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용지 유출·관리자 부정 … 관리 능력 의문'소쿠리 투표' 반복, 내부 채용 비리도 한몫끝없는 전자개표 논란 … 의혹만 계속 커져美·대만 사례가 던지는 투명성 확보 교훈
  • ▲ 경기 용인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이름에 이미 기표된 사전투표용지가 발견됐다. ⓒ제보자 제공

    사전투표 첫날부터 드러난 선관위 관리 부실

    제21대 대통령 선거의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2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한 사전투표소에서는 투표 관리 부실로 인한 혼란이 벌어졌다. 투표소 안의 대기 공간이 부족해 주민센터 밖으로 줄을 세운 탓에 여러 유권자가 투표용지와 회송용 봉투를 든 채 투표소 밖 거리로 나오는 이례적인 광경이 목격됐다. 심지어 일부 투표용지가 투표소 인근 주택가까지 들고 이동되는 모습이 확인되면서 선거의 절차적 무결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즉각 해당 사안에 대해 "관리 부실로 국민께 혼선을 초래했다"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날 신촌동 투표소에선 또 다른 투표 관리 문제가 발생했다. 투표지를 미리 교부받고도 줄을 벗어나 인근 식당에 다녀온 두 여성 유권자가 별도의 신원 확인 없이 다시 입장해 투표를 이어가자 대리 투표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공직선거법은 투표용지를 교부받은 선거인이 투표소를 이탈해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어 이러한 행위는 불법이라고 할 수 있다. 대리 투표로 이어진 정황은 확인되진 않았지만 투표 사무원이 해당 유권자들의 재입장을 제지하지 않은 것은 관리 소홀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투표용지를 받은 뒤 투표소를 이탈하면 비밀투표 훼손이나 매표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전투표 이튿날인 30일에는 투표 사무원이 직접 부정을 저지른 사건까지 드러났다. 서울 강남구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일하던 임시 투표사무원이 자신의 남편 신분증을 이용해 남편 몫의 투표지를 대신 발급받아 몰래 투표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이 직원은 본인 신분증으로도 한 번 더 투표를 시도하다가 "누군가 두 번 투표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현행범으로 적발됐다. 공정한 관리를 책임져야 할 선거 업무 담당자가 가족을 대신해 투표권을 행사하려 한 이 사건은 유권자들에게 큰 충격과 실망을 안겼다.

    선관위는 해당 직원을 즉각 직위해제하고 수사기관에 고발 조치했지만 일련의 사건들로 선거 관리에 대한 국민 불신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했다.

    게다가 같은 날 경기 용인의 한 사전투표소에서는 이미 기표된 투표용지가 투표용 봉투 안에서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돼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한 20대 여성 유권자가 본인 신원을 확인 받고 교부 받은 봉투를 열어보니 그 안에 이미 특정 후보 이름이 찍힌 접힌 투표지가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선관위는 즉각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며 "유권자가 누군가에게서 이미 작성된 투표용지를 건네받아 빈 봉투에 넣은 것으로 의심된다"고 밝혔지만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자 선관위의 해명이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켰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처럼 사전투표 이틀 동안 투표용지 외부 유출, 무자격 투표, 투표사무원 대리 투표, 허위 부정투표 신고 등 전례 없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선관위의 관리 능력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 지난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코로나19 확진자 사전 투표에서 투표가 완료된 투표 용지를 소쿠리에 모아놓고 있는 모습. ⓒ뉴시스 ⓒ

    '소쿠리 투표'부터 '채용비리'까지 … 쌓여온 불신

    사실 선관위의 부실한 선거 관리에 대한 논란은 이번만이 아니다. 불과 3년 전인 2022년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당시에도 소위 '소쿠리 투표' 파동이 일어나 선관위에 대한 거센 비판이 제기됐다. 코로나19 확진자들을 대상으로 별도로 진행한 사전투표 과정에서 선관위 측 실수로 확진자들이 직접 투표함에 투표지를 투입하지 못하고 임시 용기에 표를 모아 후에 한꺼번에 투입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플라스틱 바구니나 종이박스, 비닐봉투 등이 동원돼 투표지가 옮겨 담겨졌고 일부 투표지는 분실 또는 훼손 우려를 낳았다.

    해당 비정상적 투표 처리 장면이 언론과 SNS에 공개되면서 국민은 큰 충격을 받았고 "소쿠리(바구니)로 표를 옮겼다"는 의미의 '소쿠리 투표'라는 비판적인 별칭까지 붙었다. 선관위는 거듭 사과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으나 한 번 실추된 신뢰는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이번 2025년 사전투표의 관리 부실 사태가 벌어지자 언론은 "2022년의 소쿠리 투표 악몽이 재현됐다"며 국민 실망과 분노가 크다고 지적했다.

    선관위에 대한 불신을 키운 또 다른 요인은 내부 비리와 부정 채용 스캔들이다. 2023년 감사원 감사와 내부 조사 결과 중앙선관위 고위 간부들의 자녀를 비롯해 20건이 넘는 친인척 특혜 채용 정황이 적발돼 국민적 공분을 샀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선관위 전·현직 사무총장과 간부들의 자녀 등 최소 11명이 채용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 채용 관련 규정 위반 사례에 대한 전수 조사에서는 최근 10년간(2013~2023년) 선관위 채용 분야에서 무려 878건의 규정 위반이 적발됐다.

    공정해야 할 선거관리 기구가 내부 인사부터 불공정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여야를 막론하고 비판이 쏟아졌고, 선관위원장 사퇴와 전면 쇄신 요구가 제기됐다. 이에 선관위는 자신들이 헌법상 독립기관임을 내세워 감사원의 직무 감찰을 거부하려 했으나 여론이 악화일로로 치닫자 결국 입장을 바꿔 외부 감사를 수용했다. 선관위 수뇌부의 안이한 대응은 국민의 불신을 가중시켰고, 선관위라는 기구 자체의 중립성과 투명성에 대한 회의론까지 번졌다.

    이외에도 2024년 4월 총선 당시에는 일부 과열된 시민들과 유튜버들이 전국 수십 곳에 사전투표소에 무단으로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다 적발되는 사건도 있었다.

    이들은 선관위를 믿을 수 없다며 투표 부정을 직접 잡아내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정작 그 행위 자체가 불법이었다. 이러한 일까지 벌어진 것은 그만큼 선거 과정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누적돼 왔음을 방증한다. 

    실제로 선관위는 최근 "과거 선거에서 제기된 부정선거 주장은 법원에서 모두 근거 없다고 판결 났다"며 부정선거 의혹을 일축하면서도 계속 반복되는 의혹 제기가 국민 통합을 저해하고 선거 불복 움직임까지 낳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선관위 발표대로 법원은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제기된 수개표 조작, 득표수 왜곡 등의 소송을 줄줄이 기각하거나 각하하며 부정 개표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선거 관리의 잇따른 허점 노출과 선관위 내부 비리는 대중의 의심을 키우는 온상이 됐고, 일부 정치인까지 이를 활용하거나 부추기면서 선거 불복 여론이 잔존하게 된 상황을 낳았다. 이처럼 장기간 쌓인 국민 불신의 맥락에서 2025년 사전투표 관리 부실 사태는 '역시 선관위는 믿을 수 없다'는 냉소를 확산시키며 선거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폭발시켰다.

    ▲ 제21대 대통령선거 선상투표 기간(26~29일)인 26일 부산 연제구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 선거상황실에서 선관위 직원들이 망망대해에 있는 선박의 선원들이 투표한 후 (전자)팩시밀리를 이용해 전송한 투표지를 접수하고 있다. 선상투표 기간 원양어선 등 454척의 선박에 승선 중인 선원 3051명이 투표에 참여할 예정이며, 선관위는 기표된 부분이 봉합된 상태로 수신되는 '쉴드팩스'로 투표지를 수신한 뒤 투표자의 주민등록지 관할 구·시·군 선관위에 등기 우편을 보내고 구·시·군 선관위가 선거일에 이를 개표한다. ⓒ뉴시스

    전자개표 둘러싼 끝없는 의혹 … 불신 자초한 선관위

    현재 우리나라의 사전투표와 개표 시스템 자체에 구조적 취약점과 투명성 부족 문제가 내재해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됐다. 사전투표는 편의성 향상을 위해 도입됐지만 거주지 외 지역에서 투표한 표를 봉투에 담아 옮겨 개표하는 특성상 개표 전까지 상당 시간 보관·이송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 대한 유권자 감시가 어려운 구조가 부정선거론을 지폈다. 실제로 일부 의혹 제기자들은 사전투표함이 외부에 보관되는 과정에서 투표함 바꿔치기나 가짜 투표지 투입 가능성을 꾸준히 지적해왔다.

    그럼에도 QR 코드가 인쇄된 사전투표용지나 전자개표 시스템의 통신망 등을 둘러싸고 각종 의구심이 증폭돼 온 것이 사실이다. 2020년 총선 이후 "사전투표용지에만 있는 QR 코드를 통해 개표기에 특정 지시를 내릴 수 있다" "개표기가 화웨이 장비가 사용된 통신망에 연결돼 외부 해킹 신호를 받을 수 있다" 등의 각종 디지털 개표 조작 의혹과 함께 선거 무효 소송이 제기됐다. 

    물론 이런 주장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소수 인원과 프로그램 조작만으로도 대규모 개표 조작이 가능하다는 디지털 취약성 담론은 온라인상에 널리 퍼져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전자개표 시스템의 투명성 부족이 심각한 제도적 고민거리로도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개표기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블랙박스와 같아서 일반 국민이나 참관인이 개표 과정을 직접 검증하기 어렵다는 지적은 과거부터 제기돼 왔다.

    실제로 독일의 연방헌법재판소는 2009년 판결에서 "평균적인 유권자가 이해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개표가 이뤄져서는 안 된다"며 전자투표기의 투명성 결여를 이유로 사용 금지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일본에서도 전자투표를 일부 지방선거에 도입했다가 기계 오류와 보안 취약 문제가 제기돼 더 확대하지 못했고, 결국 사람 손으로 검증하는 '수개표 원칙'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전자개표기의 보안성을 둘러싼 전문 검증도 미흡하다 보니 한국에서도 2020년 총선 후 민간 IT 전문가들과 일부 정치권 인사가 개표기 프로그램 코드를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선관위는 보안과 선거 중립성을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2023년 국가정보원이 선관위에 전자개표기의 운영 프로그램이 내부자 개입 시 해킹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는 일까지 발생해 파장이 일었다.

    이에 선관위는 뒤늦게 개표기 보안 대책을 내놓았다. 승인된 USB 이외 장치는 인식하지 못하도록 개표기 소프트웨어를 개조하고, 사전투표함 보관 장소에 24시간 CCTV를 설치해 실시간 영상 공개를 약속했다.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고자 2024년 총선부터는 개표 시 모든 투표지를 개표기가 분류한 후 사람이 한 번 더 육안 확인하는 '수검표' 절차도 새로 도입했다.

    선관위도 "반복적인 부정선거 의혹 제기가 국민 통합을 저해하고 선거 결과 불복을 야기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개표 과정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조치 없이는 이러한 의혹을 잠재우기 어렵다고 밝혔다.

    결국 기술적 보완과 제도 개선을 통해 '완전한 개표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면 선거 결과에 대한 국민의 승복과 민주주의의 안정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 최근의 교훈이다.

    ▲ 지난 2024년 1월 13일 대만 신베이시의 한 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하는 모습. 이날 대만 유권자들은 향후 4년간 중국과의 관계를 좌우할 새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투표에 나섰다. ⓒAP/뉴시스

    미국·대만 사례가 던지는 민주주의 신뢰의 중요성

    선거 과정의 투명성과 신뢰가 훼손되면 민주주의 기반이 흔들린다는 점은 국내외 여러 사례에서 확인된다. 한국보다 먼저 전자투표나 사전투표 제도를 시행한 국가들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투명성 대책을 모색해왔다.

    미국은 2020년 대통령 선거 후 대규모 부정선거론이 제기됐다. "선거를 도둑맞았다"는 주장이 인터넷과 일부 정치 세력을 통해 확산되자 2021년 1월 미국 의회 폭동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후유증으로 미국인의 선거제도 신뢰도는 크게 하락해 한 조사에서는 "미국 선거제도의 무결성을 매우 신뢰한다"고 답한 유권자가 20%에 불과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은 주별로 투표 제도가 달라 전자개표기나 우편투표 등을 광범위하게 활용하지만 2020년의 혼란 이후 각 주에서 투표 장비에 대한 감사 강화, 선거 결과에 대한 재검표 법제화 등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을 벌이고 있다.

    대만은 '선거는 당일에 투표소에서 직접 종이투표로 한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나라다. 사전투표나 부재자투표 제도를 아예 두지 않고 모든 유권자는 투표일에 자신의 주민등록지 투표소에 가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불편함은 있지만 그만큼 관리가 단순·명확해져 투표함 이동이나 별도 보관 절차가 없다. 개표도 투표 종료 직후 투표소별 공개 개표를 실시해 주민과 참관인들 앞에서 바로 결과를 발표한다.

    대만이 이런 방식을 고수하는 데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 과거 권위주의 통치 시절 선거부정(득표수 조작 등)이 만연하자 대만은 민주화 이후 모든 투·개표 과정을 공개하고 참관을 보장하는 제도를 발전시켰다. 

    선거법에 따라 사용되지 않은 남은 투표용지까지 철저히 봉인·관리해 여분 투표지 투입이나 개표 조작 여지를 봉쇄한 것이다. 

    그 결과 대만 선거에서는 투·개표 부정 의혹이 제기될 틈이 거의 없었고 코로나19 대유행 중이던 2020년에도 우편투표 도입을 검토하지 않고 투표 원칙을 지켰다. 물론 투표일에 일정상 참여하지 못하는 유권자가 발생하는 단점은 있으나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 측면에서는 가장 확실한 방식으로 평가된다.

조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