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차 해소·인간 안보 … 文 정부 콘셉트 차용"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으로 기대 모을 수 있겠나"
  • ▲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6일 오전 국회에서 당대표직 사퇴 발표 기자회견을 마치고 떠나고 있다. ⓒ이종현 기자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사퇴한 지 열흘이 흘렀지만 당 곳곳에선 내상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당의 수장 자리에 두 번이나 올랐음에도 확실하게 내세울 만한 업적이나 정책을 남기지 못했고, 친한(친한동훈)계와 비한(비한동훈)계는 서로 겨눈 칼을 완전히 거둬들이지 않은 채 갈등의 골만 키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26일 한 전 대표 사퇴로 인한 지도부 공백을 메우기 위한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당 의원들의 신망이 두텁고 무게감 있는 5선 권영세 의원을 중심으로 당의 위기를 헤쳐나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친한계 인사들이 쫓기듯 퇴장한 '리더'의 뒷모습을 포장하기 위해 여론전에 치중하면서 뒤숭숭한 분위기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의 '탄핵 광풍'에 단일대오로 맞서기 위해서는 전열을 재정비하고 단결을 외쳐야 하는 상황이지만, 잇단 분열 조장에 친한계와 비한계는 서로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 그 이유다.

    한 전 대표가 마지막까지 갈등을 수습하지 못하고 갈등만 남긴 채 홀연히 떠나면서 그에 대한 아쉬운 평가도 속출하고 있다. 특히 전략적인 측면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 국면에서부터 비롯된 '전략 부재' 평가는 한 전 대표가 당 운영을 하면서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총선 국면에서 '한동훈 비대위'가 던진 캐치프레이즈나 콘셉트는 새롭거나 기발하지 않았고 기시감마저 들었다. 택배를 콘셉트로 한 총선 정책 홍보가 그 시작이었다.

    이런 홍보 전략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대선 당시 '국민이 구매한 공약을 문재인 후보가 배송한다'는 '문재인 1번가'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베끼기 논란은 '격차 해소' 정책으로도 이어졌다. 비대위원장 시절부터 격차 해소 키워드를 던진 한 전 대표는 대표 취임 후에도 특별위원회까지 꾸리며 열정을 쏟아부었다.  

    '격차 해소'를 강조한 것은 한 전 대표가 처음이 아니다. 문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격차 해소를 역설했다. 지역 의료, 교육 등 각종 영역에서 사회 보장을 강화해 격차를 줄여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전 대표의 격차 해소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먹사니즘'에 대응하기 위해 격차 해소 특위를 통해 중도층 공략에 적극 나서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한 전 대표의 격차 해소는 중도층을 끌어안지 못했을뿐더러 보수층에서조차 외면을 받았다. 참신함·진정성 부재의 결과였다.

    한 전 대표는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성장이 미래나 기업을 위한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복지를 위해 쓰여야 한다", "많은 문제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 등 보수 핵심 가치인 자유시장경제에 반하는 메시지를 전달해 보수층의 반감을 샀다.

    그는 마지막까지 익숙한 정책을 만지작거렸다. 한 전 대표는 '인간 안보'를 기치로 내걸고 사회안전망 구축 방안 발표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문 전 대통령도 '인간 안보'를 화두로 제시했다.

    결국 한 전 대표는 자신만의 정책을 창작하지 못하고 '차용'에 몰두한 결과 당 안팎에서는 한 전 대표의 1년에 대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평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한 당직자는 "지난 1년여 동안 대통령을 도운 적이 있나. 당을 위해 제대로 된 비전이나 로드맵이라도 보여준 게 있나"라며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으로 다시 기대를 모을 수 있을까"라고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이 당직자는 한 전 대표가 국민의힘의 수장으로 나선 이후 '갈등과 반목'의 연속이었다는 점도 부각했다.

    그는 "한 전 법무부 장관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되고부터 싸움이 시작됐다. 대통령과의 갈등이 이어지고 결국 선거 전략 부재로 총선에 패배했다"며 "전당대회에 출마해 그토록 강조하던 63% 지지로 당대표 당선 직후부터 하루라도 당이 평안한 날이 있었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당정 관계가 원만했던 적이 있나. 그 어떤 갈등 이슈에서 벗어났던 적이 있었나"라며 "갈등과 반목으로 당은 구렁에 빠질 동안 이재명의 지지율만 올라가고 있던 지난 1년이 아니었느냐 묻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희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