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복원과 방향성 담은 증위명 '레오 14세'"전통과 개혁 사이 다리 놓는 첫 미국인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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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오 14세. ⓒ연합뉴스.
전 세계 14억 가톨릭 신자를 이끌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교황 즉위명으로 '레오 14세(Leo XIV)'를 선택하며, 교회 전통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레오 14세는 미국 시카고 출신으로, 가톨릭 역사상 첫 미국인 교황이다. 그는 8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발코니에서 첫 인사로 "모든 이에게 평화를"이라고 외치며 교황으로서의 첫 메시지를 던졌다.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그동안 페루 선교지에서 오랜 기간 봉사하며 다양한 언어 능력과 실무 경험을 쌓아온 중도 성향의 성직자다. 프란치스코 교황 시절인 2023년 추기경에 임명됐으며, 교황청 주교성성과 여성 포용 개혁 등에도 참여한 바 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그의 즉위명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통적인 숫자 표기를 거부하고 '성 프란치스코'에서 유래한 단독명을 사용했던 것과 달리, 레오 14세 교황은 수백 년간 이어진 전통적 작명 방식을 따랐다. 이는 단순한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교황직의 상징성과 교회가 지향할 방향성을 함축하는 의미 있는 결정으로 해석된다.
1878년 즉위한 '레오 13세'는 산업화 시대의 사회 문제에 대응해 1891년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발표하며 사회 정의, 노동권, 임금 문제 등 가톨릭 사회교리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다. 교황 레오 14세가 이 이름을 택한 것은 교회의 사회 참여와 약자 보호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라틴어 '레오(Leo)'는 사자를 의미하며, 교회가 보여줄 힘과 용기의 상징이기도 하다.
예수회 소속 주석가 토마스 리스는 "레오 14세라는 이름 선택은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강화하겠다는 메시지"라고 평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개인적 상징성과 공동체적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 파격을 택했다면, 레오 14세는 제도적 안정성과 전통의 계승을 선택한 셈이다.
바티칸 안팎에서는 레오 14세 교황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정신을 존중하면서도, 보다 전통적인 교회 정체성을 복원해 균형을 꾀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영국 BBC는 "서로 다른 세계를 잇는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인물"로 새 교황을 평가하며, 추기경단이 단 4번의 투표로 교황을 선출한 것은 그에 대한 신뢰를 반영한다고 전했다.

정훈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