면이 부각돼 왔다는 문제의식이 강했다고 한다. 

    그의 임기 내 개헌 의지도 매우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임기 중 개헌을 완성해 7공화국의 기반을 닦은 대통령이 된다면 그 자체가 큰 업적이다. 88년 체제 후 대통령들이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개헌안을 2026년 지방선거나 2028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시점을 못 박기도 했다.

    실제로 현행 헌법 체제가 시작되고 개헌은 계속해서 화두가 됐다. 1990년 1월 3당 합당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와 함께 내각제 개헌에 합의했다. 하지만 합의 문건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권력자들의 야합이라는 비판 목소리가 커졌다. 개헌은 무산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김종필 전 총재와 DJP연합을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집권 2년 안에 내각제 개헌을 약속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선됐지만 말을 바꿨다. IMF(국제통화기금) 경제 위기를 명분으로 삼았다. 결국 두 사람은 내각제 개헌을 미뤘고 개헌은 없던 일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꺼내 들며 자신의 임기 말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인기가 떨어져 국정 동력 회복이 절실했던 노 전 대통령의 전략으로 평가받자 당시 야당 대표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다. 
    ▲ 김영삼 전 대통령(왼쪽부터)과 노태우 전 대통령,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가 1990년 3당 합당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이들은 내각제 개헌에 합의했지만, 개헌은 이루지 못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도 4년 중임제를 제안했다. 2009년 공개석상에서 지시 이후 2011년 여당 지도부에게 개헌 논의를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 당내에 차기 유력 주자로 불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반대에 나섰다. 당을 양분하던 친박(친박근혜)계의 반대로 개헌은 무산됐다.

    2012년 대통령에 취임한 박근혜 전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에는 4년 중임제 개헌을 공약했다. 그랬던 그도 대통령 신분이 되자 마음을 바꿨다. 2014년 여야가 개헌을 화두로 공방을 벌이는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은 개헌 논의를 '경제 블랙홀'이라고 명명하고 차단했다. 2016년 10월 최순실 사태로 정치적 수세에 몰린 박 전 대통령은 스스로 개헌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야당은 이를 위기탈출용이라고 비판했고 개헌 논의는 진척되지 못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당선된 후 10개월 만인 2018년 3월에 개헌안을 발의했다. 야당과 협의되지 않은 개헌안은 논란이 됐다. 당시 야당이던 자유한국당은 국회의 총리 선출권 등을 요구했으나 문 전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같은 해 5월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며 표결에 부쳐졌지만 야당이 표결에 불참하면서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개헌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랬던 그도 정치적 수세에 몰리자 개헌 카드를 꺼냈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로 그의 임기 단축을 골자로 한 개헌안이 국민의힘에서 거론됐고, 이후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임기에 연연하지 않고 개헌을 완수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야당으로부터 정치적 방어 수단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결국 파면됐다.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이 대통령의 개헌 의지가 크지만 넘어야 할 산은 적지 않다. 먼저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구성이 급선무다. 

    특위가 구성되더라도 여야가 생각하는 개헌안은 판이하게 다를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은 대선 과정에서부터 개헌을 맡은 대통령의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자고 주장해 왔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의 핵심 공약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를, 2028년 총선에 대통령 선거를 함께 실시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4년으로 맞추자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단축에는 부정적이다. 후보 시절에도 자신은 5년 임기를 마칠 것이라는 점을 수차례 말해왔다.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이 내놓은 개헌 구상에 대해서도 국회의 권력을 강화해 다수당에 모든 권력이 집중될 수 있는 부작용이 크다고 반대하고 있다. 

    결국 전문가들은 현재 정치 구조상 개헌 자체가 힘의 논리로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좌파 진영의 의석이 190석에 달하는 상황에서 국민의힘 소속 의원 10명이 개헌안에 찬성하면 개헌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킬 수 있다. 국민의힘을 패싱한 개헌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방통행식 개헌 논의가 진행되면 반발 여론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과 당선 이후에도 국민 통합을 강조한 만큼 헌법 개정을 특정 진영이 주도하게 하는 것보다는 '통합형'으로 가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서울 소재 한 대학 법학전문대학원의 헌법 교수는 "헌법은 국가의 정체성을 적시한 최고 규범인 만큼 힘으로 밀어붙여서 할 일이 아니다"라면서 "대한민국이 100년을 입을지도 모르는 옷을 진영 논리로 만들면 결국 국민 통합이 아니라 국가를 갈가리 찢어 놓는 역사의 누더기를 만든 죄인으로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승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