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2> 나는 혼자 살것이다

    9장 시련의 20년 ⑨   50대 후반이면 그 당시에도 노인 취급을 받는다. 그 나이가 되도록 혼자 살고 있었으나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번 실패한 경험도 있는데다 그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많기도 했다. 조국을

    2011-01-23
  • <281> 인촌과 첫 만남

    9장 시련의 20년 ⑧   그로부터 이틀 후에 이수환은 하와이에서 사라졌다. 뉴욕에서 옷 장사를 한다는 소문도 났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소련군 군복을 입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는 말도 들렸지만 내 앞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주에 온다고 했던 독립단 처형자

    2011-01-22
  • <280>버러지 같은 인간들

    9장 시련의 20년 ⑦     그래도 미국 땅, 그 중에서도 동포가 6천여명이나 거주하는 하와이 땅은 빼앗긴 조국에 대한 열망이 가장 자유롭고 활기차게 치솟는 장소일 것이다. 수십만이 옮겨간 만주 땅은 일본군 치하에 들었으며

    2011-01-20
  • <279>박용만, 동포의 총에 죽다

    9장 시련의 20년 ⑥ 상해 임정은 내분과 각 계파간의 갈등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었고 주요 인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김구는 1926년 12월에 의정원 원장 이동녕 등의 지지를 받아 임정 국무령이 되었는데 재정상태가 궁핍해서 집세도 밀려 소송을 당한다고 했다. 내가

    2011-01-19
  • <278>찢어진 임정, 대통령도 해임

    9장 시련의 20년 ⑤  나는 동포들을 실망시켰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을 것이다. 어쨌거나 모두 내가 부족한 때문이다. 나를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에게 죄를 지은 심정이 되었다. 나는 1년여의 미국 본토 생활을 마치고 1922년 9월에 다시 하와이로 돌아왔다.

    2011-01-18
  • <277>공산당과 독사

    9장 시련의 20년 ④   「당신은 대한민국의 대표자가 아니라고 하던데요?」기자회견장으로 빌린 모리스 호텔의 연회장에 모인 기자 한명이 물었다. 내 시선을 받은 사내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말을 잇는다.「대한민국 청년단이란 단체에서 발표한 성명서에 적혀 있었습니다. 내가

    2011-01-18
  • <276> 다 도적놈들입니다, 각하

    9장 시련의 20년 ③  1921년 9월 초순 쯤 되겠다. 8월 초순에 하와이를 떠나 중순 무렵에 본토로 왔지만 워싱턴에서 열리는 「군축회의」에 내가 참석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나는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 대통령이며 전권대사 신분이었지만 철저히 무시당했다.

    2011-01-17
  • <275> 여류 사업가

    9장 시련의 20년 ②    「무슨 일입니까?」내가 부드럽게 물었더니 안명희의 얼굴이 금방 빨개졌다.「아닙니다.」했다가 머리를 들고는 나를 보았다.「제가 4년쯤 전에 필라델피아에서 각하의 연설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내가 약소민족대표회의에

    2011-01-15
  • <274> 임정서 도망쳤다고?

    9장 시련의 20년 ①   하와이로 돌아온 나는 교포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지만 가슴이 뚫린 것 같은 느낌은 지워지지 않았다. 6개월간의 상해 임정 생활은 내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주었다. 내 무능과 한계를 깨닫게 되었으며 지도자급 인사들의

    2011-01-14
  • <273> 북한체제를 바라나요?

    아홉 번째 Lucy 이야기 ③   오후 6시 반, 나는 고지훈을 호텔로 다시 불렀다. 테드 김태수가 그러고 떠난 후에 소화가 덜 된 것처럼 위장이 더부룩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고지훈이 달려왔을 때 내가 물었다.「난 대한민국 역사공부를 단단히

    2011-01-13
  • <272> 김구한테 맡겼으면 통일되었을거야

    아홉 번째 Lucy 이야기 ②   나는 우연을 믿지 않는다. 모든 것은 다 연관이 있으며 노력한 만큼의 댓가를 받는다고 믿어왔고 실제로도 겪었다.그래서 그날 오후에 김태수가 갑자기 찾아왔을 때도 이번 자서전 때문인 것으로 금방 짐작을 했다. 지난번에 테드는 5장까지의

    2011-01-12
  • <271>이제 가문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아홉 번째 Lucy 이야기 ①  다음날 오전에 내가 먼저 만난 사람은 노석준의 손자 노경수와 노민수였다. 둘 다 60대 후반으로 건장한 체격에 생김새가 비슷해서 누구든지 형제라고 생각할 만 했다. 호텔 커피숍에는 고지훈까지 넷이 둘러앉아 있었는데 노경수 형제의 분위기는

    2011-01-09
  • <270) 6개월 머문 상해를 떠나다

    방랑자 (30) 이동녕(李東寧)에게 국무총리서리를 맡긴 나는 떠날 준비를 했다. 대통령직도 버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이동휘가 요구하는 임시정부 해산이나 같게 된다. 형식이나마 임정의 체제는 갖춰 놓아야 될 것이었다. 상해를 떠나기 전날 밤, 간부급들만 알고 있었으므

    2011-01-08
  • <269> 안창호는 국무총리를 맡지 않았다

    방랑자 (29) 도산 안창호는 상해 임정이 성립된 후부터 국내 외의 임정을 통합 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또한 상해 임정으로 단일화 된 후에는 내부 조직을 강화시켰으며 임정의 위상을 높이는 데에도 열성을 쏟았다. 임정 창립공신이나 같다. 이동휘가 공산당

    2011-01-07
  • <268> 형님, 임정을 떠나십시오

    방랑자 (28)「형님, 오랜만에 뵙습니다.」방으로 들어선 나에게 박용만이 한 말이었다. 이곳은 프랑스 조계안의 중국인이 경영하는 여관방 안이다.내가 손을 내밀며 웃었다.「원수끼리 만났구나.」「그렇군요.」내 손을 두 손으로 잡은 박용만도 따라 웃었다. 우리는 작

    2011-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