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장악' 베네수엘라, 작년 대선 조작 이어 총선-지선서 압승엘살바도르 국회, '정부 거수기' 전락…사법부도 '대통령 연임금지' 묵과韓 민주당, '대법관 증원-비법조인' 철회했으나 우려 여전…예의주시해야
  • ▲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 시민들이 살바도르 델 문도 광장에서 하루 전 대선과 총선 결과를 국제사회가 인정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240205 EPA=연합뉴스. ⓒ연합뉴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이어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도 입법부와 사법부를 장악한 '스트롱맨(철권통치자)' 면모를 보이면서 사실상 '일당(一黨) 독주 체제'를 구축했다.

    포퓰리즘으로 국회 다수 의석을 장악한 행정부가 입법권을 활용해 사법부까지 장악하고, 사법부에 포진한 친정부 인사들이 판결로 집권 세력의 독재를 합법화하는 악순환 구도를 활용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대법관 100명 증원' '비법조인 대법관(김어준대법관법)' 등의 법안을 발의하려다 철회하는 등 사법부 압박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권이 사법부를 사실상 장악해 중국·러시아·북한 못지않은 독재 국가로 전락할지 예의주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6일(현지시각)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CNE)는 전날 치러진 국회의원 총선거 잠정 개표 결과 여당이 82.6%의 득표율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함께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주지사 당선인 24명 중 23명이 여당 소속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부정개표 논란을 빚은 대통령선거를 비롯해 최근 수년간 베네수엘라에서 목격되는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놀랄 만한 결과는 아니다.

    특히나 이번 선거에서는 여권 지도자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중심에 있는 야당 주도로 '투표 보이콧(불참)' 기류가 일찌감치 형성됐던 만큼 '여당 압승'은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것이 AFP통신과 영국 BBC방송 등의 분석이다.

    마두로 대통령은 선거 이튿날인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우린 차비스모(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이름에서 따온 좌파 포퓰리즘 성향 정치이념)의 힘을 입증했다"며 '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라고 자축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반(反)정부 성향 언론매체인 엘나시오날은 "집권당 세력에 의해 장악된" 선거당국에서 부정확한 투표율과 '깜깜이 개표'로 재차 선거 공정성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고 전했다.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 마감 후 현지 기자회견을 열어 "선거인 명부에 오른 2150만7162명 중 투표에 참여한 비율은 42.6%"라며 "2020년 30.4%와 비교해 투표율이 큰 폭으로 올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부인 '코만도 콘 베네수엘라'는 엑스(X, 옛 트위터)에 "확인 결과 투표율이 12.5%에 그쳤다"며 "우리 유권자는 한목소리로 이번 선거에 '노!'라고 외쳤다"고 보고했다.

    '코만도 콘 베네수엘라'는 지난해 대선에서 야권 후보였던 에드문도 곤살레스가 마두로 대통령에 승리했다면서 자체적으로 확보한 개표 결과를 온라인에 공개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좌파 아이콘이었던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2013년 사망 후 12년째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1월 6년 임기를 또다시 시작하면서 18년 장기 집권의 길을 닦아 놓은 상태다.

    "제국주의 국가의 제재가 모든 경제난의 원인"이라며 미국과 대립각을 세워온 그는 극심한 반정부 시위를 유혈 진압하는 동시에 입법부, 사법부, 선관위, 군, 경찰과 검찰 등 주요 집단 의사결정권자를 자신의 '충성파'로 채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는 '마두로 철권통치'의 기반으로 여겨진다. 실제 베네수엘라 선관위는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인기몰이를 하던 야권 주요 정치인들의 출마에 제동을 거는가 하면 대법원은 부정개표 논란을 일으킨 선관위 행정에 잘못이 없다는 해석을 내리기도 했다.
    ▲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하루 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대선 승리에 의혹을 제기하며 "독재자는 안 된다"는 팻말 등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240729 AP 뉴시스. ⓒ뉴시스

    공교롭게도 이런 흐름은 엘살바도르에서도 흡사한 양상으로 관찰된다.

    강력한 갱단·부정부패 척결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부켈레 대통령은 헌법의 '대통령 연임금지' 조항에도 지난해 대선에 출마, 85%대 득표율로 재선했다.

    여기에는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서방 언론에서 '친(親) 행정부'로 평가하는 입법부와 사법부의 '지원'이 한몫했다.

    부켈레 대통령은 2021년 총선에서의 여권 압승을 발판으로 자기 영향력을 극대화했다. 당시 엘살바도르 국회는 여권 측 인사를 대법관으로 대거 추천한 데 이어 야권 성향의 검찰총장을 축출하면서 '정부 거수기' 역할을 한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뿐만 아니라 대법원 헌법재판부는 '6개월 이상 대통령으로 재임한 사람은 10년 이내에 다시 출마할 수 없다'는 헌법 조항을 "임기 만료 6개월 전 휴직하면 재선은 가능하다"는 취지의 유권해석으로 무력화시키면서 부켈레 대통령에게 '골든 로드'를 깔아주기도 했다.

    지난해 엘살바도르 대선과 함께 치러진 총선에서는 일주일 넘게 '공식 개표율 5%'가 이어지며 야당으로부터 선거관리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비판을 사기도 했지만, 법원은 이마저도 흐지부지 넘어갔다.

    정치학자 아나 밀라그로스 파라는 BBC 스페인어판(BBC문도)에 "거리의 사람들은 과거에 갑작스러운 정치적 박해와 인권 침해로 정부의 영향력이 강화됐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며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의 경우) 더 많은 권력의 축적이 아니라 현재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 구조 형성에 주력할 것"이라고 짚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최근까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의 구성 요건 중 '행위'를 삭제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조희대 대법원장을 겨냥한 특검법안 △헌법재판소법 개정안(‘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으로 포함) 등을 추진해 왔다.

    특히 논란이 집중된 것은 '대법관 증원'과 '비법조인 임명' 법안이었다. 김용민 의원은 대법관 수를 기존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고, 장경태 의원은 이를 100명까지 확대하는 법안을 냈다. 박범계 의원은 비법조인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까지 발의했다.

    대법관 수를 대폭 늘린 뒤 추상적 기준을 내세워 비법조인이라도 민주당 입맛에 맞으면 임명해 '민주당용 어용 재판소'를 만들려는 시도라는 비판을 불러왔다.

    논란이 커지자 전날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는 결국 박범계 의원 등이 제출한 비법조인 대법관 임명안과 대법관 100명 증원안을 공식 철회했다.

    다만 민주당은 대법관을 30명으로 증원하는 김용민 의원 안은 여전히 추진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또한 해당 법안에 대해 "대법관 본인 외엔 대체로 원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이 대선을 앞두고 강한 역풍을 의식해 '100명 증원안'과 '비법조인 임명안'을 철회했지만, 향후 집권시 다시 추진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성재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