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경제학, 한계소비성향 1 가정해 현실과 동떨어져 경제 성장, '돈이 돌았는가' 아닌 아웃풋 증가 이뤄져야 정부이전소득, 국민 미래 소비 앞당겨 사용하는데 그쳐 지역화폐, 인플레 촉발 우려감 … "세상에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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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호텔 경제학'을 둘러싼 논란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이 후보는 호텔 경제학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한 여행객이 호텔에 예약금 10만원을 지불하고 이 돈이 호텔에서 가구점, 치킨집, 문방구를 거쳐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 거래 구조를 예로 들었다. 이후 여행객이 예약을 취소하고 환불을 받는 상황을 가정하면서 "이 마을에 들어온 돈은 결국 없는데 거래들이 발생했다. 이게 경제다"라고 했다. 실제로 마을에 새로 유입된 자금은 없지만 여러 경제 주체들을 거치며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논리다.
◇'모든 소득이 곧바로 소비로 연결' 전제는 잘못
온라인 상에서는 '호텔 경제학'을 반박하는 각종 패러디가 쏟아진다. 최근 내한 공연을 취소한 미국 힙합 가수 카녜이 웨스트와 한국에서 '노쇼' 사건을 일으켰던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이른바 '날강두' 버전이 대표적이다. 호텔 경제학의 비현실성을 비꼬아 설명하는 내용이다. 호텔 경제학이 자가발전으로 무한동력을 만들어낸다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며, 멀티탭 플러그를 같은 멀티탭에 꽂은 멀티탭 사진이 패러디물로 공유되기도 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이재명 후보는 호텔 경제학 정면 돌파에 나섰다. 21일 인천 남동구 선거유세에서 "10만원이라도 돈이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왔다갔다가 몇 번 돌면, 그게 10바퀴를 돌면 100만원이 되는 것"이라며 강변했다. 이재명 후보의 경제 책사로 불리는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도 페이스북에 "돈이 잘 돌게 해서, 새로 '돈풀기'를 하지 않고도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어떤 상황을 단순화해서 소개한 '호텔 예시'"라며 논란 진화에 나섰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호텔 경제학'이 현실과 괴리가 크다고 지적한다. 이재명 후보의 호텔 경제학은 모든 수입이 전액 소비로 이어지는 한계소비성향 1인 경우를 가정한다. 한계소비성향은 새로운 수입이 생겼을 때 저축하지 않고 소비하는 금액의 비율을 말한다.
현실적으로 한계소비성향이 1인 경우는 사실상 없다. 수입이 발생하면 일정 부분은 저축하거나 부채 상환에 쓰고 나머지가 소비로 이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모든 소득이 곧바로 소비로 연결된다는 이재명 후보의 전제는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도 "이재명 후보가 말한 '호텔 경제학'은 소비가 무한 순환되는 구조를 그려낸 것인데 한계소비성향이 1로 계속 순환되면 이는 비현실적인 무한 동작이 아니냐"고 꼬집었다.
◇ 호텔 경제학, 생산은 빠지고 유통만 존재
이재명 후보가 제시한 '호텔 경제학'은 소비 순환 구조를 설명하는데 초점을 둔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현실의 재정정책이 지향해야 할 방향과는 거리가 있다고 본다. 경제 성장의 핵심은 '돈이 돌았는가'가 아니라 실질적인 생산(아웃풋) 증가에 있다는 점에서다.
이재명 후보는 "케인즈 이론의 승수효과를 예를 들어 이야기 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케인즈는 댐을 건설하고 도로를 깔고 항만을 짓는 등 인프라 투자를 통해 아웃풋을 창출하는 방식의 재정 지출을 강조했다. 이 같은 투자를 통해 노동이 필요해지고 임금이 발생하며 소비와 생산이 순환하는 구조가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호텔 경제학'은 생산은 빠지고 유통만 있다"면서 "지역화폐 등을 통해 교환이 늘면 사회적 후생(Social Welfare)이 개선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생산이 수반되지 않은 유통만으로는 성장 지표를 끌어올릴 수 없다"고 말했다. 생산 없이는 '파이를 키우는' 성장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어 "수요가 공급을 창출할 것이라는 주장도 펼 수 있겠으나 문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제로 성장 수준의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정부의 재정 투입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재정 지출 방식에 있어 '어떻게 풀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경기회복을 목표로 한다면 지역화폐 같은 단기 소비 유도책보다는 SOC 투자 등 생산을 이끄는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본다.
일반적으로 재난지원금과 같은 정부이전소득의 승수효과는 0.2~0.3 정도로 낮은 편이다. 즉 1조원의 이전소득이 투입되더라도 실제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는 규모는 2000억~3000억원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정부이전소득이 실제로는 국민들의 미래 소비를 앞당겨 사용하는 데 그칠 뿐, 실질적인 소비 확대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에 근본적인 경기 회복을 위해서는 지역 스스로 재정 자립이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역화폐나 현금 지원 등의 형태의 소비 진작이 단기적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없고 정례화하겠다는 접근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결국 지역 경제가 자생력을 갖추려면 세제 혜택, 보조금 등 실질적 지원 뿐 아니라 각종 입법 사항을 포함한 제도적 여건 개선을 병행해 지역 내 기업 활동 기반을 확충하고 세수 확보를 위한 지속가능한 경제 생태계를 조성하는 방향의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안동현 교수는 "펌프에서 물이 안 올라오면 마중물을 붓지만 계속 부을 수는 없는 것처럼,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지출은 일회성에 그쳐야 한다"며 "생산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재정지출이 효과적"이라고 했다. 지속적인 재정 부담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생산과 연관된 재정 지출로 경기를 끌어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李, 지역화폐 효용 주장했지만 인플레이션 우려 상당
또 이재명 후보는 자신의 핵심 공약인 지역화폐 효용 차원에서 호텔 경제학을 꺼냈지만, 지역화폐가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것이라는 우려도 상당하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역화폐도 결국은 국민세금으로 조달되는 것"이라며 "공급이 제한된 상태에서 유동성만 늘리면 오히려 사업자들이 상품 가격을 높이고 공급은 늘어나지 않는 등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게 된다"고 했다.
최근 이재명 후보에게 우호적 태도를 보였던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도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정 전 주필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골목길의 가게들이 승수효과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이 후보의 주장이지만, 우선 첫째 가게에서 두 번째 가게로 넘어갈 때 원재료, 감가상각 등 70~80%가 소실되기에 두 번째, 세 번째는 쓸 돈이 거의 없어진다"며 "마술은 다시 호텔에 이르지도 못한 채 다시 말해 호텔업주에게 빚만 남긴 채 금방 사라져 버린다"고 지적했다.
이어 "골목이 계속 돌아가려면 돈이 계속 들어와야 하는데 그 결과는 부동산 폭등 등 인플레이션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며 "호텔 경제학은 일종의 마술이고 잘못된 경제관의 본보기"라고 했다. 정 전 주필은 장 전 주필은 "경제는 우리의 삶이고, '땀을 흘리지 않으면' 삶은 절대로 개선되지 않는다. 골목경제학은 신봉하는 유사 케인지언(케인즈주의자)들이 많지만 마술일 뿐이다"며 "'무한정의 돈을 풀 수 있다'는 소위 현대화폐이론은 이미 실패가 인정됐다"고 이재명 후보가 주장하는 적극적인 재정 운용에도 선을 그었다.

최은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