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신고전파 주류경제학과 신자유주의의  “니르바나(열반 涅槃) 세계관”도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작금의 금융위기에 대해 신자유주의 세계관이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처럼 논의되고 있지만, 필자는 신자유주의는 케인지안 온정주의를 실현하려는 미국 민주주의의  수단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전 국민의 자가 주택 보유를 추구하는 민주주의이념이 신자유주의 이념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며, 단지 미국 정치권과 학계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이념을 내걸고 지나친 금융자율화를 정당화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신자유주의는 케인지안 혹은 민주주의의 온정주의 때문에 엉뚱한 피해를 입은 셈이라 할 수 있다.

  • ▲ 좌승희 박사 ⓒ 뉴데일리
    ▲ 좌승희 박사 ⓒ 뉴데일리

    그렇다면 신자유주의가 여전히 우리의 대안인가? 나아가 하이에크의 자생적 질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완전경쟁모형으로 대변되는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의 세계관은 어떠한가?
    필자는 이 두 세계관은 한마디로 완전한 시장에 많은 것을 맡기면 이상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으로, 이는 마치 소위 부처님의 열반(涅槃)의 세계와 같은 완전한 세상에서는 항상 모든 일이 잘 된다고 얘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를 ‘니르바나(열반) 세계관’이라 부를 수 있다고 본다. 완전한 시장, 자생적 질서에서는 시장의 자동조절기능에 의해 자원배분이 최적화되기 때문에 정부도 조직(기업)도 필요 없는 세상이 된다. 이는 발전이 다 이루어진 최상의 경제, 즉 열반의 경제를 상정하고 있는 것과 같으며, 그래서 현실 시장과는 크게 괴리된 시장인 셈이다. 이 세상에서는 옳은 이념인지 그른 이념인지의 문제는 생기지도 않으며 이를 고민할 필요도 없다. 모두가 어느 이념이 옳은지 다 알기 때문이다.
    여기서 신자유주의이념을 신고전파 주류경제학과 같이 니르바나 이념으로 취급한데 대해 신자유주의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불공평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이념의 경우 하이에크의 자생적 질서로서의 시장의 한계가 충분히 인지되지 못하고 있다. 자생적질서인 시장은 현실적으로 항상 불완전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발견과정으로서의 시장의 능력은 절대 신뢰하지만 정부라는 조직, 더 나아가서는 심지어 민간 조직의 역할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불완전한 시장을 보완하는 조직의 기능이 인정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시장이 모든 문제의 해결사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신자유주의의 시장관은 결국 신고전파 완전경쟁모형의 니르바나이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7)
    현실 시장은 항상 불완전하고 거래비용을 피할 길이 없어 조직의 힘이 없이 시장만의 힘으로는 발전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는 것이 후술하는 신 자본주의 경제발전관이다. 왜 인류는 지난 250만년의 수렵과 채집시대, 즉 교환경제시대를 살았는데도 단지 지난 200여년을 제외하고는 경제발전이라 부를 수 있는 도약을 만들어 내지 못하였는가? 249만 9,800년 동안, 자생적 질서, 시장의 힘은 다 어디에 갔었는가? 오늘날 지구상에는 200개가 넘는 독립경제가 있으나 그 중 겨우 1/4만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오늘날 북한 말고 시장경제를 하지 않는 경제가 지구상에 있는가? 자생적 질서, 시장의 힘은 다 어디에 갔는가?  

    4. 新 자본주의 경제발전관 8) :   “흥하는 이웃이 있어야 나도 흥한다”

    1) 경제는 복잡계이며 모든 변화의 전형인 창발현상은  시너지효과의 결과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복잡계이다. 복잡계란 부분의 합이 각 부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질서를 만들어 내는 우주안의 모든 열린 시스템을 말한다. 이러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현상을 일컬어 창발현상(emergent behavior)이라 한다. 인간은 성인의 경우 그 체구가 작은 경우에서 큰 경우까지 대략 60조 내지 100조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세포가 모였으면 세포덩어리라야지 왜 인간이라는 생명현상, 생각하고, 말하고, 사랑하고, 자식을 낳는 고차원의 새 질서가 만들어 졌는가? 바로 세포가 모여 세포덩어리가 아닌 생명현상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창발현상이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생명현상을 복잡계의 전형이라 하는 것이다. 한편 자연의 물리현상에서도 창발현상은 쉽게 관찰된다. 조그만 나비의 날갯짓이 또 다른 나비의 파장을 만나 더 큰 파장으로 증폭되고 이 과정이 되풀이 되면서 종국에는 폭풍우나 토네이도로 변화되는 현상인 “나비효과”가 나타나는데, 이 또한 부분의 합은 부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 셈이다. 나비효과 또한 복잡계의 전형인 창발현상인 것이다.
    그럼 이러한 창발현상은 어디에서 오는가? 창발현상은 시너지효과에서 온다고 한다. 시너지는 열린 시스템끼리 서로 만나 주고받는 에너지를 일컫는 말이다. 서로 다른 세포가 만나 서로 시너지효과를 창출하고 또 다른 세포와 만나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서로 다른 나비의 파장이 만나 시너지효과를 내고 또 다른 파장을 만나 더 큰 파장을 만들어 내고……. 부분이 만났을 때 서로 간에 창출되는 더 큰 힘을 일컬어 시너지 효과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시너지 효과란 일종의 증폭효과를 의미하는데 비선형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1+1=2’가 아닌 100, 10,000, 혹은 그 이상도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바로 이 힘, 즉 비선형적 상호작용(만남)을 통해 창출되는 힘이 창발현상을 만들어 내는 원천인 것이다. 여기서 비선형적 상호작용이란 서로 상이한 개체끼리의 만남을 의미한다. 동일한 개체끼리의 만남은 선형적 만남으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없다. 동일한 세포는 200조개가 만난다 해도 생명현상의 창발은 고사하고 그냥 세포덩어리일 뿐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변화와 발전현상도 바로 전형적인 복잡계 현상이다. 경제주체들이 서로 만나 서로 간에 시너지를 창출함으로써 더 큰 경제적 힘을 만들어 내며 또 다른 주체들을 만나 더 큰 힘을 만들어 내고, 이러한 힘들이 증폭되어 변화와 발전을 이끌게 되는 것이다. 경제발전이란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고차원의 새로운 질서를 창출해내는 창발현상이라 할 수 있다. 즉 발전은 60-100조의 세포덩어리가 생명현상으로 전환되는 과정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후진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과정, 저개발 지역이 현대식 산업도시로 전환되고 나아가 첨단 서비스도시로 전환되는 과정이 바로 생명현상이 창출되는 창발현상과 다르지 않은 것이며 이 과정을 이끄는 원천이 바로 시너지효과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발전 - 국민경제와 지역사회발전은 물론 기업의 발전, 가문과 개인의 발전 등 - 은 만남과 소통 그리고 시너지의 공유에서 출발한다. 다른 개체와의 만남과 소통이 없고 그래서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는 닫힌 시스템은 궁극적으로 무질서(엔트로피)가 극대화되어 소멸될 수밖에 없다. 

    2) 복잡계의 변화와 발전은 진화법칙을 따른다. 다름, 차이를  허용하지 않는 평등사회에는 영원한 휴식이 있을 뿐이다. 

    복잡계의 창발은 서로 상이한 개체끼리의 비선형적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 동일한 개체끼리의 만남, 즉 선형적 상호작용은 창발할 수 없다 하였다. 그래서 다름, 차이를 허용하지 않는 시스템은 변화와 발전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복잡계의 창발현상은 초기의 아주 조그만 새로운 변화가 또 다른 조그만 변화를 만나 더 큰 변화로 증폭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증폭과정은 진화법칙을 따른다. 진화는 서로 다른 개체들 중에서 적자(適者)의 수가 증폭되는 과정을 거쳐 변화를 만들어 낸다. 특정한 개체가 무리와는 다른 변화(진화 용어로, 변이), 혹은 차이를 만들어 낼 때 이를 따라 복재하는 개체의 수가 늘어나면서 변화의 증폭현상이 생기고 기존의 무리는 새로운 행태의 무리로 바뀌게 된다. 모든 진화는 서로 다름을 만들어 내고 이를 따라 선택하고 복제하고, 증폭되는 과정을 밟게 된다. 
    따라서 복잡계의 변화과정은 서로 다름, 차이, 차별, 차등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변화가 만들어 진다. 역으로 평등, 균형 속에서는 변화는 만들어지지 않으며 영원한 휴식과 죽음이 있을 뿐이다. 선택하고 차별화함으로써 증폭과정을 통해 변화가 만들어 진다. 변화하는 열린 시스템은 결코 평등과 균형과는 같이 갈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