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尹정부, 진영외교에만 치중" 비판'균형외교'야말로 현실 외면한 형식적 수사일 뿐체제전쟁은 현실, 이대로는 中에 갈아먹힐 판'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진영 일원' 정체성 분명히 해야
  • ▲ 문재인(왼쪽) 전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뉴데일리 DB.

    문재인 전 대통령은 최근 "윤석열 정부는 역대 정부가 계승해 온 '균형외교'를 파기하고, 철 지난 이념에 사로잡혀 편협한 진영외교에만 치중했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2기 이후 세계가 쩍쩍 갈라지고 있는데도 '균형외교'를 얘기하는 그의 모습에 아연실색하게 된다. 중국을 찾아 '혼밥'만 실컷 먹고 돌아온 것을 생각하면 일반 국민도 분통이 터질 법한데, 명색이 한 나라의 국가 원수가 '헤헤'하면서 여전히 균형외교를 외치는 것을 보면, 고약하기까지 하다.  

    극심한 자국 이기주의 속에서 한국은 지금 갈라진 틈 한가운데 서 있다.

    그동안 우리는 '중국 위협론'을 여러 차례 들어왔지만, 최근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단순한 위협을 넘어선다. 중국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산업, 기술, 인재 양성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한국을 위협하는 실질적 존재로 올라섰다. 

    특히 반도체와 AI, 2차전지 같은 핵심 산업에서 중국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중국은 이미 낸드 메모리를 제외한 반도체 대부분 분야에서 한국을 추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시스템반도체 설계 부문에서는 격차가 더 심각하다. 중국은 한국의 15배 이상인 3500여 개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 논문 채택 수에서도 2023년 기준 중국이 59건으로 한국(32건), 대만(23건), 일본(10건)을 압도했다.

    AI 분야에서도 격차는 급속히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AIPRM에 따르면, 현재의 투자 추세가 유지될 경우 2030년 중국과 미국 간 AI 기술 격차는 14년까지 좁혀질 전망인 반면, 한국은 무려 183년 뒤처질 것으로 분석됐다.

    2차전지 분야에서도 중국은 90%에 가까운 국산화율을 달성했다. 글로벌 배터리 업계 1위인 중국의 CATL은 낮은 가격과 에너지밀도 개선을 무기로 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로 세계 전기차 시장을 재편했다. 최근에는 리튬 대신 나트륨을 사용하는 '소금 배터리' 양산 계획까지 발표해 업계에 충격을 주었다.

    지금 한국은 단순히 '샌드위치 신세'가 아니다. 이대로 가면, 중국에 갈아 먹히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은 중국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초래할 위협을 비교적 일찍 감지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부터 시작된 대중국 관세 전쟁, 그리고 이어진 기술 봉쇄와 공급망 재편은 단순한 무역 분쟁이 아니라, 체제 간 충돌을 전제한 대응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도 이 기조를 계승했다. 2022년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중국을 '가장 중대한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했고,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CHIPS Act(반도체 산업법) 등을 통해 경제안보 차원의 동맹 구축에 나섰다.

    그리고 재집권에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더 이상 '경계'나 '견제' 수준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중국과의 경제·기술 패권 전쟁을 끝장낼 때까지 싸우겠다는 태세다. 관세 인상, 기술 차단, 항만 전쟁 등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 자체를 구조적으로 약화시키려는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 충돌은 곧 세계 질서의 재편, 두 체제 간의 정면 대결로 확장되고 있다. 한쪽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 다른 한쪽은 국가자본주의와 권위주의 체제다. 반도체, 인공지능, 배터리, 우주 개발, 바이오 신약 같은 첨단 산업 분야는 단순한 경제 영역을 넘어, 어느 체제가 글로벌 표준을 주도할 것인지를 결정짓는 전장이 돼버렸다.

    두 체제의 가장 큰 차이는 '누가 성장의 주체인가'에 있다. 자유진영은 개인과 기업이 주도하고, 국가자본주의는 정부와 권력이 주도한다. 자유진영은 다소 비효율이 있더라도 자유와 다양성을 존중하지만, 국가자본주의는 효율을 위해 통제와 일체성을 강요한다.

    결국 이 싸움은 단순히 누가 더 많은 반도체를 만들고, 더 빠른 AI를 개발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 사회가 앞으로 자유를 우선할 것인가, 아니면 효율과 통제를 우선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싸움이다.

    문제는 중국이 더 이상 과거처럼 외국 기술을 베끼기만 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는 새로운 기술을 창조하고, 새로운 글로벌 산업 표준을 만드는 나라로 변모하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는 한국의 기존 경쟁력을 빠르게 무너뜨리고 있다.

    한국은 선택해야 한다. 이 체제 전쟁 속에서 한국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 

    오랫동안 한국은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이중 전략, 이른바 '균형외교'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제 경제와 안보를 분리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반도체, 배터리, 데이터, AI와 같은 핵심 산업은 모두 국가 생존과 직결된 전략 자산이 됐다. 경제를 중국에 의존하면서 안보는 미국에 맡기는 구조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이제는 갈팡질팡할 시간이 없다. 선택을 미루는 것은 곧 스스로 기반을 잃는 길이다.

    우리가 속해야 할 곳은 분명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인류가 힘겹게 쌓아온 체제다. 이 정체성에 기반해 미국, 유럽, 일본, 호주 등 자유 진영 국가들과 기술, 안보, 산업 전반에 걸쳐 협력 관계를 심화해야 한다. 

    앞으로 한국이 가야 할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중국은 거대하고 빠르며, 미국은 점점 더 많은 요구를 할 것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정치권은 극심하게 분열돼 있어, 거대한 외부 충격을 견딜 수 있는 국가적 일관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다.

    갈라진 세상 속에서 생존하려면,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다. 지금은 말로 때울 시기가 아니다. 선택하고, 준비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진영의 일원이다"라는 분명한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더욱이 걱정인 것은 문재인의 '황당 외교관'을 좌파 진영의 절대적 지지를 확보하면서 김대중까지 능가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문재인의 외교노선을 답습할지 모른다는 현실이다. 

    아니 이재명의 모습을 보면 문재인을 능가할 가능성이 높다. 이재명의 "셰셰"라는 단어는 그의 '외교 지향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단어다. 이재명이 이를 부인하고 트럼프 앞에 가서 한미동맹을 외친다면 트럼프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혹여 트럼프가 이재명 면전에서 "셰셰'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세계의 변화를 도외시하고, 기계적인 균형 외교를 외치는 전직 국가 원수와 이보다 더한 친중 색채를 띠고 있는 다수당 대통령 후보를 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바람 앞 촛불 같다.   
정훈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