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의 '예측 불가능성' 외교전술에 "미처 몰랐다" 닉슨 감동"협상 하나마나 통일전쟁 재개 요구"...아이크는 미군철수 발표
  • [연재] 이승만史(2) 한미동맹의 탄생 ⑮ 닉슨 방한과 미군 철수

    인 보길 / 뉴데일리 대표, 이승만포럼 대표

    1953년 11월12일 닉슨(Richard Nixon) 미국 부통령이 한국을 찾아왔다.
    휴전협정 조인 100일되는 날, 한미방위조약 조인 후 불과 40여일이 지난 때였다.
    ‘통일 없는 휴전을 결사 반대’하는 이승만을 위협하고 달래서 겨우 휴전을 성립시킨 미국은
    그러나 이승만에게 “정치회담으로 통일을 달성시켜 주겠다”고 장담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90일이내 개최’(휴전협정60조) 한다던 정치회담은 그 마지막 시한 날 10월26일에서야
    겨우 판문점에서 예비접촉을 시작한 참이다.
  • 이승만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예상했던 반격의 기회가 왔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내년 1월1일까지 한국을 통일시키라”고 호통 치면서 
'휴전 방해 안하기' 유예기간을 ‘180일로 연장’시켜준다고 발표하였다.
 ‘90일간만 휴전을 방해않겠다’던 기간을 90일 더 보태주는 아량을 보이며 
 “그 기간내 통일을 못하면 나는 자유행동”한다고 ‘단독북진 전쟁’ 재개를 거듭 공언하였다.
“전쟁 재개땐 미국 지원”을 말하던 이승만은 이제 “우방 지원 없어도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승만이 언제 깰지 모르는 휴전협정은 다시금 원점으로 회귀한 판국이 되어버리자, 
힘겹게 예비접촉이 시작된 직후 아이젠하워는 부통령을 이승만에게 파견한 것이었다. 
벼랑끝전술을 펼치며 원하던 방위조약을 체결해줘도 ‘북진 통일’ 구호는 여전하고
2억달러 원조를 준대도 고집을 안꺾는 ‘통일 병자’ 이승만을 또 제거할 수도 없는 노릇,
당근으로 안 되면 채찍뿐, 아이크는 전에 없이 강력한 친서를 닉슨에게 들려 보냈다.
도착 즉시 경무대로 직행, 이승만을 예방한 닉슨은 2시간쯤 첫 회담을 가졌다.
당시의 풍경을 닉슨 회고록에서 본다. (The Memoirs of Richard Nixon’ 뉴욕, 1978).

[이승만 박사는 마른 체격에 키도 작아 보였다. 감색 양복에 감생 넥타이를 맨 그의 힘찬 악수와 당당한 걸음걸이는 78세(만) 노인으로 믿어지지 않았다.
양복 주머니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서한을 꺼내 그에게 건네며
‘나는 미국대통령의 특사이며 오래된 우정을 한국에 전하러 온 친구’라고 말했다. 
그 동안 이박사는 나를 뚫어질 듯한 시선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집어들었다.
마치 편지의 무게를 재어보는 것처럼 침착하게 본투을 뜯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편지를 소리내어 읽는 것이었다. 
편지에서 아이젠하워는 위엄있고 분명하게 미국은 전쟁재개를 초래하는 어떤 행동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고 이대통령이 이 점을 명백하게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이 박사는 다 읽은 편지를 무릎에 내려놓고 말없이 편지를 한동안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얼굴을 들었을 때 그의 두 눈은 눈물이 어려 반짝거리는 것을 보았다. 
“매우 훌륭한 편지입니다.“ 이 박사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나서 마치 편지 같은 건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 경무대에서 손을 잡은 이승만 대통령과 닉슨 미국부통령.(자료사진)
    ▲ 경무대에서 손을 잡은 이승만 대통령과 닉슨 미국부통령.(자료사진)
    닉슨이 아이크의 요구에 대한 확고한 보장을 요청하자 이승만은 즉답을 피하며 말했다.
    “북한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 동포들을 생각할 때 한민족의 지도자로서 어찌해야 하겠오?
    가능하다면 평화적 방법이 좋겠으나 필요할 경우엔 무력을 써서라도 조국을 통일하여
    민족을 구해야 하지 않겠소? 이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되지 않는단 말이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미국 정책에 부합되지 않는 어떠한 일도 하고 싶지 않은게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분단된 채로는 한국은 물론 미국에도 진정한 평화가 오지 않을뿐더러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라는 '전쟁 평화론'을 노련한 논리로 펼쳐 보였다.
    새파란 젊은이 40세 부통령이 역전 노장 8순노인의 역사적 이야기들을 경청하고 있을 때
    이승만이 미소를 흘리며 얼굴을 가까이 접근시키는 것이었다.

    [이 대통령은 갑자기 내쪽으로 몸을 비스듬히 기울이더니
    “언제가 되든지 내가 어떤 일방적 조치를 취할 때에는 사전에 가장 먼저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통고할 것을 약속하지요.” 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요구한 대잡은 아니었다. 나는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이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합의를 보기 전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단독조치를 취해선 안된다는 방침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단호하게 말하였다.]
    대사관에 돌아온 닉슨은 첫 회담이 소득없이 끝났음을 깨닫고 불안해졌다고 썼다.

  • 백만시민이 닉슨 미부통령을 환송했다는 이한 기사와 환영음악회 기사.ⓒ동아DB
    ▲ 백만시민이 닉슨 미부통령을 환송했다는 이한 기사와 환영음악회 기사.ⓒ동아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