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2> 팔려가는 어린 소녀들

    방랑자 ⑫   「너 몇 살이냐?」서북쪽 카우아이(Kauai) 섬의 교회에서 강연을 마친 내가 정원 나무 밑에 서 있던 소녀에게 물었다. 「열살입니다.」제법 또렷하게 대답한 소녀가 부끄러운지 옆쪽으로 발을 떼었으므로 내가 손짓으로 불렀다.「이리

    2010-12-18
  • <251> 하와이 첫날...아, 아버지

    방랑자 ⑪   내가 하와이의 호놀루루에 도착한 날은 1913년 2월 3일이다. 거의 1년간을 미국 본토에 있다가 이제 태평양 상의 미국령 하와이에 도착 한 것이다. 하와이는 8개 유인도(有人島)로 이루어졌는데 1898년에 미국령으로 병합되어

    2010-12-17
  • <250> 우연인듯 인연인듯

    방랑자 ⑩   그렇다. 내 유용한 가치는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웨스트만이 전해준 윌슨의 전갈과도 맥락이 통한다. 나는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19세의 나이에 배재학당에 들어가 신학문을 깨우쳤으며 졸업 후에 만민공동회,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2010-12-16
  • <249> 그대의 용도는 무엇인가

    방랑자 ⑨   웨스트만을 만난 다음날 오전 내가 묵고 있던 싸구려 호텔로 시드니 목사가 찾아왔다. 시드니는 60대 후반으로 내가 프린스턴대에 다닐 때 근처 교회의 담임 목사를 지냈다가 작년에 워싱턴으로 옮겨왔다. 생활비가 항상 부족한 나에게

    2010-12-15
  • <248> 윌슨의 말 '나를 팔아...'

    방랑자 ⑧     나는 낙천적인 성격이다. 또한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춥거나 배고픔 또는 잠자리의 불편함쯤은 얼마든지 견디어 낸다. 조선 말기, 계몽운동기간에 겪었던 살벌한 환경, 탈옥했다가 사형수로 그 지옥과 같은 감옥서 생활을 하던 중에 오히려 감옥서 학

    2010-12-14
  • <247> 무전취식 나그네

    방랑자 ⑦   로스앤젤리스에는 동포들이 꽤 많은 편이다. 위쪽 샌프란시스코와 함께 미국 서부의 관문으로 날씨도 온난한데다 특히 하와이에서 가깝기 때문에 동포들이 모인 것 같다.10월 중순, 나는 로스엔젤리스의 교민 최상용의 집에서 사흘째 신세

    2010-12-13
  • <246>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방랑자 ⑥    「중국으로 가시지요.」박용만이 불쑥 말했으므로 나는 머리를 들었다. 나는 지금 네브라스카 헤이스팅스에 와 있다. 박용만이 창설한 대한소년병학교의 졸업식에 참석한 것이다. 비록 졸업생은 십여명 뿐이었지만 박용만의 의지와

    2010-12-11
  • <245> 굿바이! 필라델피아

    방랑자 ⑤   교회에서 조선의 풍습과 기독교 전파에 대한 강연을 끝냈더니 성금 12불 50센트가 모여졌다. 필라델피아 변두리의 아담슨 교회는 내가 몇 번 들른 곳인데 오늘은 담당 목사가 바뀌었다. 목사가 나에게 돈을 내밀면서 말했다. 「리,

    2010-12-10
  • <244> '윌슨 대통령' 건배!

    방랑자 ④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될거야.」포크를 내려놓은 윌슨이 말했으므로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다. 6월 30일, 나는 시거트 별장에서 윌슨과 가족, 측근들과 함께 만찬에 참석해 있다. 윌슨의 시선이 장방형 테이블을 훑고 내려오더니 나에게서 멈췄다. 「그리고 미국

    2010-12-09
  • <243> 꿈속의 공주

    방랑자 ③   나는 돈이 없다. 그래서 윌슨의 딸 제시(Jessie Wilson)을 만났을 때 장미꽃 세송이만 사들고 갔다. 이곳은 뉴저지에 위치한 윌슨의 시거트 별장. 윌슨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 때문에 집을 비웠고 별장에는 제시 뿐

    2010-12-08
  • <242> 지도자가 없으면 망한다

    방랑자 ②   미네아폴리스에서 열린 국제감리교 총회에 나는 조선평신도 대표로 참석했으므로 조선의 교직자 대표로 참석한 노블(William A. Noble)과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되었다. 노블은 내가 배재학당에 입학했을 때 처음 만난 선교사로

    2010-12-07
  • <241> 동경 유학생들

    방랑자 ①   「조선으로 돌아오실 겁니까?」불쑥 학생 하나가 물었으므로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이곳은 도쿄, 유학생들과 크리스찬 집회를 마치고 식사를 하던 중이다. 방 안에는 10여명의 간부급 유학생이 둘러앉아 있었는데 모두 나에게 시선을

    2010-12-06
  • <240> 쾌락, 그리고 33년 방랑길에 동행하다

    여덟 번째 Lucy 이야기 ③   「이곳에요?」내가 손으로 방바닥을 가리키며 묻자 고지훈은 머리를 끄덕였다. 「예. 정완의 아들 정장환이 1958년에 한국으로 넘어왔습니다. 정장환은 5년 전에 81세로 사망하고 현재 52세 된 아들 정명규와

    2010-12-04
  • <239> 인연은 결국 얽히고 만다

    여덟 번째 Lucy 이야기 ②   그때 고지훈이 입을 열었다. 「노석준은 해방이 된 1945년에 58세로 사망했습니다. 53세이던 1940년까지 경찰 간부로 재직했는데 직책이 함경도 경무국 형사과장이었더군요.」힐끗 나에게 시선을 주었던 고지훈

    2010-12-03
  • <238> 일부러 팬티도 안입고...

    여덟 번째 Lucy 이야기 ①   이승만은 이제 두 번째로 고국을 떠나게 되었다. 1912년 3월 26일, 이승만의 38번째 생일이 되는 날이다. 수기를 덮은 내가 탁상시계를 보았다. 11시 반, 2009년 5월 29일이다. 지금부터 97년

    2010-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