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마두로 행정부, 총선 앞두고 정적 70여명 체포차베스 전 정권, '대법원 장악'…투표조작해 독재 합법화 악순환민주, 특검법-법원조직법 개정안 등 대법원 압박하다가논란되자 이재명 '자제' 지시 이어'대법관 100명 증권·비법조인' 철회베네수엘라, 호텔경제학 대표 실패 사례…인플레로 국민도 해외行 '자멸 직전'
-
-
- ▲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유월절을 맞아 열린 '십자가의 길' 의식에 참여한 정치범 수감자의 가족이 정치범들의 석방을 촉구하며 들고 있던 국기로 눈물을 훔치고 있다. 250415 AP/뉴시스. ⓒ뉴시스
민주당과 당의 이재명 대통령선거 후보가 꿈꾸는 '진짜 대한민국'의 롤모델은 베네수엘라인 것일까.
베네수엘라의 야권 지도자인 후안 파블로 과니파 전 국회부의장이 23일(현지시각) 다른 야권 인사 등 70명과 함께 선거방해 음모혐의로 수사당국에 체포됐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당국은 그가 미국과 공모해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행정부를 전복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체포는 25일 국회의원 285명과 24개주 주지사, 260명 주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총선 및 지방선거를 이틀 앞두고 이뤄졌다.
마두로 정권이 수년에 걸쳐 야권 인사들을 이 같은 방식으로 '제거'해왔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도 야당이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둘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재 의회에서 집권 통합사회주의당(PSUV)과 12개 위성 정당으로 구성된 좌파연대 의석 점유율은 91%에 달한다.
한때 미국식 양당제가 자리 잡으면서 중남미 민주주의 선도국으로 평가받던 베네수엘라가 중국·러시아·북한에 못지않은 독재국가로 변모한 데에는 '정권의 대법원 장악'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법부가 정권을 견제하지 못하고 사실상 정권에 장악되면서 정권의 '폭주'가 가능해졌다.
베네수엘라의 '친정권 대법원' 문제는 지난해 7월 대선 때 주목받았다.
극심한 경제난을 참지 못한 베네수엘라 국민은 1998년 집권한 우고 차베스의 후계자인 마두로 대신 야권 대선 주자 에드문도 곤살레스에게 많은 표를 줬다.
그럼에도 정부는 '마두로 승리'를 발표했으나, 선거조작 증거가 계속 나오면서 미국 등 서방국이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고 국민 반발도 거세졌다. 정부가 선거에 개입했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뉴스도 쏟아졌다.
이런 논란 가운데 최종판결을 해야 할 대법원은 선거 3주 뒤 "이 선거 결과는 유효하고 이 판단에 대한 항소는 불가능하다"면서 마두로에게 최종적으로 승리를 안겼다. 10여년에 걸쳐 대법원을 정권의 '하수'로 만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법원 독립성 박탈은 1999년 집권한 군부 출신 좌파 지도자 차베스가 시작했다. 일단 그는 집권 직후 국민투표를 통해 이른바 '제헌(헌법 제정) 의회'를 만들어 기존 국회를 무력화시켰다. 제헌의회에 입성한 친정부 인사들을 앞세워 '사법 개혁'이란 이름으로 기존 대법원을 무력화했다.
이미 여당이 다수를 차지한 국회가 대법관을 선출하도록 해서 친정부 인사로 대법원(공식명 '최고법원')을 채웠다. 2004년에는 대법관 수를 기존 20명에서 32명으로 12명 늘렸다. 늘어난 12명 전원은 정권 입맛에 맞는 대법관으로 뽑았다.
결국 베네수엘라는 포퓰리즘으로 국회 다수 의석을 장악한 행정부가 입법권을 활용해 사법부까지 장악하고, 사법부에 포진한 친정부 인사들이 판결로 집권 세력의 독재를 합법화하는 악순환 구도가 굳어진 상태다.-
- ▲ 베네수엘라 야권 인사 체포 사실 밝히는 내무부 장관. 베네수엘라 내무·법무·평화부 제공. AFP=연합뉴스. ⓒ연합뉴스
앞서 베네수엘라 대법원은 2018년 대선에서도 마두로를 적극 거들었다.
상황은 지난해 대선과 유사하게 전개됐다. 당시 야권 후보였던 후안 과이도 전 국회의장이 더 많은 표를 얻었지만, 마두로 정권이 개입해 선거 결과를 뒤집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쏟아졌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여러 증거를 근거로 야권 후보 과이도를 선거의 실제 승자로 인정하고, 그를 임시 대통령으로까지 인정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대법원은 과이도가 쿠데타를 시도했다며 출국금지와 자산동결 명령을 내렸고, 결과적으로 마두로 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 같은 사법부의 정권 옹호 행태는 최근 한국 정치권에서 벌어진 사법부 압박 논란과 오버랩되며 우려를 낳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대법원 판결에 반발하며, 사법부를 압박하는 성격의 법안을 잇달아 추진했다.
민주당은 최근까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의 구성 요건 중 '행위'를 삭제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조희대 대법원장을 겨냥한 특검법안 △헌법재판소법 개정안(‘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으로 포함) 등을 추진해 왔다.
특히 논란이 집중된 것은 '대법관 증원'과 '비법조인 임명' 법안이었다. 김용민 의원은 대법관 수를 기존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고, 장경태 의원은 이를 100명까지 확대하는 법안을 냈다. 박범계 의원은 비법조인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까지 발의했다.
대법관 수를 대폭 늘린 뒤 추상적 기준을 내세워 비법조인이라도 민주당 입맛에 맞으면 임명해 '민주당용 어용 재판소'를 만들려는 시도라는 비판을 불러왔다.
이에 일각에서는 비법조인에게 대법관 임용의 길을 열어주는 데에 신중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왔고, 대한변호사협회도 즉각 재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변협은 비법조인의 대법관 임명 방안에 대해 "대법원의 핵심 기능인 법률심 역할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며 "다수 의견과 반대 의견을 치열하게 논증하는 과정에서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없는 인사가 존재한다면 대법원판결의 권위와 일관성이 무너져 사법 신뢰가 훼손된다"고 우려했다.
논란이 커지자 이재명 후보는 지난 24일과 25일 관련 입장을 내고 "나와 당의 뜻이 전혀 아니다"라며 "당에도 자중하라고 지시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26일,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는 결국 박범계 의원 등이 제출한 비법조인 대법관 임명안과 대법관 100명 증원안을 공식 철회했다.
다만, 민주당은 대법관을 30명으로 증원하는 김용민 의원안은 여전히 추진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 후보 또한 해당 법안에 대해선 "대법관 본인 외엔 대체로 원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이 대선을 앞두고 강한 역풍을 의식해 '100명 증원안'과 '비법조인 임명안'을 철회했지만, 향후 집권 시 다시 추진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 ▲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보건부 앞에서 교사, 공공근로자, 연금 수급자들이 '월급, SOS, 굶주림'이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급여·연금 인상, 복리후생비 전액 지급 요구 시위를 하고 있다. 230119 AP/뉴시스. ⓒ뉴시스
또 다른 문제는 이재명 후보의 호텔예약금 10만원을 냈다가 취소하더라도 돈이 돌면서 경제가 살아난다는 이른바 '호텔경제학'이다.
이 후보는 2017년 대선 당시 호텔예약금이 인근 소상공인에게 돌면서 결과적으로 예약이 취소돼 투입된 돈이 없어지더라도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이론을 설파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는 "어떤 지방자치단체장이 법인카드를 들고 가서 정육점에서 소고기 결제하고 과일 가게에서 결제한 다음에 나중에 취소하면 그 동네 경제가 돈다는 그런 이론"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실제로 구현된 사례가 짐바브웨 아님 베네수엘라"라며 "그 나라들이 하이퍼 인플레이션이라든지 과잉복지 때문에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었는지는 우리 국민이 아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걸 지금 대한민국 경제에 적용하겠다고 들고나온다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1970년대 1인당 GDP는 스페인과 비슷했고, 남미에서는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부유했다. 수도 카라카스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가 직항으로 왕래할 정도였다.
베네수엘라에 막대한 부를 안겨준 것은 석유였다. 2023년 미국 에너지관리청의 원유 매장량 조사에서 3038억배럴로 세계 1위에 오른 '석유대국'이다. 1960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를 설득해 석유수출국기구(OPEC) 창립을 주도했던 국가도 베네수엘라였다.
이런 베네수엘라도 '자원의 저주'는 피하지 못했다. 서구 에너지기업들이 내미는 '오일머니'의 단맛을 본 베네수엘라 지도자들은 제조업을 육성하는 대신 민족주의 기반의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며 몰락을 자초했다.
산업경쟁력이 약화하는 가운데 몰락에 쐐기를 박은 것은 마두로였다. 2013년 집권한 마두로는 국제유가 하락으로 인한 재정 악화에 돈을 찍어 대응했다. 늘어난 현금에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물가가 오르자 베네수엘라 경제는 잠식됐다.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남은 경제난 극복의 기회는 선거를 통한 정권 심판뿐이다. 하지만 포퓰리즘 정책의 단맛에 심취했던 유권자들이 정신을 차릴 땐 마두로 정권이 선거관리위원회와 사법부, 언론을 장악하고 정적들을 제거한 뒤였다.
베네수엘라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전력 부족, 이에 따른 국민의 해외 이탈로 자멸 직전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발표한 2025년 세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베네수엘라의 연간 GDP 성장률을 -4%로 제시했다.
배경에는 포퓰리즘과 사법부를 장악으로 중국·러시아·북한에 못지않은 독재국가로 변모시킨 마두로 정권이 있다. 닮은 구석이 참 많은 한 정당과 그 후보에게 묻고 싶다. 정말 베네수엘라 수준의 나라를 원하는 건가.

성재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