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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장을 덮자, 쌉쌀한 기운이 온 몸에 퍼져온다. 20대 중반, 아직은 온전히 공감치 못할 지라도 글을 읽는 내내 떠오르는 우리네 가족의 모습에, 마치 내 이야기인 듯 심장이 저릿하다.

  • 한때는 꿈 많은 소녀였고, 또 한때는 누군가의 마음을 설레게 했을 꽃 같은 아가씨였고, 이제는 그 이름만 들어도 누군가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엄마들에 대한 이야기. 인생의 반환점에 선 그녀들에게 전하는 가슴 뜨거운 위로와 공감일기가 여기에 있다.

    ‘아줌마도 아프다’는 한 여인의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감을 방송작가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풀어낸 책이다. 사는 데 바빠, 식구들 챙기느라 정신없어 그 속살을 드러내 보일 여유가 없었을 뿐, 누구보다도 여린 속살을 가지고 있는 아줌마들의 감성을 신랄하게 통쾌하게 표현했다. 울고 웃으며 읽다 보면 공감과 위로 한 자락을 얻기에 충분하다.

    “그래, 오래도 참았어. 아프고 지칠 때도 됐지!”

    눈이 핑핑 돌아가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아줌마의 자리는 늘 그 자리다. 누구보다 자아가 강하지만 자신보다는 가정을 위해 헌신해야 하고, 아이를 낳은 다음에는 일을 그만두거나 한다고 해도 그와 똑같이 해내려면 몇 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또한 양육에 있어서 인성이 더 중요하다고 믿고 있지만 성적에 연연하고 자녀교육에 올인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저자 역시 그렇다. 영상 번역 작가로 누구보다도 열심히 자기 일을 하며 살았지만, 점차 자기는 지워지고 가정생활과 양육의 자리는 커져갔다. 그마저도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투성이다. 세상은 마음 같지 않고 그렇게 헌신해온 남편과 아이들도 그녀의 뒤통수를 치기 일쑤다. 그래서 아줌마는 아픈 것이다.

    결혼생활 16년째인 저자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우울, 그녀는 한동안 모든 의욕을 잃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아프고 지칠 때도 됐구나’ 하고 말이다. 그러고는 세상의 모든 서럽고도 꿋꿋한 그녀들에게 힘들고 버겁고 외롭겠지만, 나 역시 그러하다고, 곧 괜찮아질 거라고 토닥거린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솔직하게 풀어낸 일기이자, 그녀와 비슷한 또 다른 그녀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편지이기도 하다.

    ‘비는 오지, 오줌은 마렵지, 신발은 떠내려가지, 뭐부터 먼저 해야 할지 모르는 초조한 인생.’ 저자의 어머니가 자신의 인생을 빗대어 말하는 대목. 사실 대부분의 아줌마들 삶이 저러하다.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들 제각각인 만큼, 이 이야기 역시 서울 어느 한쪽에서 살고 있는 어떤 아줌마가 겪는 ‘별별 이야기’이다. 그러나 아줌마들의 삶이 가진 공통분모가 워낙 크기에, 아줌마라면 누구나 연령과 생활의 차이를 떠나 고개를 젖히고 웃거나 가슴을 치며 울 만한 그런 이야기인 것이다.


     

  • 인생의 뜀박질이 뭐 그리 재미만 있을까마는 함께 뛰는 사람과 나란히 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덜 외로울 것 같습니다. 그들이 가끔 내 어깨를 두드려준다면 따뜻한 격려가 되겠고 손이라도 한번 잡아준다면 든든한 위로가 되겠습니다.

      

  • 아줌마에 대한 이야기이며, 한 여인의 인생에 대한 오롯한 고백서입니다. 대한민국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또 다른 이에게는 위로가 될 수도 있고 혹은 그 무엇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자신이든 혹은 그 누군가의 모습이 떠오른다면 차마 입 밖으로 꺼내놓지 못한 가슴 속 이야기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겁니다.


  • 몸만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될 일. 문제는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바느질을 해온 옷이 바늘땀에만 신경을 쓰느라 전체적인 옷 형태가 쭈글쭈글한 꼴이 되고 말았다. 바늘땀 어딘가에서 어긋난 것이 분명한데 이제 와서 풀고 다시 꿰맬 수도 없는 일이다. 디자이너가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옷이 어딘지 완전치 못함을 인정하는 건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것이다. 지금의 내 심정이 꼭 그렇다.…p.10

    서운한 게 쌓여만 가는 시댁,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 잠시 떨어져 있고 싶은 남편. 정말 어디서 생활비만 또박또박 나온다면 아이들만 데리고 혼자 살고 싶다. 내가 이렇게 아프다는데, 내가 이렇게 소원한다는데 내 말 한번 진지하게 들어주면 안 되는 걸까. 계속되는 나의 청원에 지친 남편이 이런다.
    “이혼은 안 됩니다. 별거도 안 됩니다. 어떻게 해드릴까요?”…p.61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아이가 시험을 치고 나면 서술형을 제외한 나머지 객관식 정답오답 표를 나이스(NEIS)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떨리는 마음으로 컴퓨터를 노려보던 나는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이여, 이 아이가 정말 제 아이란 말입니까? 동그라미는 어디 가고 온통 빗살무늬 토기란 말입니까? 도덕점수는 또 왜 이리도 비도덕하단 말입니까? 최종적으로 영어성적까지 확인한 나는 어지러웠다. 그간 들인 돈이 얼마고 아이를 잘 키우네 못 키우네 남편한테 받은 수모는 또 얼마란 말인가. 아이들 온갖 짜증도 오냐오냐 해줬건만 돌아온 건 미친 듯 요동치는 심장과 부들부들 떨리는 손과 휘적휘적 도무지 힘을 줄 수 없는 다리뿐이라니. 참담했다. 아이들을 어떤 얼굴로 맞을 것인가 고민하고 있는데 예상대로 전화통이 울렸다.
    “승우 엄마, 청심환? 타이레놀?”…p.115

    아이를 키워본 엄마들은 다 알 것이다. 아이들은 형광등을 켜는 순간부터 이상해진다. 낮에 순하게 놀던 아이들도 밤만 되면 미쳐 날뛰는 것이다. 한때 형광등 속의 어떤 물질이 아이들 뇌를 자극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꼭 응급실은 한밤중에 가게 되는 것이다.…p.195

    나는 이제 불혹의 40대가 아닌 인생의 부록인 40대로서 내 인생에 한 번의 쉼표를 찍고 싶다. 마침표를 찍는 날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그때 쉼표를 찍길 잘했어 하는 생각이 들게 잠깐 쉬어가고 싶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반환점은 있다. 그 반환점을 돌며 나는 거울 앞에 섰다. 익숙한 듯 낯선 거울 속의 그 여자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냐?…p.228~229

  • 결혼 16년차의 대한민국 대표 아줌마. 한때는 잘나가는 영상 번역 작가로 날밤을 새며 청춘을 불사르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한 남자의 아내로, 한 집안의 맏며느리로, 두 아이의 엄마로 한시도 바람 잘 날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지적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쌈닭 기질이 다분하며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고 하여 친구들에게 ‘안광眼光 여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마흔 중반을 넘어가는 고비는 그렇게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그녀에게도 버겁기만 하다.

    친정보다 살뜰한 정을 나누던 시댁에는 어느 순간 섭섭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고 남편한테는 미움이라는 키워드가 생겨나고, 아이들에게는 실망이라는 꼬리표가 붙기 시작했다. 마음은 ‘로맨스’를 꿈꾸지만 현실의 남편을 보면 ‘웬수’도 이런 ‘웬수’가 없으며, 마음으로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뛰어놀게 하고 싶은 ‘부모’를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성적표와 각종 진학정보에 눈을 부릅뜨는 ‘학부모’가 되기 십상이다. 그런가 하면 몸도 마음도 예전과는 달라 깜빡깜빡하기 일쑤고 우울감이 친구처럼 따라붙기 시작했으며 몸속에는 수십 개의 혹이 생기는 등, 안으로 밖으로 나이 먹는 일의 신경통을 겪느라 아우성이다.

    그렇게 아픈 아줌마이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고 사고뭉치라도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있기에 오늘 하루도 견딜 만하다고 생각하는 긍정적인 마인드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지금껏 수고해온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 모든 아줌마에게 ‘지쳐도 괜찮아, 잠깐 쉬었다 가자’라고 다정스레 말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

     

  • 책을 펴내며_대한민국에서 아줌마로 산다는 것
    프롤로그_아줌마도 아프다

    Chapter01 결혼, 그 달콤 짭짤한
    모시 고르려다 삼베 골랐네
    내겐 좀 특별한 친정엄마
    시어머니 VS. 친정엄마
    황당한 출산기
    내 꿈속의 애인
    남편은 외계인
    달라도 너무 다른
    왕따 남편
    로또복권 사는 여자
    내 별명은 쌈닭

    Chapter02 양육전쟁, 이상은 멀고 현실은 가까운
    대치동입성기
    모나미와 화사회
    아토스의 자살
    내겐 너무 먼 이웃사촌
    청심환과 타이레놀
    남편은 여자다
    불협화음의 합창대회
    엄마들의 두 얼굴
    워킹맘과 전업주부
    방과후학교
    낮잠 자지 않는 토끼
    일개 학부모 교육을 걱정하다
    글로벌 권하는 사회

    Chapter03 때론 악마 같고 때론 천사 같은
    순진한 첫째, 영악한 둘째
    공부해서 뭐해요
    자전거도둑
    클라리넷 부는 소년
    딸의 남친
    응급실 인생
    카메라 울렁증
    믿거나 말거나 아들 낳는 법
    아이의 사고에 대처하는 엄마의 자세
    때론 아이에게 배운다

    Chapter04 인생의 전환점, 쉼표 하나
    마흔다섯의 자화상
    우울과 친구가 되자
    나를 슬프게 하는 건망증
    악몽의 대장내시경
    조상님 전상서
    닮고 싶은 부부
    사랑과 미움 사이
    백년해로 하자꾸나
    이제는 잊힌 방송작가
    자살, 그것은 타살이다
    양재천 길에 대한 단상

    에필로그_나를 닮은 어딘가의 그녀에게

     

    좋은인상 펴냄, 296쪽,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