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토미데이트, 프로포폴 대체재로 오·남용'마약 장사' 벌이는 의사들 … 처벌 수위↓전문가 "에토미데이트 마약류 지정 시급""마약 활개치는데 민주당은 관련 예산 삭감""마약수사 예산 확대하고 컨트롤타워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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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가 강남구 청담동의 한 의원에서 의료용 마약을 압수했다. 해당 의원은 前 프로야구 선수 오재원씨 등 105명에게 불법으로 마약류를 투약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경찰청
최근 청담동 의원에서 의료용 마약류를 이용해 '마약 장사'를 해 온 의사 등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이 사용한 약물에는 마약류로 분류되지 않으면서 프로포폴과 효능이 유사해 사각지대에 놓인 '에토미데이트'가 포함돼 있었다. 마약 당국이 에토미데이트를 마약류로 지정하고 의료계의 마약 장사 행태를 근절하기 위한 컨트롤타워 구축 및 예산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대는 최근 수면마취제 계열의 마약류 투약 등 불법 영업을 한 청담동 소재 의료기관을 적발해 검찰에 넘겼다. 해당 의사 등 병원 관계자는 범행 초기 '프로포폴'만 사용했다.
하지만 수요가 점점 늘자 마약류로 분류돼 있지 않은 전신마취제 에토미데이트를 함께 투약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투약자만 105명에 달하고 범죄 수익은 약 41억 원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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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로 수면내시경 검사에 쓰이는 전신마취제 '에토미데이트'(왼쪽)는 의료용 마약류로 분류돼 있지 않다. 반면 프로포폴(가운데)과 레미마졸람(오른쪽)은 의료용 마약류로 분류돼 있다. ⓒ서울경찰청
◆전신마취제 '에토미데이트' 악용 위험 수위 넘었다
문제는 의사들이 프로포폴과 효능·용법이 유사해 제2의 프로포폴이라 불리는 '에토미데이트'를 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에토미데이트는 주로 수면내시경 검사에서 전신마취제로 사용된다.
하지만 마약류가 아닌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식약처 보고 의무가 없다. 그간 병원에서 오남용 단속을 피하기 용이했던 이유다.
에토미데이트를 불법 투약하거나 오남용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에는 14억6000만 원 상당의 프로포폴과 에토미데이트를 불법 투약 영업한 한 의원이 결국 검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에토미데이트를 다른 마취제와 섞어 프로포폴로 속여 판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명 '람보르기니남'은 2023년 9월 한 의원에서 에토미데이트를 투약한 사실이 밝혀져 병원 관계자 9명과 함께 검찰에 넘겨졌다. 그럼에도 에토미데이트가 마약류로 분류되지 않아 당시 마약류관리법 위반이 아닌 약사법 위반이 적용되는 문제가 있었다. 특히 구매자는 형사 처벌 대상이 아닌 의약품안전규칙에 따른 과태료 처분 대상에 그칠 뿐이었다.
이처럼 에토미데이트 오남용 사례는 비일비재한데도 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2020년 6월 한 국내 유명 걸그룹 가수에게 에토미데이트를 불법 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성형외과 의사는 실형을 선고 받았는데 해당 가수는 2019년 7~8월 프로포폴을 투약한 혐의로 벌금 100만 원의 약식기소로 처분됐다.
에토미데이트는 성범죄에 악용되는 경우도 있다. 2019년 에토미데이트를 병원에 납품한 것으로 속여 빼돌린 뒤 유흥업소 종사자들에게 판매한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당시 제약회사 직원 등은 에토미데이트 약 4억 원가량을 불법 판매했다.
2022년 6월 18일 방영된 지상파 한 시사프로그램에서는 에토미데이트를 활용해 환자를 성폭행한 의사 사건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이 의사는 수년간 여러 여성에게 에토미데이트를 주사한 뒤 성폭행해 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 ▲ 의사 마약사범 추이. ⓒ경찰청/디자인=황유정
에토미데이트를 불법 투약한 혐의로 경찰에 검거된 의사 A씨의 수법은 교묘했다. A씨는 투약자들의 수요에 맞게 마약을 공급하고자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투약 기록을 보고하지 않거나 거짓 보고했다.
또 가짜로 진료 기록을 작성하거나 가족 등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활용했다. 마약류를 처방한 뒤 식약처에 보고하지 않는 대가로 10만 원씩 추가비용도 받았다. 일부 투약자에겐 '생일 기념', 출소한 투약자에겐 '출소 기념' 명목으로 중독자들을 관리했다. A씨는 스스로 혹은 간호조무사를 통해 프로포폴 등을 총 16차례에 걸쳐 '셀프 투약'하기도 했다.
이는 의사 마약사범이 비의료인 마약사범에 비해 처벌이 약한 데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의사 마약사범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의사와 간호사 등을 포함한 의사 마약사범은 186명(2020년), 212명(2021명), 186명(2022년), 323명(2023년)이었다. 경찰에 의하면 지난해 의사 마약사범은 337명으로 전년에 비해 4% 넘게 늘었다.
그러나 형량은 비의료인 마약사범보다 가볍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마약류관리법)에 의하면 마약류 취급의료업자(의사)가 마약을 불법으로 취급할 경우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반면 마약류 비취급자(비의료인)가 이를 불법으로 취급하면 10년 이하 징역 혹은 1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경찰 관계자는 "통상 권한자의 위법 행위는 불법성이 더 크기 때문에 가중 처벌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마약류 취급의료업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에토미데이트가 마약류로 지정되기 전에 대량 불법 유통될 수 있어 이에 대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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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자인=황유정
◆"에토미데이트 마약류 지정, 범정부 차원 컨트롤타워 세워야"
우리나라가 마약 청정국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범정부 차원의 대응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우선 에토미데이트를 마약류로 지정해 관리하고 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신종 마약류 등을 효과적으로 관리 단속할 수 있도록 관련 부처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마약퇴치연구소장)는 "프로포폴 오남용이 심해 마약류 처방이 제한되자 마약류로 분류되지 않은 에토미데이트 대체제 사용이 늘고 있다"며 "에토미데이트를 통한 '병원 장사' 사례가 다수 발생하는 등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마약류'로 지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식약처는 지난해 12월 에토미데이트를 마약류로 지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식약처는 그간 에토미데이트의 새로운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마약류로 규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마약류 관리법에 따르면 향정신성의약품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하고 오남용 시 인체에 심각한 위해가 있다고 인정돼야 마약류로 지정할 수 있다. 신체적 또는 정신적 의존성을 일으키는 물질이어야 가능하다는 의미다.
과거 식약처는 2019~2020년 에토미데이트에 대한 의존성을 평가하기 위해 전문가 자문과 국외 마약류 지정 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이후 마약류관리법에 따른 마약류 지정 요건에 부합하지 않아 마약류로 지정하지 않았다.
분당서울대병원 박진우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의학적으로 에토미데이트는 충분히 중독성이나 의존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며 "에토미데이트는 예전부터 꾸준히 문제가 돼 온 약물이기 때문에 마약류로 분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런데도 앞서 야당은 지난해 11월 정부가 편성한 경찰 특수 활동비를 전액 삭감시켜 비판에 내몰렸다. 경찰 특활비는 최근 활개 치고 있는 마약 수사에 핵심 예산으로 꼽힌다.
한 일선 마약수사 경찰관은 "마약 수사에 특활비를 이용해 범죄 조직 윗선을 검거하고 있다"며 "국가 근간인 치안 강화를 위해서는 경찰 특활비 예산이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해외 선진국들은 범정부 차원의 마약 수사 컨트롤 타워를 운용한다"며 "미국은 국가마약정책국을 통해 마약 통제 정책을 제정하고 영국은 국가범죄청을 통해 국내외 마약 범죄를 다루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마약 수사를 전담하는 컨트롤 타워가 없는 탓에 관계 부처 간 협업이 어려운 실정"이라며 "관련 기관의 수사 기록을 열람하려면 공문을 보내는 등 절차가 복잡해 수사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