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률 0%대인데 대선 공방은 '사회주의식 원가 타령' 기업은 커피 원가 넘어 제조품 전반 원가 공개 요구 이어질지 우려 호텔 경제학의 '노쇼'는 과거 김대중 정부 '길거리 카드 발급'과 비슷카드 발급 통해 인위적 성장했다가 신불자 300만명 생긴 '카드대란'치환민노당 후보는 부유세와 대기업 법인세 40%까지 경제 성장 일으킬 구조개혁 프로그램은 대선 주자 누구에게도 안보여
  •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연합뉴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올해 한국 경제가 0.8% 성장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2월 발표한 전망치 1.6%에서 석 달 만에 반토막난 것이다. 

    내수 부진의 골이 깊은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수출이 크게 줄어들 수 있음을 이유로 내세웠다. 관세 수준이 더 오르면 성장률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올 해 뿐 아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앞으로 2년 동안은 "혹한의 시기를 보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전직 경제 부처 장관은 "차기 정부 누가 집권을 하든 우리 경제는 최소 2년 동안은 고생을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제로 성장의 시대'...'성장 담론'은 사라지고 '사회주의식 원가 타령'

    말로만 거론되던 제로 성장의 시대가 현실로 다가왔지만, 대선 국면에서 정치권이 내놓는 해법은 추상적 수준에서 머물러 있다. 지금은 여권이 아니지만, 보수우파 진영인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내놓는 해법조차 '일자리 대통령'이라는 막연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보다 구체적이고, 대한민국의 산업 구조를 대개조하거나 거시적 측면의 '환골탈태'를 가늠케 하는 특단의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김 후보의 정책은 '반(反) 성장적'이지는 않다. 좌파 진영에서 내놓는 경제 정책과 경제 철학은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들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재명 후보가 꺼내 논란이 되고 있는 '커피 원가 120원' 발언과 '호텔 경제학'은 그의 경제관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적 모습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이 후보는 TV토론 당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공격에 대해 "예시를 든 것으로 (비판이) 극단적"이라고 공박했지만, 지난 20일 고양 유세에서는 다시 '커피 원가 120원' 발언에 "틀린 말 했냐"고 항변했다. "휴게음식점 같은 거 해서 커피 원가 120원이라던데 7000~8000원, 만 원 받고 팔고 그러면 손님이 많이 오면 그게 더 낫지 않나, 그렇게 바꾸라고 제가 얘기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후보의 발언이 예시일 수도 있고, 그가 최근 입버릇처럼 말하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실용론'이 자신의 경제 철학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기업인과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커피 원가 발언을 극도로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호텔 경제학'이 거시 경제적 차원에서 '승수효과'에 대한 철학적 담론으로 치부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원가' 개념은 기업의 명망을 좌우하는 핵심적인 요인이기 때문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커피 원가는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으며 원가에는 임대료와 인건비 등 다양한 비용이 포함된다"며 "커피 한 잔의 원가를 120원으로 단정 지어 커피숍이 폭리를 취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외식업을 주업으로 하는 한 대기업 임원은 "이 후보가 집권할 경우 커피 원가 뿐만 아니라 다른 가공 식품의 원가까지 모조리 계산하고 들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물가 잡기를 명분으로, 서민들에게 예민한 각종 품목들의 원가를 공개하면서 가격 인하를 압박할 것이라는 뜻이다. 다른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노무현 정부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이 대기업 총수들과 일대일 면담을 통해 기업의 전략적 측면을 압박하던 상황을 꺼냈다. 

    즉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 본인은 한 마디만 하더라도, 부처의 공정위원장과 국세청장, 산업부 장관, 금융감독원장 등이 줄줄이 나서서 은행의 금리 인하를 주문하고 기업의 원가 공개와 가격 인하를 '충성심' 차원에서 압박할 경우 기업들이 남아날 곳이 없다는 얘기다.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이처럼 긴장하는 핵심 원인은 바로 '원가'에 있다. 시장 경제에서 '원가'는 사람의 '속살'과 같아서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외에 오픈해서는 안되는 핵심 부분이다. 삼성전자만 하더라도 반도체 등 일부 품목은 영업이익률이 한때 50% 가까이 가기도 했지만, 가전 제품 등 상당 품목은 5%도 채 안되는 것이 허다하다. 

    그런데 대기업들의 생산 품목마다 원가를 공개하기 시작하면 시장 경제의 수요와 공급은 실종되고, 하나를 팔아서 얼마 남느냐는 '사회주의식 원가 타령'만이 남무하게 될 것이라고 경제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제로 성장 시대에 상속증여세 최고세율 90%, 법인세 40% 

    집권 가능성은 떨어지지만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가 20일 발표한 경제 정책은 시장에 충격을 줬다. 

    권 후보는 상속증여세를 현행보다 90% 인상하고, 최고세율도 90%로 상향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여기에 법인세 최고세율 40% 구간 신설을 공약하는 한편, 순자산 100억 원 이상 보유자를 대상으로 부유세를 신설하겠다는 얘기도 했다. 

    그의 정책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없지만, 시장에서는 그의 정책을 놓고 이재명 후보가 대표 시절 논란이 됐던 금융투자소득세의 논란을 다시 치환하고 있다. 이 후보는 금투세 논란 당시 시행과 유보를 놓고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막판 시장의 거센 반발에 한발 물러섰다. 일부에서는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세수 부족을 이유로 금투세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다는 관측도 꺼낸다. 

    이는 반도체법을 하면서 연구개발(R&d)에 대해 '주 52시간 예외'가 불발된 문제에서도 확인된다. 시장에서는 '실용'을 얘기하면서 52시간에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수는 세원 곱하기 세율인데, 세율을 급진적으로 높이면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며 "세율을 세계 평균보다 높인다고 해서 반드시 세수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의 투자이민 규모가 전 세계 4위에 달하는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높은 상속세 부담이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한 대기업 전략 담당 임원은 "실용주의를 지속적으로 내세우는 이 후보가 52시간 문제를 고집하고 포퓰리즘 지적을 받는 양곡법을 집착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호텔경제학, 최악땐 '카드대란'의 악순환 이어질 수도 

    문제가 되고 있는 '호텔 경제학'이 우려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제로 성장에서 벗어나려면 보다 한국 경제의 보다 구조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당장의 성장률을 올리기 위해 '돈의 순환'에 매몰될 경우 '제2의 카드 대란'에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김대중 정권 당시 정부는 경제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카드 발급 자유화 조치를 꺼내 2001년 4.0%, 2002년 7.2%의 고성장을 일궈냈다. 카드를 무차별적으로 발급하고, 이를 통해 대중이 카드를 쓰게 해 돈이 돌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처참한 결과로 이어졌다. 카드를 쓴 사람들이 갚지 못해 연체율이 급등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뒤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첫해인 2003년에 카드 대란의 후유증을 치유하는데 급급해야 했다. LG카드가 무너지고 신용불량자가 300만명에 이르는 등 우리 경제의 후유증은 말로 더할 수 없었다. 2002년 7.2%였던 성장률은 이듬해인 2003년 2.8%로 급락했다. 이 때 세계 경제는 3.6%의 성장률을 보였다.   


    이번 호텔 경제학 역시 크게 보면 이와 무관치 않다. 호텔에 법인카드로 결제한 뒤 나중에 취소하더라도, 돈이 돌아 경제가 살아 난다는 이른바 '노쇼 경제학'(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표현)은 카드를 새로 발급해 돈을 쓴 뒤 연체가 일어나도 일단은 경제가 순환한다는 논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 신세돈 교수는 "경제를 피상적으로 바라본 것"이라며 "예컨대 식당의 경우 예약을 받아 식재료를 준비했지만 손님이 오지 않는 '노쇼'가 발생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업주가 감당하게 되는 셈"이라고 했다. 

    강성진 교수는 "해당 비유가 '승수효과'를 설명하려는 의도였다면 마지막에 호텔 예약이 취소되는 상황은 적절하지 않다"며 "결국 경제 순환이 단절되는 이유를 보여준 셈"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확장 재정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현재 한국 경제는 제로성장이 예상되고 재정 적자도 100조원 안팎에 이르는 상황이어서 재정 건전성 문제를 고려하면 확장 재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지금 우리 경제에 필요한 것은 선성장을 일궈낼 이른바 '신수종 사업'과 노동 교육 부문 등의 구조개혁이라고 한결같이 말한다. 이를 등한시할 경우 2년의 경제 겨울이 아니라, 10년 이상의 장기 침체에 들어갈 수 있다는 끔찍한 경고음을 내보내고 있다. 




     
최은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