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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에서는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두고 ‘무섭다’고 표현한다. 소리를 내지를 만한 무서움이 아니라 오싹하고 절절한, 잘 알고 있지만 눈치 채지 못했던(혹은 눈치 채지 않으려 했던) 것을 들춰내 정곡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말이 통하지 않는 사이’인데도 부부인, 결혼이라는 불가사의한 풍경을 자신만의 화법으로 그려 낸 '빨간 장화'로 새로운, 혹은 새롭지 않은 그녀만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이 소설은 결혼하고 10년, 아이가 없는 히와코와 쇼조 두 사람의 미묘한 엇갈림을 통해 체념과 경멸, 불만족이 ‘진실’인 결혼생활을 능숙한 심리 묘사와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생생하게 그려낸다.

    마치, 지금 모습 그대로 괜찮을 리 없는 부스럼 가득한 현실을 세게 긁고 또 긁어도 피가 나오지 않으면 기분이 풀리지 않는 '자상버릇' 과도 같은 모습으로 담아냈다.


    ✔ 이렇게 보세요

     ‣ 남녀 간의 결혼생활을 담고 있지만, 결국 익숙한 일상의 풍경 속 방치해 둔 모든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가족, 친구, 연인…. 표현하지 않지만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는 역시 당신’이라는 진실. 지금, 당신의 가슴 속에 떠오른 그 이름 하나 가만히 입 밖으로 내어 그 잔잔한 행복감에 젖어보시길.

    ‣ 단편의 형식을 빌려 총 14가지의 에피소드로 구성 된 이야기는 각각의 사건을 통해 하나의 결론을 만들어 내는 꼴을 갖춘다. 한 부분을 골라 읽기 보단, 전체를 보시길. 그리고, 적당한 틈을 두고 여유롭게 눈 앞에 그려지는 느긋한 풍경을 충분히 즐기시길.

  • 청아한 문체와 잔잔하고 나긋나긋한 감성 화법의 에쿠니 가오리. 1964년 동경에서 태어나 미국 델라웨어 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한 그녀는 요시모토 바나나, 야마다 에이미와 함께 일본 3대 여류작가로 평가 받으며 '여자 무라카미 하루키'로 불린다.

     국내에 『냉정과 열정사이, Rosso』로 알려지며 큰 사랑을 받아 온 그녀는 동화적 작품에서 연애소설, 에세이까지 폭넓은 집필 활동을 통해 언제나 참신한 감각와 세련미를 겸비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현재에 이르렀다.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에는 현실의 본질적인 고독과 결핍, 그리고 소수를 바라보는 그녀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다. 호모 남편과 알코올 중독자 아내, 그리고 남편의 애인이라는 상식 너머에 있는 세 사람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반짝반짝 빛나는』과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기묘한 우정을 키운 리카와 하나코가 등장하는 『낙하하는 저녁』, 마흔 살 여자와 스무 살 남자의 평범하지 않은 사랑을 보여 준 『도쿄타워』 등.

    1989년 『409 래드클리프』로 페미나 상을, 1992년 『반짝반짝 빛나는』으로 무라사키시키부 문학상을 수상하고, 1998년 『나의 작은 새』로 로보우노이시 문학상을 받은 그녀는 일본 문학 최고의 감성 작가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에쿠니 가오리의 저서로는 『수박 향기』, 『스윗 리틀 라이즈』, 『잡동사니』, 『우는 어른』,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반짝반짝 빛나는』, 『호텔 선인장』, 『낙하하는 저녁』, 『울 준비는 되어 있다』,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도쿄타워』,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홀리 가든』, 『장미 비파 레몬』,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좌안』, 『제비꽃 설탕 절임』 등이 있다.


    ✔ '빨간 장화' 목차

    ‣도호쿠 신칸센
    ‣군것질
    ‣실버카
    ‣여행
    ‣스티커
    ‣막(膜)
    ‣담배
    ‣테니스 코트
    ‣결혼식
    ‣상자
    ‣밤
    ‣골프와 유원지
    ‣족쇄
    ‣곰과 모차르트
    - 역자 후기


    소담출판사 펴냄, 232쪽,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