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단의 원인과 책임

    역사교과서의 난폭한 서술전장에서 잠시 언급하였습니다만, 연합군에 의한 해방은 우리 민족이 원하는 방향으로 국가를 건설하는 데 장애가 되었다는 역사교과서의 서술을 비판하는 것으로 이 장을 시작하겠습니다. 문제의 금성사판 교과서를 좀 더 읽어 가면 같은 맥락의 다음과 같은

    2009-07-03 이영훈
  • 해방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갑작스런 해방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수많은 애국선열이 오랜 세월 붉은 마음으로 기다려 오던 해방이었습니다. 그 기쁨을 정인보 선생은 “흙 다시 만져 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고 노래하였습니다. 그리고선 “기어이 보시려던

    2009-06-26 이영훈
  • 일제가 이 땅에 남긴 유산

    개발(development)의 뜻1945년 8월 15일, 일제는 패망하였습니다. 영구병합과 동화정책의 구호가 그토록 요란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황급하게 고향으로 철수했습니다. 아무도 남아 달라고 붙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토록 허망했던 것이 일제의

    2009-06-05 이영훈
  • 그날 나는 왜 그렇게 말하였던가

    무엇이 문제인가?이상이 제가 알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와 실체입니다. 국내에서는 아직 전문적인 연구가 부족한 실정입니다. 그래서 일본과 미국에서 이루어진 연구까지 두루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누구나 위안부의 역사와 실체에 관해 위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

    2009-06-01 이영훈
  • (7)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실체

    위안부와 정신대는 다르다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의 일본군에는 군 시설의 일부로 위안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 젊은 여인들이 위안부로 수용되어 군인과 군속들에게 성적 위안을 제공했습니다. 그 가운데 상당수의 조선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여인들에겐 행동의 자유가 없었습니다. 성

    2009-05-25 이영훈
  • (6)협력자들

    이광수나 최정희와 같은 적극적인 협력자들이 조선이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순수하고 정직한 민족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조선의 자손들이 살길이라고 생각한 것은 당시 일본제국의 판도가 공간적으로 대폭 확장하고 있었던 객관적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2009-05-21 이영훈
  • (5)식민지 근대화론의 올바른 이해

    차별을 받는 가운데 조선인들은 그들이 하나의 운명공동체인 민족임을 자각하게 됩니다. 민족의식은 역설적으로 일제의 동화교육을 많이 받은 지식인일수록 더욱 강했습니다. 그러니까 동화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다른 하나의 방책은 조선인이게도 정치적 권리를 인정하는

    2009-05-19 이영훈
  • (4)식민지 수탈론에 대하여

    역사란 무엇입니까. 주제가 빗나가는 듯합니다만, 이 문제를 잠시 생각해 봅시다. 흔히들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아닙니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 그것이 역사이지요. 기억되지 않은 과거사는 아

    2009-05-18 이영훈
  • (3)조선왕조는 왜 망하였나

    한국의 중산층은 “오른쪽으로 살면서 왼쪽으로 생각한다”(live right, think left)고 하는 군요. 그렇게 한국의 중산층은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인 정체성 위기의 상태입니다.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자신도 헷갈리지요. 지식인들도, 교수라는 사람들도 대개 마찬가지

    2009-05-15 이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