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60㎏, 22만원 상회 … '1993 쌀 파동' 이후 최대 가격 파동쌀시장 구조적 문제에 감산정책마저 부메랑…"취약한 구조 야기"政, 비축미 방출 결정에도 여론은 쌀값 대응에 '부정적 평가' 지배적
  •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세계 3대 경제대국 일본이 쌀 때문에 요동치고 있다. 불과 1년새 곱절로 가까이 폭등한 쌀값에 민심이 싸늘하게 돌아섰다. '쌀에 손대면 정권이 무너진다'는 경고가 현실화할 위기다.

    19일 로이터통신은 17~18일 진행한 교도통신 여론조사를 인용해 일본을 이끄는 이시바 시게루 내각 지지율이 27.4%로 추락했다고 전했다. 출범 이후 최저치다. 지난달 32.6%에서 5.2%P 더 떨어졌다.

    여론조사 응답자 가운데 87.1%는 쌀값 상승에 대한 정부 대책이 '불충분하다'고 혹평했다.

    일본 총무성 소매물가통계조사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전국 평균 쌀(5㎏ 기준) 가격은 전년동월대비 20% 이상 급등했다. 일부 지역과 품종에 따라서는 두 배 가까이 치솟은 곳도 속출했다.

    CNN은 "60㎏들이 쌀 한 포대가 전년동기대비 55% 올라 160달러(약 22만원)를 웃돈다"고 보도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1993년 냉해로 극심한 쌀 부족 사태를 겪었던 '헤이세이 쌀 파동' 이후 가장 급격한 가격 파동이다.

    일본 식품업계에서는 일시적 흉작 문제가 아니라 일본 쌀시장이 가진 구조적인 문제가 곪아 터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전국농업협동조합연합회, 일명 'JA전농'으로 대표되는 일본농협의 독점적 유통구조를 이번 가격 파동 핵심 원인으로 지목했다.

    JA그룹은 일본 내 비료 판매 약 80%, 쌀 유통 5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과거 정부가 쌀값을 통제하던 시절부터 JA는 생산자 보호를 명분으로 매년 꾸준히 쌀 매입가를 인상했다. 이 인상분은 그동안 고스란히 소비자가격에 전가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JA가 주도하는 경직된 쌀 유통 시스템이 공급 부족 상황에서 가격변동성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가 60년 가까이 계속해 온 '쌀 생산조정 정책(감산정책)'도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일본 정부는 1970년대부터 쌀 과잉공급과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생산량 자체를 줄이는 정책을 고수했다. 인위적인 공급조절을 위해 논에 다른 작물을 심으면 장려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전문가를 인용해 "일본 정부가 쌀 수요와 공급을 지나치게 빠듯하게 맞춰놓은 탓에 기상 이변 등 작은 외부 충격에도 시스템 전체가 흔들리는 취약한 구조를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 도쿄 북쪽 사이타마현의 한 정부 비축미 창고를 공무원이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3월 정부 비축미 약 23만t을 방출하기로 했지만, 대책이 늦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는 품질을 이유로 그동안 극히 제한적으로 수입하던 외국산 쌀 수입 문턱을 낮췄다.

    한국 등 외국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현지 마트에서 쌀을 구매해 일본으로 돌아가는 웃지 못할 풍경도 연출되고 있다. 지난달 35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에 수출된 한국산 쌀은 수출 직후 전량 팔리기도 했다.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자민당 내에서는 "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정권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요미우리신문이 이달 16~18일 전국 유권자 1072명을 상대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자민당에 대한 민심 이반이 확인됐다.

    이시바 총리가 이끄는 내각 지지율은 31%로, 3개월 연속 내각 출범 이후 최저치를 이어갔다. 이시바 총리는 지난해 10월 취임했다.

    자민당 지지율은 28%에서 25%로 하락했고, '야당 중심의 정권 교체를 희망한다'는 견해는 42%에서 48%로 상승했다.

    특히 쌀 가격 급등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을 "(긍정) 평가한다"는 15%였다. "평가하지 않는다"가 78%였다.

    이날 발표된 마이니치신문의 여론조사(17~18일)에서도 이시바 내각 지지율은 22%로 최저치를 찍었다. 전달보다 2%P 떨어졌다. 부정 평가는 62%였다.

    마찬가지로 쌀값에 대한 정부 대응에 대해 "평가하지 않는다"는 62%로 절반을 넘었다. "평가한다"는 12%였다.

    CNN은 전문가를 인용해 "778% 고율관세로 보호받던 일본 쌀은 보호무역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라며 "여기에 JA 중심 폐쇄적인 유통구조가 공급 경직성을 키우면서 가격 파동을 초래했다"고 평가했다.
성재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