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ℓ당 100원 혜택 … NH농협 등 업자 몫전체 주유소 10%만 편중지원 … '불공정 경쟁' 부추겨점검 나선 정부, '소상공인·골목상권' 관점서 살펴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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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이미지는 ChatGPT(OpenAI)의 이미지 생성 기능을 통해 제작됐습니다.
정부가 휘발유, 경유, 등유 등 석유 유통시장에 직접 개입에 나선 지 15년이 흘렀다. "기름값이 묘하다"라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2011년 시작된 시장 개입은 결론부터 말하면 득보다는 실이 많은 '낙제점'이다.
정부가 한국석유공사와 한국도로공사를 통해 정유사로부터 대량으로 제품을 구매해 NH농협, 한국도로공사 및 자영 알뜰주유소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알뜰주유소 공급 가격을 일반주유소 대비 ℓ당 100원 정도 낮춰 고유가로 시름이 깊어지는 가계에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다고 자신했다.
고속도로 휴게소 등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소비자가격이 내려가긴 했지만, 전국 어디에서도 100원 수준의 차이를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최근 통계(2024년)만 살펴봐도 최대치는 ℓ당 50원 수준에 그치며, 대부분 20~30원 수준이다. 게다가 제주 일부 지역(제주시)의 경우 NH농협 알뜰주유소가 주변보다 더 비싸게 팔았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유통단계에 개입해 싸게 공급한다고 해서 소비자의 실질적 혜택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구조가 아님을 의미한다. 인근 주유소와의 위치와 교통량은 물론 경쟁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이다.
정부가 기대했던 소비자 혜택은 실제 시장에서 일부 효과에 그쳤고, 100원이라는 효과는 조각나 농협과 알뜰주유소업자의 주머니만 불리게 됐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노골적인 시장 개입으로 석유 유통시장이 심각하게 왜곡됐다는 점이다.
정부 개입이 쉬웠던 첫 번째 이유는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S-OIL), HD현대오일뱅크 등 석유제품을 생산하는 정유사가 대기업이라는 점이다. 석유 사업 부문 0%대 마진율을 이어 온 대기업 정유사에 가격을 더 낮추라는 정부의 압박이었다.
게다가 모든 석유제품에는 특별소비세(부유세. 현 개별소비세. 휘발유 475원, 경유 340원. 등유 90원)가 부과되는 만큼, 휘발유를 파는 주유소 사장은 '지역유지'나 '자산가'라는 인식이 깔려 있어, 정부 개입에 대한 일반주유소 업계의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했다.
결국 2010년 1만3000곳으로 20년 만에 4배가량 폭증했던 주유소 수는 감소세로 전환되면서 작년 9월 기준 1만개 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매년 160여 개의 주유소가 퇴출당하는 등 이젠 더 이상 주유소 운영자는 자산가가 아닌 정부의 편중지원을 받는 알뜰주유소 인근 골목상권의 소상공인으로 전락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알뜰의 파워는 단순 점유율만 비교해 봐도 뚜렷하다. 전체 주유소 10% 수준에 불과하지만, 판매량은 20%를 넘는다. 압도적이다.
정부가 싸게 공급해주는 만큼, 판매량이 일반주유소가 따라갈 수 없는 구조다. 주유소의 가격 경쟁력은 ℓ당 10원 차이에도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움직이는 만큼, 100원에 가까운 혜택을 절대 소비자에게 나눠 줄 필요가 없다.
유통시장 변화도 이미 시작됐다.
알뜰주유소는 크게 일반 자영알뜰(379개), 도로공사 EX알뜰(203개), 농협알뜰로 구분되는데, 지난(2023년 10월. 2년 납품) 입찰에서 농협경제지주가 나 홀로 입찰공고에 나선 것.
그동안 농협은 정부 지시에 따라 주유소 매입에 총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2010년 198곳에 불과했던 주유소는 알뜰에 힘입어 705개까지 늘렸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만큼, 더 이상 석유공사, 도로공사 등 정부 의존 없이 홀로서기가 가능해진 셈이다.
더 이상 정부의 시장 개입이 필요 없어졌다는 뜻이다.
알뜰주유소들은 기본적으로 일반주유소보다 최소 ℓ당 60~100원정도 싸게 공급받아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많은 물량을 팔아 또다시 수익을 챙긴다. 또 석유공사가 매년 정부 알뜰 정책에 잘 따른 사업장을 대상으로 인센티브도 지급하는 데 1곳당 약 5000만원에 육박한다. 특히 폴에 대한 제약이 없는 만큼 현물시장에서 자유로운 거래를 통해 또 한 번의 기회비용을 얻는다. 정부 개입으로 운동장은 더 이상 기울어질 수 없을 정도까지 기울었다.
이번에 정부가 석유공사를 통해 추진하고 있는 '알뜰주유소 실효성 점검 연구용역'에서 반드시 살펴봐야 할 부분이다.
15년간 정부의 시장 개입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무너뜨렸고, 그 안에서 농협 등 알뜰주유소 운영 일부 업자들이 일반주유소 대비 많은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로 변질됐다.
이제 5일 후면 새 대통령에 의한 새로운 정부가 인수위원회 기간도 없이 급하게 출범한다. 탄핵에 의한 두 번째 새 정부 구축이다. 앞서 인수위 기간 없이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내각 구성에만 200여 일 가까이 소요됐다. 하지만 현실은 트럼프 미국 정부와의 관세 협상은 물론, 경기침체, 수출시장 냉각, 역성장 공포 등 해결해야 할 숙제가 산더미다. 걱정이다. 큰 숙제가 산적해 있다는 이유로 작은 정책들은 관심조차 받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비정상의 정상화'는 크고 작음이 없다.
정부가 직접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 놓고 경쟁을 하라는 것 자체가 공정경쟁에 위배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정책이다.
정유산업 자체가 이미 사양길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 개입과 규제 등으로 경쟁력을 더욱 약화시킬 경우 언젠가 그 부담과 불편함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가 10000여 소상공인을 버리고, 300여개에 불과한 '알뜰'만 챙겨서는 안 된다.

최정엽 산업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