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긴축' 내세운 시리자, 구제금융 협상 실패그리스, 포퓰리즘 대가로 금융 시스템 붕괴호텔경제학, 과거 그리스 실패와 오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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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데일리 DB.
어려울 때 사이비 종교가 찾아오듯 위기 속 정치에도 유사 과학, 유사 경제가 스며들기 쉽다.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런데 정치인이 마치 '세상에는 원래 쉬운 길이 있었는데, 그 길을 외면했기 때문에 우리가 힘들어진 것'처럼 호도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기만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위험한 포퓰리즘의 문을 여는 행위다.
2015년 그리스가 그랬다. 급진좌파연합 시리자(SYRIZA)는 반(反)긴축을 기치로 집권했다. "긴축을 중단해도 구제금융을 받을 수 있다. 재정을 확장하면 오히려 경제가 살아나 채권단과의 협상력이 커진다"는 주장은 말로는 그럴듯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빚쟁이가 빚을 더 내며 살아보겠다는 주장을 국제 채권단이 곧이곧대로 받아줄 리 없었고, 결국 시리자 정부는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됐다.
그리스는 2015년 7월 5일 긴축정책 수용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국민의 61.3%가 반대표를 던지며 "긴축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당시 치프라스 총리는 이를 두고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선언하며, 채권단과의 협상에 강경한 입장을 유지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가 긴급히 소집됐고 은행 영업 중단, ATM 인출 제한 등 자본통제가 시작되며 경제는 사실상 마비 상태에 놓였다. 시장의 압력과 유로존 탈퇴(Grexit)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오던 상황에서, 그리스 정부는 국민투표의 결과를 뒤로한 채 입장을 선회하게 된다.
결국 같은 달 12~13일, 치프라스 총리는 EU 정상회의에서 제3차 구제금융안을 수용했다. 내용은 긴축 조건의 전면 수용, 국유자산 매각, 세제 개편, 연금 개혁 등 그동안 국민이 반대한 조치들이 그대로 포함된 것이었다. 사실상 국민투표 이후 불과 8일 만에 민의와는 반대되는 결정을 내린 셈이다.
이는 세계 정치사에서 드물게 목격된, 민주주의의 상징인 국민투표 결과가 국제 금융 현실 앞에서 무력화된 사례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고통으로 돌아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호텔경제학'은 그리스의 '반 긴축' 실험과 오버랩된다.
이 이론은 '반 긴축'과 마찬가지로 현실과 전혀 맞지 않다. 호텔경제학은 기본적으로 한계소비성향(MPC)이 1에 가깝다는 전제를 필요로 한다. 쉽게 말해 국민들이 버는 돈을 100% 소비하면 돈이 경제 안에서 계속 순환된다는 논리다. 이렇게 듣고보면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수 있을 뿐더러 한국 가계의 MPC는 0.3도 채 되지 않는다. 결국 호텔경제학의 전제는 우리 현실과 맞지 않는 가정 위에 서 있는 셈이다.
정치가 검증되지 않은 경제 이론의 일부 만을 취해 마치 묘수인양 포장하고, 그로써 유권자를 현혹하는 순간, 현실을 무시한 경제 실험은 국민 전체를 리스크 위에 세우게 된다.
'호텔경제학'이든 '반 긴축론'이든, 그것이 아무리 학문적 언어를 두르고 있다 해도, 그 자체가 정책의 정당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특히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마치 오래된 학문적 논쟁을 가져온 것처럼 이야기하며 정책 포퓰리즘을 포장하는 행위는 큰 문제다. 표를 노린 정치적 셈법은 케인스의 이름으로 포장한다고 해도 진짜 경제학이 될 수는 없다.

정훈규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