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일의 북한은 '주체사상의 종말'

    1991년 북한을 방문했을 때 저에게 가장 관심 있는 취재 대상 가운데 하나가 주체사상이었습니다.
    당시 저의 눈에는 북한에는 두개의 기둥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주체사상"과 "수령"이었습니다. 수령은 실수와 흠이 없다는 무오류의 상징으로 북한 체제에서 신격화되어 있었고, 주체사상은 북한의 국가철학이자 북한의 종교였습니다.

    북한 동포들에게 수령은 무엇이고, 북한을 이끌고 가는 정신적 요체인 주체사상은 무엇인가 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던 저는 주체사상의 골격을 만들었다는 황장엽 전 김일성대학 총장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황장엽 씨는 만나지 못하고 대신 주체사상 연구소장 박승덕 박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박승덕 소장과 6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저는 제가 궁금했던 주체사상의 윤곽을 어느 정도 물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박승덕 박사는 "주체사상은 한마디로 말해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입니다.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운명을 개척하는 것도 자신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6년이 지난 1997년, 주체사상의 창건자인 황장엽 씨가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망명했습니다.
    황장엽 씨의 망명은 사상적으로 북한 체제에 핵폭탄을 투하하는 사건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주체사상을 만든 사람이 주체사상을 포기하고 남한으로 망명한 것은 북한에서 주체사상이 더 이상 가능치 않은 것에 대한 선언이자 북한 체제가 정신적으로 사망했다는 것을 상징해 주는 것입니다.

    그가 남한 땅을 밟으면서 "인민이 굶어 죽는데 무슨 사회주의인가" 하고 일갈했던 망명 일성은 엄청난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혁명과 건설의 주인이 인민이라는 주체철학을 만든 사람으로 인민은 굶어죽는데 김정일이 호의호식 방탕 하는 것을 보면서 그대로 추종했다면 그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 양식도 없는 기회주의자이자, 사상가로서 양심 없는 기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황장엽은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었기에 망명을 택했습니다.

    인민을 배반한 김정일을 버린 황장엽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운명을 개척하는 것도 자기 자신이란 주체철학을 만든 사상가로서 황장엽이 택한 길은 그의 사상과 철학에 대한 충성이었습니다. 김정일 정권은 황장엽을 인민의 배반자로 불렀지만, 황장엽은 인민의 배반자가 아니었고, 인민을 배반한 김정일을 버린 것이고, 자신의 인민 철학을 배반할 수 없어서 망명한 것입니다.

    황장엽은 아내와 자식과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버리고, 그들이 당해야할 말할 수 없는 박해를 각오하고 망명길을 택했습니다. 그에게는 배반할 수 없는 사상과 버릴 수 없는 조국의 장래가 더욱 중요했습니다. 황장엽은 망명을 통해 남북한 관계에 새로운 운명과 도전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남한에서 북한체제를 비판하고, 북한의 실체를 알리고, 남한 사회의 각성을 촉구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그가 택한 새로운 운명의 길은 그가 생각한 것만큼 밝게 열려 주질 않았습니다.

    10월 10일 세상을 떠난 황장엽 씨의 별세에 대해 북한은 “황가 놈의 급사는 하늘이 내린 천벌이며 조국과 인민, 민족을 반역한 변절자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가 하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면서 “일점 혈육도 없는 타향에서 누구도 모르게 명줄이 끊어졌으니 이보다 비참한 최후가 어디에 있겠느냐”고 소름끼치는 표현을 했습니다. 북한의 사고와 언어가 극단적이란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인간의 죽음을 이렇게 극악하게 매도하는 인간과 제도에 대해 깊은 고통과 슬픔을 느꼈습니다.

    이런 언어를 쓸 수 있는 사람들 입에서 아무리 고매하고 거창한 민족과 통일의 언어가 나와도 그것은 진실일 수가 없습니다. 북한으로서는 정신적 기둥이었던 주체사상의 뿌리를 뽑아들고 남한으로 망명한 황장엽 씨에게 원한과 분노가 사무치겠지만, 최소한도의 품격이 있다면 이렇게 비열하고 동물적 표현은 쓰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언어는 북한의 국격을 스스로 말해 주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의 망명'만으로 현충원 묻힐 자격

    그러나 북한이 황장엽 씨를 이렇게 악독하고 극렬하게 폄하하는 것은 북한이 원래 그런 수준을 가진 체제이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남한에서 서로의 이해관계와 이념에 따라 고인을 놓고 논란을 전개하는 것을 보면 남한의 품격이 허물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한국 정부가 황장엽 씨에게 무궁화장을 추서하고 현충원에 안장키로 한 것에 상당수 진보적인 사람들은 황 씨가 주체사상을 창시해 독재 정권의 기틀을 마련했고, 북한의 인권 악화를 초래한 사람이었고, 남한에 와서 주체사상을 부정한 바가 없다고 반대했고, 일부 보수적인 사람들은 황장엽이 김정일과 관계가 악화되자 남한을 피신처로 이용한 사람이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고, 한번 공산주의였던 사람의 속마음이 쉽게 달라질 수 없고, 오늘의 북한 현실에 대해 책임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현충원에 안장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황장엽 씨가 주체사상을 들고 남한으로 망명한 것만으로 황장엽 씨는 북한 체제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고, 남한 체제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주체사상이 떠난 북한 체제는 사상과 정신을 잃어버린 권력의 시멘트 집만 남은 삭막한 권력의 폐가로 전락했습니다.

    김정일이 황장엽 씨의 망명에 그토록 분해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형식적이기는 했지만 그가 기대고 있던 정신적 기둥을 뽑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북한은 정신이 없는 집단이 되었고, 사회주의나 주체주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광신적 가족 종교 집단이 되었습니다. 3대가 세습해서 김일성 조선을 표방한 것은 사상과 이념을 잃어버린 북한 체제의 방황이자 표류입니다.

    이것만으로 김정일 정권은 더 이상 사회주의, 주체주의란 기치를 들고 존립할 명분과 정당성을 상실했습니다. 황장엽은 북한의 사상을 뒤 흔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이것만으로도 현충원에 묻힐 자격과 공로가 있습니다.

    신념에 목숨을 건다는 것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일신의 부귀와 영달을 위해, 권력투쟁에 밀려 망명했다고 조소하지만, 그런 비난은 인간으로서 최소한도의 예의도 생각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비난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추앙하고 추종하는 사람의 동기를 의심받을 때는 거품을 물고 욕을 합니다. 황장엽 씨가 김정일의 눈에 벗어나 망명했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김정일과 거리가 생겨도 거기서 오는 결과가 가족을 버리고 생명을 걸면서까지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망명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질 않습니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김정일의 비위를 맞추고 조용히 노년을 보내는 것이 최상의 선택일 것입니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망명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런 종류의 부류이고, 자신들의 좁은 협량으로는 사상과 신념과 이상에 생명을 거는 사람들의 열망과 열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서슴지 않습니다. 북한의 정신적 기둥을 세운 황장엽 정도의 인물로서는 가족과 일신의 영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신의 사상이 배반당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상을 배반할 수 없어 황장엽은 망명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바로 그런 점이 황장엽을 현충원에 안장시켜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황장엽이 남한에 와서 주체사상을 부정한 적이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황장엽에게 주체사상은 그의 생명일 수 있지만 북한을 탈출하면서 주체사상은 죽었습니다. 주체사상을 만든 사람에게 주체사상의 시신을 자기 손으로 살해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행동입니다. 그 주체사상은 사상의 박물관에서 연구 자료가 되고, 북한의 허구와 김일성 김정일 체제의 위선을 이념적으로 벗기고, 남한 체제를 보완하는 참고서가 될 수 있습니다. 황장엽이 스스로 주체사상을 난도질 했다면 그것이야 말로 기회주의적이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 자기 영혼을 파는 것입니다.

    종북세력의 분노와 자가당착


    황장엽은 북한 사상의 골격을 창시해 독재 정권의 기틀을 마련했고 북한의 인권 악화를 초래한 사람이기 때문에 현충원에 안장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 또한 깊지 못한 생각입니다.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이런 주장을 강하게 하는 사람들일 수록 오늘의 김정일 정권을 비호하고 두둔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이 사람들은 지금까지 북한의 인권 문제에 침묵했던 사람들이고, 지금도 북한의 인권 문제에 침묵하는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유엔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지적했다고 화를 낸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일 수록 3대가 세습하는 가장 질 낮은 독재 정권의 광대극에 침묵하거나 동조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이렇게 김정일 정권의 독재와 세습과 인권 탄압을 누구보다도 비호하는 사람들이 황장엽이 이런 정권의 사상적 바탕을 마련해 주었다고 공격하면서 현충원 안장을 반대하는 것은 자가당착입니다. 이들은 김정일 정권이 어떤 정권이든 상관없이 추종하는 종북(從北) 세력이거나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맹북(盲北) 집단에 불과 합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를 모두 다 떠나서 황장엽이 북한 체제를 버리고 남한으로 망명한 그 자체 하나만으로 황장엽은 남한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북한은 하다못해 박정희 정부 밑에서 외무장관을 지냈던 최덕신까지 통일의 영웅으로 미화해서 애국 열사능에 안장했습니다. 자기 체제의 선전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북한으로서는 당연한 것입니다.

    이런 북한 체제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황장엽의 현충원 안장을 반대하는 것은 북한의 선전술을 아직 터득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덩달아 춤추는 극우세력은 자신들의 꽉 막힌 수구와 편협성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기 체제를 버리고 투항한 사람에게는 넉넉하고 관대하게 포용해주는 것이 내가 사는 체제를 단단하고 건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득한 과거 시대에도 투항한 왕이나 적장에 대해서는 큰 벼슬을 내리고 융숭한 대접을 했습니다. 하물며 이 민주시대에 자유 체제를 찾아 상대 정권의 사상을 짊어지고 망명한 사상가에게 훈장을 추서하고 현충원에 안장하는 것은 남한 체제의 아량과 자신감을 위해서도 필수적입니다.

    황장엽의 경고를 들어라

    황장엽 씨는 망명했을 때의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황장엽 씨는 북한이 붕괴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망명 당시 북한이 머지않아 붕괴 될 것으로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북한은 무너지지 않았고, 그를 맞은 남한의 현실은 그의 생각과 달랐으며, 남한에는 그가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로 많은 북한 지지 세력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노 망명객 황장엽 씨의 가장 큰 좌절이었습니다.

    제가 황장엽 씨의 경고에서 가장 공감 하는 부분은 남한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자기 체제를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북한을 방문한 뒤, 만약 북한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적 안정을 이룩한다면, 북한은 남한의 무서운 위협세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남한의 타락하고 부패한 정신력으로는 광기의 신념과 정신력으로 무장한 북한을 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물론 이런 경고에 남한 국민들은 웃습니다. 자신감은 힘이지만 잘못된 자신감은 역사의 흐름을 직시하지 못하는 교만의 덫에 걸리게 합니다.
    남한이 정신 차리지 않으면 자기 체제를 지킬 수 없다는 황장엽 씨의 경고는 남과 북의 핵심을 통찰하는 노 사상가의 안목이기도 합니다. 남한이 이 경고를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일 때 황장엽의 망명은 역사에서 더욱 큰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외로웠던 노 망명객을 넉넉하고 숙연한 마음으로 현충원에 묻어야 합니다. 그것이 한국의 국격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조광동 /재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