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순은 연쇄살인마?!" 이상호 선동에 넘어간 여론·언론.. 책임은 누가?
  • 누군가 돌을 쥐어들고 "저 여자가 마녀"라고 소리치며 면상에 돌을 던진다. 처음엔 쳐다보지도 않던 이들이 영화 한 편이 개봉되자 갑자기 높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된 이 영화에서 '주인공 마녀'는 자신의 남편을 죽이고 장애를 앓고 있는 친딸마저 죽이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여성으로 그려진다. 살해 동기도 그럴싸하다. 존속살해(尊屬殺害)의 대가로 남편이 보유한 막대한 음악저작권을 물려 받는 것. 영화 한 편으로 여론이 움직이고, 급기야 이 여성을 처벌해달라는 고발장까지 접수되자 경찰도 총력을 다해 진실을 가려내겠다며 광역수사대에 재수사를 맡긴다. 두 달 후 경찰은 대중의 '기대'를 저버린 정반대의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無혐의'. 경찰은 이 여성에게서 유기 치사는 물론 사기 혐의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다. 1996년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가수 김광석과 그의 아내 서해순씨에 대한 이야기다.

    경찰, 서해순씨 딸 유기치사·사기 의혹 '無혐의' 결론

    지난 9월 21일 김광석의 친형 김광복씨가 '자신의 딸 서연 양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 이 사실을 숨겨 저작권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 했다'는 혐의로 김광석의 부인 서해순씨를 형사 고발하면서 시작된 경찰 수사가 두 달여 만에 마무리됐다.

    경찰은 ▲미성년자였던 고인의 딸 김서연 양이 급성폐렴에 걸렸음에도 불구, 서해순씨가 적절한 치료없이 방치해 2007년 12월 23일 숨지게 한 혐의(유기치사)가 있으며 ▲고인의 유가족(김광복·모친 등)과 '김광석 음악저작물 지적재산권' 소유 여부를 놓고 소송을 벌이던 중 이미 사망한 딸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속여 2008년 10월 유리한 조정 합의를 얻어낸 혐의(사기)가 있다는 고발장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피·고발 당사자들은 물론, 47명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혐의 여부를 가리는 대대적인 수사를 진행했다.

    수사 결과, 서씨가 서연 양의 치료비로 지출한 내역들은 많이 있었지만 반대로 치료를 게을리하거나 방치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서연 양이 남들보다 고통을 인지하는 능력이 떨어져 폐렴증상이 급격하게 악화됐음에도 이를 호소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문의의 소견과, ▲서연 양이 숨지기 며칠 전 감기 증세가 심해져 학교를 결석시키고, 인근 병원에 세 차례 데려갔지만 '단순 감기'라는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도 서씨가 서연 양의 병세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뒷받침하는 요소가 됐다.

    서씨가 서연 양의 사망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아 지적재산권 확인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 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경찰은 '무혐의' 판단을 내렸다.

    민사소송법 제233조 제1항에 따르면 소송 도중에 당사자가 사망하면 소송이 잠시 중단되고 다른 사람이 소송을 이어 받도록 돼 있으나, 서연 양이 사망했을 때엔 이미 소송대리인인 변호사가 선임돼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수계(受繼)할 필요가 없었고 소송 절차도 중단없이 계속 진행될 수 있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따라서 소송 도중 딸이 숨지더라도 애당초 이를 법원에 고지해야 할 의무가 서씨에겐 없었다는 논리다.

    또한 지적재산권 확인 소송의 쟁점은 1996년 서씨와 김광석의 부친이 맺은 '김광석 음악저작물 지적재산권' 계약 효력에 대한 문제였고, 서연 양의 생존 여부는 재판에서 다뤄진 사실조차 없었다. 결국 서연 양의 생존 여부가 조정 합의의 전제 조건이 되지 않는 한, 서씨에 대한 '사기죄(기망)'는 성립하기 어렵다는 게 경찰이 내린 최종 결론이었다.

    수상한 영화 개봉에 여당 의원 '설레발'..여론 '기우뚱'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된 이는 바로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다. 이미 '다이빙벨'이란 영화로 검증되지 않은 '잠수기기'의 효용성을 무리하게 강조하다 물의를 빚었던 그다. 이번엔 그가 고인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겠다며 영화 '김광석'을 개봉하고 나섰다. 앞서 이 기자가 모 케이블방송에 나와 "김광석의 죽음을 '타살'이라고 믿고 있다"는 사견을 밝힐 때만해도 시큰둥하던 여론은 관련 의혹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가 극장에 걸리자 뒤늦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수 네티즌은 이미 수사가 종료된 김광석 사망 사건에 대해서도 재수사가 이뤄져야한다는 무리한 주장을 펴는가하면, 평소 서씨가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딸이 미국에서 잘 살고 있다고 말해왔으나 정작 서연 양은 2007년 12월 23일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한 대학병원에서 숨진 사실이 의심스럽다며 '유기 치사' 가능성이 짙다는 서슬퍼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까지 "당시 경찰은 서연 양이 치료를 받던 중에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병원 차트를 보면 이미 사망한 상태에서 병원에 실려왔다는 기록이 있다"며 동종 '음모론'에 부화뇌동하는 모습을 보이자, 반신반의하던 여론은 완전히 이상호 기자 쪽으로 기울고 말았다.

    화룡점정은 김광석의 친형 김광복씨가 검찰에 낸 고발장이었다. 김씨는 자신의 제수씨가 본인의 딸을 일부러 사망하게 만들어 저작권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했다며 서씨를 처벌해달라는 고발장을 제출했다. 영화 '김광석'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이 고발장이 접수되면서 가뜩이나 선정적으로 흐르던 여론은 거의 '막장'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서씨에 대한 인신공격은 온·오프라인에서 전방위로 이뤄졌고, 전 방송·언론사 역시 서씨의 혐의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기사로 여론의 폭주를 부채질했다.

    "증거도 없이 '심증'만으로 처벌 요구"..한국판 마녀사냥


    이상호 기자와 고인의 친형 등 일부 유가족이 해당 사건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서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고인의 아내 서해순씨의 납득하기 어려운 행보 때문이었다. 자신의 딸이 사망했음에도 이를 신고하지 않은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행동이다. 방송(인터뷰)에 나와 자신의 딸을 '장애우'라고 말하고, "난 혼자가 됐는데 도와주지도 않고 재산도 다 빼앗겼다"고 당당히 말하는 모습도 여론의 반감을 불러 일으키는 도화선이 됐다. 하지만 '심증'만으로 사람을 난도질할 수는 없다. 이상호 기자가 연출한 영화 '김광석'에서도, 친형이 제출한 고발장에서도, 서씨가 김광석을 죽였다거나 딸의 죽음을 방치했음을 입증하는 증거는 담겨 있지 않았다.

    김광석 사망 사건은 이렇게 특정인이나 특정 사건에 대해 대중이 칼자루를 쥐고 심판하는 여론재판의 과정을 밟고 있었다. 증거도 없고 증인도 전무한 상황이었지만, 이미 '결론'을 도출한 여론은 자신들의 입맛대로 경찰이 올바른 수사를 해주기만을 학수고대하는 분위기였다. 이미 수차례 여론재판으로 나라가 요동치고 천지가 개벽하는 경험을 한 우리들 아니던가. 이런 엄중한 분위기 속에 '당신들이 틀렸다'고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부끄럽게도 언론 종사자 중엔 이같은 반골 기질을 가진 자가 없었다. 아니, 모른 척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 싶다.

    "나는 왜 연쇄 살인마 서해순의 변호인이 되었는가"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서씨를 받아준 사람은 인권 변호사로 활동해온 박훈 변호사였다. 김광석의 사인이 '목맨 자살'이라는 부검감정서와, 김광석이 생전에 아버지 김수영에게 저작권을 양도한 적이 없다는 대법원 판결문을 확인한 그는 서씨가 영아 살해, 김광석 살해, 김서연 살해를 한 사람으로 매도되는 것에 분개를 느끼고 서씨의 변호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박 변호사가 서씨의 변호인으로 나서게 된 이유는 자신이 페이스북에 올린 <나는 왜 연쇄 살인마 서해순의 변호인이 되었는가>라는 글에 자세히 소개돼 있다.

    이 글에서 박 변호사는 "김광석의 형 김광복의 무리한 주장을 이상호가 아무런 검증 없이 나팔을 불면서 서해순을 '연쇄 살인범'으로 몬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밝힌 뒤 "목맨다는 것과 목을 졸라 죽이는 것은 너무나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조작 불가능한 일이고, 고인의 저작권과 상속 재산 문제는 이미 민사소송 2건, 형사 소송 1건을 통해 (2008년 6월)확실하게 정리된 사안"이라며 "이상호와 김광복 그리고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 사건 만큼에서는 틀렸다"고 자신했다.

    박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 대해 고발인(이상호·김광복)과 피고발인(서해순) 그리고 자신이 맞붙는 4자 공개 토론을 하자"고 제안하며 토론 장소로 JTBC를 지목하는 배짱 두둑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6억원 상당 손해배상청구·명예훼손 소송 제기


    지난 10일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로 '승기'를 잡은 박 변호사는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태세다. 앞서 페이스북을 통해 "이상호 기자와 김광복씨, 그리고 사실 확인 없이 부화뇌동한 국회의원 등을 상대로 적절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엄포를 놨던 박 변호사는 12일 재차 글을 올려 "오는 13일부터 고발인 등을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먼저 13일 오전 이상호 기자·고발뉴스·김광복씨를 상대로 영화상영 등 금지·비방 금지 등 가처분 신청을 제출하는 한편, 명예훼손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6억원 상당)을 제기한 박 변호사는 14일 오후엔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이상호 기자 등을 형사 고소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