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문외한 김문수, 진심 하나로 도지사 재선대중교통 환승·GTX 도입 … 택시 운전사 활동2024년 마침내 빛 발한 김문수의 소신 정치야당 공세에도 꿋꿋 … 우파 대선 후보로 우뚝
  • ▲ 2006년 5월 31일 오후 경기도 수원 한나라당 경기도지사 후보 개표상황실에서 김문수 후보와 부인 설난영 여사가 당선이 확실시되자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35년 정치 인생은 '롤러코스터'와 다름없었다. 대쪽 같은 신념으로 신망받던 그는 연거푸 선거에 참패했고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면서 국민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혔다. 그러나 한결같이 단단한 그의 소신은 다시금 그를 우파 진영의 선봉장에 우뚝 서게 했다.

    2006년 김 후보는 한나라당 경기도지사 하마평에 오르내렸다. 행정 경험이 없던 그에게 새로운 도전인 만큼 신중하게 고민했다. 오랜 고민 끝에 더 많은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길을 택했다.

    한나라당 경선을 통해 당당히 통과한 김 후보는 국회의원 선거와 마찬가지로 경기도 곳곳을 두 발로 뛰어다녔다. 선거운동 기간 경기도에서 5㎞ 마라톤 대회가 열렸을 당시 김 후보는 다른 후보와 함께 출발선상에 섰다. 그리고 도착선상에 유일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한다면 하는 그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 나온 것이다.

    김 후보의 진정성에 경기도민들은 '김문수의 경기도'를 선택했다. 김 후보는 경기도민의 선택을 후회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에 학창 시절보다 열심히 도정 공부에 매진했다. 

    그는 가장 먼저 교통 문제 해결에 칼을 빼 들었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교통 사정은 제자리걸음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대중교통 환승할인제를 도입했다. 같은 시기 서울은 환승 제도가 이미 시행되고 있었지만 경기도는 도입되지 않았다. 서울시를 설득해 광역 대중교통 환승할인제를 이끌어냈다.

    지금의 GTX도 김 후보의 작품이다. 경기도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싶었던 김 후보의 진심이 이를 탄생시켰다. 

    2009년에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공부하고 시험을 통해 택시운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직접 경기도민의 발이 된 그는 보좌진이나 숙련된 택시기사를 대동하지 않고 경기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도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들은 각종 민원과 지적 사항은 고스란히 도정에 반영됐다.
    ▲ 설연휴 마지막날인 2009년 1월 27일 택시운전 자격증을 얻은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경기도 수원시내 일대에서 1일 택시기사 체험에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2010년 경기도민은 또다시 '국민머슴' 김 후보에게 도정을 맡겼다. 김 후보는 유시민 전 의원을 큰 차이로 따돌리고 재선에 성공했다. '더 낮은 곳으로 더 뜨겁게'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선거에 임한 김 후보의 진심이 도민에게 닿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경기도에서 함께 일할 경기도의원 다수가 도민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여소야대 국면을 피할 수 없게 됐으나 김 후보는 일방통행보단 설득을 통한 타협점을 찾아갔다.

    행정가 김문수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해나가던 어느 날 '갑질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11년 12월 남양주소방서 119 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도지사 김문수입니다"라고 말하며 수화기 너머 관등성명을 요구했다. 소방서 직원은 이를 장난 전화로 오인해 무슨 일인지 되물었고, 이러한 통화 내용은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곤욕을 치렀다. 

    이에 대해 김 후보 캠프 관계자는 "도지사 8년에서 굳이 논란을 꼽으라면 나오는 게 '꼰대 문수'다. 오해가 있었지만 마냥 잘했다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잠깐 경기지사를 스쳐 간 누구와 비교했을 때 이 정도면 참 깨끗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김 후보는 각종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다. 2012년에는 대선 경선에 출마했지만 박근혜 당시 후보에게 패했다. 2014년 경기도지사 3선을 포기한 후 2016년 대구 수성갑에 출마했지만 김부겸 민주당 후보에게 밀렸다.
    ▲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2024년 12월 1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진행된 '윤석열 대통령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 내란행위 관련 긴급현안질문'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사과요구를 거부한 채 다른 국무위원들과 달리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제도권 밖으로 밀려난 김 후보가 다시 중앙정치에 모습을 드러낸 건 윤석열 정부에서다. 2022년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을 시작으로 2024년에는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그는 국무위원을 지내며 야당의 갖은 공세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역사관을 문제 삼으며 사과를 요구하는 야당의 거센 비판에도 초지일관이었다. 이에 국회 상임위원장에서 퇴장당하기도 했지만 그 어떤 것도 그의 소신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의 뚝심이 빛을 발한 것은 지난해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국면이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은 2024년 12월 국회 긴급 현안질의에서 국무위원들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유일하게 자리를 지킨 인물이 있었다. 바로 김 후보였다. 이에 그는 '꼿꼿문수'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원칙을 준수하며 시종일관 당당하고 결기 있는 모습에 국민의힘 당원들과 지지자들은 그를 대선 후보로 선택했다. 

    '정치인 김문수'는 35년 만에 또다시 도전에 직면했다. 이번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우파 진영을 하나로 모으고 '반(反)이재명' 연대를 통해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승리로 이끄는 것이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단일화 과정에서 내홍을 겪었지만 바람을 일으키기에 앞으로 20일은 결코 짧지 않다는 것이 당 안팎의 중론이다. 대한민국에 대한 김 후보의 진심이 이번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킬지, 미풍에 그칠지 관심이 여의도로 쏠리고 있다.
김희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