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개발, 땅 속 지질이 걸림돌고속도로 공사 당시 변성암 지질 경고변성암 지질에 터널 공사 시 붕괴 위험"터널 시공 단계서 지질 검토 이뤄졌어야""단층 파쇄대 위치와 경사 방향 따졌어야"
  • ▲ 10일 오후 서울 강동구 명일동 싱크홀 사고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복구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정혜영 기자

    [편집자주] 한국은 1970년대 이후 국가 경제의 급속한 성장에 따라 고속도로·교량·항만 등 다양한 토목공사가 시행돼 왔다. 특히 수도 서울에선 다양한 '지하철 공사'가 활발히 진행 중이지만 이에 수반되는 지질학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쉽게 말해 토목공사를 담당할 '외과의사'는 많은데 정작 공사가 진행되는 땅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지형인지를 알고 있는 '내과의사'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변화무쌍한 지질에 맞게 칼과 톱을 대야 우리는 인명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뉴데일리는 인재(人災)가 천재(天災)로 탈바꿈되기 쉬운 싱크홀 사고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싱크홀 골든타임'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과 해외 사례를 집중 조명한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 싱크홀 사고 현장은 세종-포천고속도로(서울세종고속도로)가 지나는 인근이다. 그런데 이 일대는 변형되기 쉬운 '변성암 지질'이라는 경고가 고속도로 공사가 진행되던 8년 전 이미 나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오랫동안 지각 변동을 받아 깨지기 쉬운 변성암 지질에 지하 개발을 실시하면 지반이 붕괴될 위험이 큰데도 지하철 9호선 터널 공사 설계·시공 단계에서 지질 검토가 충분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14일 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한 '세종-포천 고속도로 건설공사 지반조사'에는 명일동 싱크홀 부근에서 2017년 시추가 완료된 시추 주상도가 담겨 있다. 시추란 지층 구조를 조사하기 위해 땅 속 깊이 구멍을 파는 일을 뜻한다. 시추 과정에서 확인된 지질 정보를 도식화한 것이 시추 주상도다.

    이 시추 주상도에는 명일동 싱크홀 지점에서 불과 300m 정도 떨어진 지점의 지하 심도(14~60m)가 모두 변성암 지질에 해당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 외에도 풍화 정도, 균열 가능성까지 심도별로 기록돼 있다.

    지난달 24일 발생한 명일동 싱크홀은 깊이 20m 규모다. 사고가 발생한 도로 11m 아래에선 '지하철 9호선 4단계 연장 사업 1공구' 터널 굴착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명일동 일대 지반(14~60m)이 변성암이라면 지하 11m 깊이에서 지하철 터널 공사를 할 때 지질 분석에 따른 기초 공사를 충분히 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특히 명일동 일대는 외부 충격에 취약한 변성암 단층 파쇄대도 넓게 분포돼 있다.
    ▲ 변성암 단층 파쇄대 경사면과 터널 굴착 방향에 따른 붕괴 위험도를 나타낸 그림 ⓒ황유정 디자이너

    전문가들은 변성암 지질에 지하철 터널 공사 시 ▲단층 파쇄대 '위치'와 ▲단층 파쇄대 경사면이 '터널 굴착 방향과 반대되는지'를 따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깨지기 쉬운 단층 파쇄대의 위치를 모른 채 터널 공사에 들어가게 되면 향후 터널 굴착 방향이 단층 파쇄대 경사면과 반대 방향일 경우 붕괴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세종-포천 고속도로 설계도를 봐도 명일동 지역에 단층 파쇄대가 자주 나타난다"며 "그렇다면 지하철 터널 공사 설계·시공 단계에서 단층 파쇄대가 터널 굴착 방향과 반대 방향인지를 수시로 확인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층 파쇄대 경사면이 터널 굴착 방향과 반대 방향이면 상부 암석이 쉽게 변형돼 붕괴 위험이 높고, 반대로 파쇄대 경사면이 터널 굴착 방향과 일치하면 비교적 위험이 낮아진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서울의 64%는 변성암 지질"이라며 "강남과 강북 남서쪽에 분포하는 낮은 지형인 변성암에 터널 공사가 시행되면 싱크홀 위험이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관련 기사: [단독] 연희동·명일동 '판박이'였다 … 변성암 지형에 터널 공사 우려 제기)

    이 교수는 "지하수위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터널을 뚫으면 터널 '막장'(가장 끝 부분)으로 지하수가 갑자기 분출돼 터널이 붕괴된다"며 "명일동 터널 막장에서 지하수가 갑자기 쏟아져 인부들이 대피한 정황으로 볼 때 설계 시 예측하지 못한 단층 파쇄대를 만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2021년 한국터널환경학회도 "이미 서울세종고속도로 터널 건설 과정에서 지반 침하와 건물 손상 등이 발견됐다"며 "9호선 연장 공사가 서울세종고속도로 지하터널에 근접해 통과하니 시공 안전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복되는 싱크홀 사고를 막으려면 토목 공사에서 3차원 지질공학지도가 활용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교수는 "어두운 터널 막장 내부에선 제대로 된 지질 상태를 파악하기 어렵다"며 "지표투과레이더(GPR) 탐사는 지표면 하부 2m 깊이까지의 공동(空洞)만 확인이 가능해 이제는 3차원 땅 속 지질공학지도를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뉴데일리는 서울시가 '지하철 9호선 4단계 연장 사업' 과정에서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한 시추 주상도를 검토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시 측에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한편 세종-포천고속도로는 2016년 12월 착공이 시작돼 올해 1월 개통됐다. 강동구 고덕동과 하남시 초이동을 잇는 13공구 구간은 명일동 싱크홀과 인접해 있다. 지난 2월 경기 안성시에서 교량 붕괴 사고가 발생한 곳도 바로 이 고속도로의 한 구간이다. 

    ▲ 지난달 24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발생한 대형 땅꺼짐(싱크홀) 사고로 30대 오토바이 운전자 1명이 매몰돼 결국 숨졌다. ⓒ정상윤 기자

정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