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여름은 덥고 습하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그늘에 들어가도 덥다.
    밤공기마저 후덥지근하다. 끈적대기까지 한다. 불쾌지수가 올라간다.
    열대야가 엄습하면 잠도 못 잔다.

    아이스크림 장사나 에어컨 파는 전자회사 빼놓고 이런 여름을 누가 좋아할까.
    나도 예전엔 여름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이라 더욱 그랬다.

    그러던 내가 언제부터인가 여름을 기다리게 되었다.
    습한 여름이 오면 내 알레르기 비염이 뚝 멈추기 때문이다.
    겨울부터 봄까지는 하루라도 비염 약을 먹지 않고는 못 배긴다.
    아침부터 콧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재채기가 쏟아진다. 코 안이 답답하면서 간지럽다.

    한여름이 되면 달라진다. 약을 안 먹어도 전혀 이상이 없다.
    비염은 건조할 때 기승을 부리다가 습해지면 잠잠해지는 것이다.

    작년에 일 년 동안 미국 시애틀에 있을 때는 정반대였다.
    늦가을부터 봄까지는 내내 비가 추적추적 내리니까 비염이 덜하다가 여름이 되어 해가 쨍쨍 나면 비염이 최고조에 달했다. 시애틀의 여름은 건조하기 때문에 그늘에만 들어가면 서늘한 반면에, 내 코는 여름 내내 괴로웠다. 올해 한국에는 장마가 일찍 올 거라고 하니 나로서는 더욱더 다행이다.

    나는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다. 한국인 열 명 중에 한두 명은 알레르기성 비염을 앓는다고 한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아픔을 나눌 사람이 많아 다행이라고나 할까.
    내가 비염과 인연을 맺은 것은 9년 전 미국에서 일 년 간 연수할 때이다.
    연수 막바지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침부터 재채기가 터져 나오고 맑은 콧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 때는 그것이 알레르기성 비염인지도 몰랐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병원에 가봤더니 알레르기성 비염이라고 했다. 알레르기 검사랍시고 등에 약을 바르더니 바늘로 수차례 콕콕 찌르고 나서는, 동물 털을 비롯한 몇 가지에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났다고 알려주었다.

    또 다른 의사는 내 비염이 비후성비염(肥厚性鼻炎)이므로 수술하라고 했다.
    ‘비후’(肥厚)란 말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살이 쪄서 두툼하다’는 뜻이다.
    코도 살이 찐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수술은 아직까지 안 받고 있지만.

    내 비염은 ‘만성’(慢性)이다. 나는 연중 코로 인해 고통을 겪는다.
    기온이 변하거나 나쁜 공기가 들이닥치면, 내 코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재채기를 쏟아낸다.
    재채기를 덜 하려면 가급적 기온 변화를 피해야 하는데, 그것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문을 여닫거나 에어컨을 조절하는 권한이 항상 내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담배연기도 비염에 안 좋지만 그렇다고 이 지구상에서 담배를 추방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이다.
    동물 털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다고 해서, 아내와 아들의 동의 없이 내 맘대로 강아지를 집에서 쫓아낼 수도 없다.

    나의 하루는 비염에서 시작하여 비염으로 끝난다.
    아침 인사는 콧물이 하고, 밤 인사는 재채기가 한다. 아침에는 콧물부터 흘러내리고, 밤에는 잠자리에 누워서도 한바탕 재채기를 하고서야 잠이 든다. 그러다 보니 사흘이 멀다 하고 이비인후과를 찾는다. 의사는 내 양쪽 콧속을 들여다보고는 염증 부위를 치료한 뒤 기구에서 뿜어내는 더운 증기를 코로 마시게 하고 약을 처방해준다. 어느 새 이비인후과는 내 단골병원이 되었고, 그 의사는 내 주치의가 되어 버렸다.

    비염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동서 의학과 민간의 백가쟁명(百家爭鳴)식 처방이 나와 있다.
    수술, 한약, 비타민, 운동, 음식, 그 외에도 갖가지 처방이 다 있다.
    그러나 비염은 시쳇말로 한 방에 때려잡을 수 있는 병이 아니다. 병원을 정해놓고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가서 진료 받고 약을 타다 먹는 수밖에 없다. 증상이 가벼워지면 약을 먹는 양과 횟수도 줄이면 된다.

    아내는 약을 많이 먹어 좋을 게 뭐가 있느냐며, 약을 먹지 말고 식염수로 코를 세척해 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해 보았지만 신통하지가 않았다. 병원에 가봐야 비염은 낫지 않는다며, 그냥 참는 사람도 보았다. 하지만, 코가 헐도록 병원에 가지 않고 미련을 떨기보다는, 임시처방이지만 약을 복용하는 것이 낫다. 요즘은 부작용이 없으면서 오래 복용해도 안전한 약이 나와 있다. 최고도로 발달한 제약기술의 혜택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잔병을 잘 치료해야 장수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코를 풀지 말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나는 그 때부터 코를 풀지 않는다. 세수나 샤워를 하고 나서 코 안을 조심스럽게 닦아낸다. 코는 나의 신체부위 중에서 가장 연약한 곳이다. 가장 약하기 때문에 가장 조심스럽게 다루어지며 가장 많이 보호받는 부위이기도 하다.

    신약성서를 보면 바울 선생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에게는 지병(持病)이 있었다.
    아마도 안질이었던 것 같다. 병을 낫게 해달라고 수없이 기도했지만 그의 기도는 끝내 응답받지 못했다. 신이 바울 선생에게 베풀었던 은혜는 그 자체로 족했던 것이다.
    거기서 바울은 ‘약함 속의 강함’이라고 하는 교훈을 터득한다. 

    비염을 정복하는 것도 좋지만 비염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도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비염이라는 지병이 있음으로 해서 늘 건강에 유념하게 되니까 말이다. 마치 감기에 걸리거나 몸살이 나야 비로소 자기 몸을 혹사한 것을 깨닫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병이 없으면 자칫 건강을 과신할 수 있다.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곤 한다.
    쉽게 휘어지지만 부러지지 않는 것(bend but don't break)이, 강하지만 어느 순간에 부러지는 것(strong but break)보다 낫다.

    내가 비염을 재앙(disaster)이 아니라 축복(blessing)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비염을 잘 관리하면 오히려 더 큰 병을 예방할 수 있다. 비염은 어쩌면 내 몸이 약해졌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비염이라는 불치병(?)이 찾아왔는데 그것을 건강에 대한 경종(警鐘)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것이야말로 불감증(不感症)이거나 무지(無知)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비염이 생긴 이후 내게는 일찍 자는 습관이 생겼다.
    비염 덕분에 규칙적인 생활, 절제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비염 때문에 몹시 괴롭지만 나는 기꺼이 비염과 더불어 살 각오가 돼 있다.
    살다 보면 최선이 아닌 차선을 택해야 할 때가 많다.
    비염을 완치할 수 없다면, 비염과 더불어 슬기롭게 공존하는 것도 훌륭한 선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