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셰셰' 발언에 韓美 외교·정계, 당혹·우려美 전문가 "한국·대만 안보 위협 별개 문제 아냐""차기 유력 대권주자가 이런 말을… 놀라울 따름"김문수 "외교기조는 친중 아닌, 한미동맹이 근본"
-
-
- ▲ 2023년 6월 8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를 예방해 인사하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가 대구 유세 과정에서 '셰셰(謝謝: 고맙다는 뜻의 중국어)'를 재차 언급한 것을 두고 국내 정치권은 물론, 미국 조야(朝野)의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와 주목된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한반도를 오랫동안 지켜본 워싱턴 DC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지난 13일 이 대표가 '중국에도 셰셰하고 대만에도 셰셰하고 다른 나라하고 잘 지내면 되지, 대만하고 중국하고 싸우든 말든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고 발언한 것은 한국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일에 무관심하다는 인상을 심어 준다고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이 대만에서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시도하면 한국 경제·안보에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한국과 대만의 안보 위협을 분리해서 볼 수 없다는 것이 미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럼에도 차기 대권을 바라보는 유력 정치 지도자가 이런 발언을 한 것은 향후 국제사회 내 한국의 신뢰도를 떨어뜨려 외교 관계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만과 한국의 안보 위협, 분리해서 볼 수 없다"
먼저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조선일보 취재진에게 "무역·제조업에 대한 영향을 생각해보면 대만 해협의 안정, 무역의 자유로운 흐름은 한국에 매우 중요하다"며 "대만 해협의 평화·안정은 후보자 발언처럼 당연히 보장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음 한국 정부는 미국, 다른 인·태 지역 파트너들과 더 긴밀히 협력해 지역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랜들 슈라이버 인도·태평양안보연구소(IIPS) 대표는 "(중국과 대만 간) 분쟁이 생기면 한국의 안보·경제는 의심 없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며 "반도체 공급망 차질만으로도 세계 주요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고,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대만에서 발생하는 일은 한국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며 "한미를 비롯한 동맹은 지역 안보를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대만과 한국의 위협을 결코 분리해서 볼 수 없다"고 조언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내가 이 후보였다면 양안 문제에 관한 표현에 보다 신중을 기했을 것"이라며 "중국이 대만을 지배하면 한국에 압력을 가할 수 있고 그럴 동기도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지역·글로벌 경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이 인공지능(AI) 반도체 생산 같은 특정 사업을 포기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아시아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대만은 한국에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나라고, 중국이 대만에 행동을 취하면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한국이 유사시 역할을 정의하는 데 소극적이고 심지어 반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대만을 방어하기 위한 연합에 참여하면 리스크가 따르겠지만, 참여하지 않는 것에도 비용이 수반될 것"이라며 "한국은 70년 전 유엔이 (북한과 중국의) 공격을 방어하고 주권을 보장해줬기 때문에 오늘날 번영할 수 있었다. 다른 민주주의 국가를 방어하는 데 주저한다면 미국과의 동맹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는 "양안 갈등은 지역 안보 역학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한국의 유일한 조약 동맹인 미국이 개입될 가능성이 있는 더 넓은 규모의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며 "이와 관련해 한국의 고위 정치인, 대선 후보가 우리와 무관하다 주장한 것이 놀랍다”고 밝혔다.
이 밖에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미 조야에서는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내러티브가 확산하고 있다는 게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의 분석이다.
일례로 국방 정책 입안과 실행에 상당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는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차관은 주한 미군의 기능을 '대북 억제'에서 '대중 견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대표적인 인물로, '한국의 동맹 부담이 주한 미군 주둔 비용 분담 차원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현지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전망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불안한 외교 리더십이 국익을 위기에 몰아넣어"
이재명 후보가 공개 석상에서 '양안 갈등' 등 중차대한 외교 문제를 '희화화'하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 국내 정치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양안관계가 우리나라와 아무 관련 없다, 나몰라라 하겠다'는 이재명의 친중 '셰셰외교'에 대한 미국 조야의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며 "국회 다수당 대선주자의 즉흥적이고 불안한 외교 리더십이 우리 국익을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 원내대표는 "그 외에도 △유엔 대북제재를 위반한 대북송금 △북한·중국·러시아를 적대시한 가치외교를 탄핵 이유로 보는 외교관 △원전·조선 등 한미협력 핵심산업의 예산 삭감 등 미국이 이재명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이유가 차고 넘친다"며 "더 큰 문제는 본인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이 후보의 오기와 독선"이라고 꼬집었다.
신동욱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수석대변인은 14일 논평을 통해 "이재명 후보가 또다시 위험한 외교관을 드러냈다"며 "여전히 중국몽에 빠져 있는 이재명 후보. 원칙과 자존 없는 외교는 국격을 훼손하고 상대방에게 무시와 조롱을 당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신 수석대변인은 "(이 후보가) 기존 발언에 대해 철회하거나 수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도리어 자신이 틀린 말을 했냐며 반문하기까지 했다"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토로인가. 아니면 중국 눈치 보기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이 서해에 불법 구조물을 설치하며 호시탐탐 대한민국의 주권을 위협해도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중국 간첩이 활개를 쳐도 처벌 입법에 머뭇거리는 것만 봐도 이 후보의 정체성이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잘 알 수 있다"며 "이 후보가 실용성과 현실성이 장점이라 자평해도, 모든 일에는 소신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지금이라도 중국몽에서 깨어나 냉엄한 외교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고 충고했다.
◆"대한민국 외교는 한미동맹이 근본 축"
차기 대권을 놓고 이재명 후보와 자웅을 겨루고 있는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비판의 소리를 냈다.
김 후보는 13일 부산 선대위 출정식 및 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셰셰'라는 말을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친중반미'나 '친북 반(反)대한민국', 이건 안 된다는 것"이라며 "중국과 나쁘게 지내자는 얘기는 아니지만 단언컨대 당연히 한미동맹이 근본 축"이라고 강조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와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도 이재명 후보의 외교관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한 전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외교 문제를 희화화시키는 이재명 후보의 무지와 가벼움이 참으로 개탄스럽다"며 "중국에 '셰셰'하면 그만이라는 한심한 외교관을 가진 무지하고 위험한 이재명 후보에게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코 맡길 수 없다"고 지적했고, 이준석 후보는 "정권을 잡으면 중국 비위에 거슬리지 않으려고 손바닥 비비며 셰셰만 외치다가 간첩이 판치는 세상을 만들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중국보다 두려운 것은 중국몽에 휩싸인 사람이 대한민국의 정치 지도자가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재명 대외정책 기조는 '국익 중심 실용외교'"
한편, 이재명 후보의 외교안보보좌관인 위성락 의원은 "'셰셰' 발언만 부각하는 언론 보도가 안타깝다"며 이 후보의 대외정책 기조는 '국익 중심 실용외교'라고 강조했다.
위 의원은 14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대선과 달리 이 후보의 '외교안보 공약'에서 두드러진 변화는 '전략적 침묵'이라고 밝혔다. 주변의 외교적 환경과 여건이 크게 바뀌면서 이 후보와 당의 고민이 깊어졌고, 그런 고민이 대선 후보 공약에 반영된 것이라는 이야기다.
'셰셰 논란'에서 보듯, 이 후보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는 시각이 여전한 것에 대해 위 의원은 "큰 흐름에 주목해줬으면 좋겠다"며 "('셰셰' 발언은) 다른 나라들과 원수로 지낼 일을 불필요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는 점을 구어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표현"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국익 중심으로 한미동맹은 동맹대로,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 4강과 관계를 잘 유지하자는 게 핵심인데, 언론에서 '셰셰' 발언만 또다시 부각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위 의원은 한국 외교가 6·25 전쟁 이래 가장 어려운 외교환경에 놓여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이 후보는 이런 시대의 흐름과 주변 변화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는 것이고, 한미일 협력 프레임은 이에 대응하는 데 유용할 수 있고, 미국도 그 틀에서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광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