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언론 한국 특파원들이 쓴 ‘조선자본주의공화국’, 중요 기밀은 없어
  • 북한이 지난 8월 31일 중앙재판소 대변인 담화까지 내놓으며 난리를 피운 책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의 표지. 현재 서점에서 판매 중이다. ⓒ뉴데일리
    ▲ 북한이 지난 8월 31일 중앙재판소 대변인 담화까지 내놓으며 난리를 피운 책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의 표지. 현재 서점에서 판매 중이다. ⓒ뉴데일리


    북한이 지난 8월 31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사장, 기자들의 실명을 언급하며 “극형에 처하겠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한 권의 책 소개 기사 때문이었다. 그런데 북한의 협박이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이 보인다.

    北선전매체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8월 31일 보도한 북한 중앙재판소 대변인 담화를 보도했다. 북한 중앙재판소 대변인은 담화에서 지난 8월 18일 출간된 책 ‘조선자본주의공화국(著 다니엘 튜더·제임스 피어슨)’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기사로 소개한 것을 문제 삼았다.

    북한 중앙재판소 대변인은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이라는 책을 가리켜 “다니엘 튜더와 제임스 피어슨이라는 놈팽이들이 2년 전에 탈북자 쓰레기들을 비롯한 어중이떠중이들의 망발을 그러모아 써낸 책”이라며 “공화국은 자본주의 국가보다 돈의 힘이 더 막강하게 작용하는 나라, 돈이 많은 사람은 언제라도 신분이 높은 사람과 결혼할 수 있는 나라로 표현하는 등 치 떨리는 악행을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북한 중앙재판소 대변인은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이라는 책이 북한의 국장(國章) 속 붉은 별을 붉은 달러로 바꾼 것을 표지로 사용한 것을 가리켜 “우리 공화국의 신성한 존엄의 상징인 국장과 국호까지 중상모독한 것은 천추에 용납 못할 특대형 반국가 범죄”라고 주장했다.

    북한 중앙재판소 대변인은 이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사장, 책 소개 기사를 쓴 기자들의 실명을 거론한 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것들은 두 놈의 영국 기자 나부랭이들이 써난 모략도서 내용을 가지고 우리 공화국의 존엄을 엄중히 모독하는 특대형 범죄를 감행했다”면서 “공화국 형법에 따라 이들을 극형에 처한다는 것을 선고한다”고 협박했다.

    북한 중앙재판소 대변인은 “범죄자들은 판결에 항소할 수 없고, 형은 대상이 확인되는 데 따라 임의의 시각에 임의의 장소에서 추가적인 절차 없이 즉시 집행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북한 중앙재판소 대변인은 “우리 공화국의 존엄을 중상모독하는 특대형 도발 행위를 고안해내고 조종한 자들도 끝까지 추적해 더러운 숨통을 무자비하게 끊어놓고야 말 것”이라고 호기를 부렸다.

    북한 중앙재판소 대변인은 이어 한국 정부를 향해서도 “우리 공화국의 존엄을 중상모독한 범죄자들을 지체없이 조사하고 징벌하지 않는다면 그 공범자로 낙인하게 될 것”이라며 “남조선 당국의 태도를 예리하게 주시해볼 것”이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이에 통일부는 북한 중앙재판소 대변인 담화가 공개된 직후 “비상식적인 위협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대변인 성명을 내놨다.

    통일부는 지난 8월 31일 백태현 대변인 명의로 성명을 내고 “북한은 우리 언론인들의 정상적인 활동을 비난하고 해당 언론인들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극형’을 운운했다”며 “언론에 대한 위협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자 내정간섭 행위로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에 기반해야 할 남북관계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이어 “정부는 국가안보와 국민 안전에 대해서는 한 발도 물러서거나 타협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다”면서 “우리 국민의 신변안전보호를 위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 네이버에서 '조선자본주의공화국' 서평기사를 찾은 결과. 그럼에도 북한은 유독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만을 찝어 협박했다. ⓒ네이버 뉴스검색결과 화면캡쳐.
    ▲ 네이버에서 '조선자본주의공화국' 서평기사를 찾은 결과. 그럼에도 북한은 유독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만을 찝어 협박했다. ⓒ네이버 뉴스검색결과 화면캡쳐.


    북한이 이처럼 난리법석을 떤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이라는 책을 살펴봤다. ‘비아북’이라는 출판사에서 출간했으며, 저자는 ‘제임스 피어슨’ 英로이터 통신 서울특파원과 다니엘 튜더 前이코노미스트 한국특파원이었다.

    책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은 ‘북한, 시장을 만나다’ ‘은밀한 여가 생활’ ‘누가 책임자인가?’ ‘죄와 벌(feat. 국가안전보위부)’ ‘옷, 패션, 유행’ ‘휴대전화의 부상, 라디오의 변화’ ‘분화하는 북한 사회’ 등 총 7장으로 구성돼 있다.

    책 내용은 지난 20년 동안 한국에 온 탈북자와 중국 국적을 갖고 한국에 온 북한 화교, 한국 정보기관 등이 국회에 보고한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북한 김정은 집단과 노동당의 부정부패, 썩은 관료조직, 북한 주민들의 고단한 일상, 외부 정보가 통제된 사회, 돈으로 계급이 매겨지는 현실 등을 그대로 설명했다.

    웃기는 점은 이 책을 소개하는 기사를 쓴 언론사는 20여 곳으로, 이 중에는 지방 일간지와 공중파, 종편 방송,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같은 소위 ‘진보매체’까지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북한 중앙재판소 대변인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만 콕 집어 협박했다. 조선일보는 책 소개 기사를 당일 지면에는 싣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북한 중앙재판소 대변인이 책 소개 기사에 대해 반발하며 ‘극형’ 운운하는 협박을 하고, 여기에 통일부가 나서 “우리 국민 건들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지난 8월 31일부터는 국내 주요 언론들이 대부분 ‘조선자본주의공화국’에 대한 기사를 내놓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저 책을 좋아해서 일부러 협박한 거 아니냐”거나 “북한은 한국 상황을 파악할 때 간첩이 아니라 자원봉사자와 인터넷만 사용하느냐, 그게 나라냐”는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