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끼워 넣은 '연임'에 푸틴 그림자 어른거려"李, 자신 괴롭힌 檢 권한 약화 개헌도 제시국회 권한 대폭 강화 … 무소불위 국회 우려정작 차기 대통령 현행 헌법 권한 모두 누려
  •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6·3 대선 공식 선거운동 첫 주말인 17일 오후 광주 금남로 사거리에서 열린 5.18 전야제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개헌론을 꺼내 들었지만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현행 헌법에서도 지나치다는 지적이 있는 국회의 권한을 더욱 강화하자면서 정작 자신은 임기 5년간 현행 헌법의 대통령 권한을 모두 가지려 한다는 것이다.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후보는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9가지 내용'을 제안하며 개헌 구상을 밝혔다. 자신을 괴롭힌 대통령과 검찰의 권력을 줄이고,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자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감사원의 국회 이관,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대통령 및 직계가족의 범죄 관련 법안 거부권 금지, 비상명령·계엄 선포 시 국회 통제 강화, 수사기관과 중립적 기관장 임명 시 국회 동의 필수 등 기존 대통령의 권한을 뺏어 국회로 넘기겠다는 구상이다.

    이밖에 5·18 정신 헌법 수록, 4년 연임제와 결선투표제, 검찰의 영장청구권 독점 폐지, 지방차지권 보장 위한 헌법 기관 신설 등의 내용이 담겼다.

    문제는 특정 정당이 국회를 장악할 때 정부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미 국회가 다수 의석을 가지면 어떻게 법에 정해진 권한을 행사하는지 이 후보와 민주당이 수차례 보여줬다. 

    민주당은 제22대 국회에서 31번의 탄핵안을 발의했다. 2024년에만 특검법을 15건 발의했고, 윤석열 정부는 거부권을 31회 사용했다. 2025년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도 사상 초유의 감액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현행 헌법 체제에서도 윤석열 정부를 사실상 마비시키며 궁지로 몬 국회가 이 후보의 개헌안과 만나면 언제든 '식물 대통령'을 만들고 정부를 바꿀 수 있게 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 소재의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은 당시 정치인들의 불만을 녹여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수십년 대계를 보고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본인은 현재 대통령 권한을 다 누리고 다음 대통령부터 힘을 빼자고 하면 논의 시작부터 싸움판이 될 것"이라며 "삼권분립을 어떻게 균형 있게 구현할 것인지 심도 있게 고민하지 않고 대통령 한 명의 행태를 이유로 그 권한이 모두 잘못됐으니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선거를 앞둔 인기영합적 개헌 공약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4년 연임제'를 둔 용어 논란도 발생했다. 대통령 4년 중임 대신 연임을 사용해 이 후보가 한 번의 대선을 건너 띄고 재출마할 길을 열어 놓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민주당은 부인했으나 국민의힘은 여전히 이 후보가 장기 집권 포석을 놓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게다가 이 후보의 개헌안을 두고 '내로남불'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이 후보가 대통령과 직계가족의 범죄 관련 법안에 대한 거부권 금지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김건희특검법이 수차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가로 막히며 고민이 깊었던 이 후보의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공교롭게도 대통령 범죄 관련 법안에 대한 거부권 제한을 주장한 이 후보는 12개의 범죄 혐의로 5개 재판을 받고 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돼도 해당 재판이 계속되는지를 두고 논란이 크다.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규정한 헌법 제84조를 두고 이 후보와 민주당은 대통령 재직 중에는 재판도 중지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 대해서는 불소추특권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민주당은 이 후보 당선 후에 해당 조항이 논란이 될 것을 우려해 대통령 재직 중에는 당선 이전부터 시작된 재판이 중지된다는 것을 형사소송법에 명시하기로 했다. 이들은 지난 7일 형소법 개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지난 15일 오후 전남 광양 전남드래곤즈구장 열린 유세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이 후보에게 당면한 최대 리스크인 '공직선거법 재판'도 뒤집을 준비를 마쳤다. 이 후보는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 파기 환송을 한 상태로, 항소심 판결에서도 유죄 판결이 유력 시 된다. 선거법은 100만 원 이상 벌금을 선고받으면 당선이 무효화되고 피선거권을 박탈당한다. 이 후보가 대통령 당선 뒤 선거법 재판이 계속되면 대통령 직을 내려놔야 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선거법을 바꾸기로 했다. 이 후보가 받는 혐의인 허위사실공표죄 구성 요건 중 '행위'를 삭제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14일 이런 내용의 선거법 개정안을 국회 법사위에서 통과시켰다. 이 법이 통과되면 이 후보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사라진다. 사법부가 '면소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 후보의 재판을 무력화하는 두 개의 법안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하면서 민주당은 어느 때든 임시회를 소집해 해당 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할 준비를 마쳤다. 민주당은 해당 법안을 언제 처리할지 고민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가 대통령의 거부권 제한을 말하기 전 자신이 당선된 후 이익을 받는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선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거부권을 저런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제한하면 가짜로 밝혀졌던 청담동 술자리 의혹으로 특검하자고 해도 그냥 특검이 진행되는 것"이라며 "쓸 데 없는 논쟁을 벌이지 말고 우선 자신이 당선되더라도 자신의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법안은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에 모두 거부하겠다고 선언하라"고 지적했다.

    이 후보가 진정성 있게 개헌을 추진할지도 미지수다. 역대 대통령은 대부분 대선에서 개헌을 약속했지만 임기가 시작되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지 않았다. 개헌론은 모든 이슈를 삼키는 블랙홀로 불리며 정부의 동력을 약화하는 논의로 평가받는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각제 개헌을 약속했으나 임기 내 개헌은 없었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전 대통령도 각양각색의 개헌을 공약했지만 임기 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 후보는 2026년 지방선거 또는 2028년 총선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2030년 이 헌법으로 첫 번째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동시에 치르는 시간표를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좌파 정당이 190석가량을 차지한 국회 의석 구조에서 균형감 있는 개헌안이 나오기 쉽지 않다고 분석한다. 약 1년 남은 내년 지방선거에서의 국민투표는 시간표 자체가 촉박한 것도 문제다. 

    일부에서는 이 후보가 집권할 경우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약화됐을 때 개헌을 '정국 돌파용 카드'로만 소비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지율이 20~30% 수준까지 떨어지자 대연정 카드를 꺼냈듯 개헌안이 또다시 대통령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이번 이 후보의 개헌안은 자신들에게 최대한 유리한 방안을 만들어 야당이 받아들이면 민주당 장기 집권의 도구로 삼고, 그렇지 않으면 소멸되는 수순으로 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과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장기 집권의 방식으로 사용했던 '꼭두각시 대통령'을 내세운 뒤 재집권하는 형태를 이재명 후보가 노릴 수 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나경원 공동선대위원장은 "이재명 후보가 슬쩍 끼워 넣은 '연임' 두 글자에 푸틴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말한 것도 이와 연관돼 있다. 

    결국 개헌에 대한 진정성을 보이고 싶다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등이 꺼낸 차기 대통령의 '임기 3년 단축안'을 받아 들여야 한다고 국민의힘은 지적한다. 
오승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