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녘의 핵미사일과 함께 8·15를 맞다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어김없이 올해도 다시 또 8월 15일을 맞는다. 
      벌써 삼십 수년 전의 일이다.
    정당한 사유로 병역특례를 인정받아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회사에 취직한 친구 녀석이
    술좌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 “8월 15일이 ‘노는 날’인지 난생 처음 알았어!”
    이유야 간단했다. 학창시절에는 늘 상 여름방학 중에 8·15를 맞았기 때문이다.
     맞다! 8월 15일은 공휴일(公休日)이다. 그러나 단순히 ‘노는 날’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잘 안다.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1945년은 그렇다 치고 1948년의 8월 15일을 두고
    이 나라의 ‘건국일’(建國日)에 대한 논란이 또 어디에선가 벌어지고 있다.
    그 날이 ‘건국일’이 아니라는 식상한 장타령·장광설이 이맘때쯤이면 언제나 여기저기서 나돌 곤 한다. “2019년이 건국 100주년”을 당당하게 외친다.
      영토와 주권도 빼앗기고 덩그렇게 불쌍한 백성들만 압제(壓制)에 시달리고 있던 시절에 나라가 세워졌었다고 우기는 건 아무래도 곡절이 있을 듯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주장을 하시는 분들이 이 나라 요소요소에서 아주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절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분들 중의 상당수는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대한민국의 역정이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단정하신 분의 말씀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받들고 있다. 
      결국은 ‘1948년 8월 15일이 건국일’인 대한민국이 싫고, 역사책에서 지우고 싶다는 표현에 다름 아닐 것이다.
  •   “이 나라에 위기의 시대가 아닌 적이 언제 있었느냐”는 말마따나,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대한민국은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여정(旅程)을 걸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위기의 근본’에는 항상 ‘공산전체주의’가 자리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왜? 대한민국은 반공(反共)의 토대 위에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건국되었기 때문이다.
      ‘공산전체주의자’들은 해방이 되자 이 땅에 공산독재 실현을 획책하였다.
    그러나 이미 ‘공산전체주의의 정체’를 깨달았던 지도자들과 그를 따랐던 백성들의 피나는 투쟁에 의해 저지되었다. 그리고는 공산전체주의를 거부하고, 음울한 대륙문명권에서 벗어나 해양문명을 맞고자한 대한민국의 건국을 저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방해하였다. 이 방해를 뚫고 대한민국이 건국되자, 전쟁으로 신생(新生) 대한민국을 지구상에서 없애버리려 했다.
      이 또한 실패로 돌아갔지만, 북녘에서는 ‘공산전체주의 세습독재’가 여전하다.
    핵미사일을 손아귀에 쥔 채, 그것을 지렛대로 그 ‘세습독재’를 영구히 보전하기 위한 ‘한반도 적화통일’ 책략을 계속하고 있다.

      위의 모든 과정에서 항상 저들과 내통(內通), 그리고 추종(追從)·굴종(屈從)하는 꼭두각시와
    얼간이 세력이 있어왔고, 지금도 이 나라에는 건재(健在)하다. 아니 건재하다 못해 활갯짓을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체제 경쟁은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이미 판가름이 났음을 북한은 이제야 깨닫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대한민국이 수립될 때 문명사적 가치인 주권재민(主權在民)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적 정치 체제를, 그리고 사적 소유권과 시장경제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채택했을 때 이미 판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어느 현자(賢者)가 설파했다지만... 

      쉼 없는 위기는 오늘도 진행형이다. 그런데 6·25전쟁 이후 그간 계속 이어져 온
     거의 일상화된 위기와는 그 성격과 크기가 확연하게 다르다. 
      이 땅을 전부 ‘적화’(赤化)하기 위해 양키나라에 엉겨 붙는 북녘 세습독재의 ‘매를 버는’ 도발이 험악하게 잦아지고 있다. 북녘 세습독재정권의 “괌 포위 사격”과 양키나라 ‘도’통령의 “군사적 해법 장전 완료”로 상징되는, 이 나라 앞에 닥친 상황은 가히 ‘3엄’이라 할 수 있다. 

    ‘엄혹’[嚴酷:일이나 상황이 매우 엄하고 철저하여 모질다],
    ‘엄중’[嚴重:용서할 수 없을 만큼 중대하다],
    ‘엄청’[양이나 정도가 짐작이나 생각보다 많거나 대단하다]의 집약이다.
     
  실제 핵미사일과 포탄이 날아다니고 ‘불바다’를 눈과 몸으로 확인할 가능성이 없다고 장담할
계제가 아니다. 혹여 “말을 하는 자 계략을 꾸미지 않고, 계략을 꾸미는 자 말을 하지 않는다”거나,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말이 그대로 들어맞아 설사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치더라도 이미 위기는 이 나라 존망을 가름할 수준에 와있다.
가장 큰 원인과 이유는 바로 이 나라 안에 도사리고 있고, ‘우리들’ 안에 있다. 

  물론 와중에서 말리는 미운 시누이의 눈치를 봐야하는 ‘낀 나라’의 애환도 깊어만 간다.
며칠 전, 뛔국의 외교부장이라는 작자가 이 나라의 ‘사드’(THAAD)배치에 대해
“한국이 안보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만, 한국의 관심사가 중국의 불안을 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복장 터지는 모욕을 줬음에도, 이 나라 외교장관은 제대로 대꾸마저 못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중국이 불안해하는 걸 이해하지만, 중국의 불안이 한국의 안보를 해쳐서는 안 된다”고 따졌어야 했다]

  그해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아서는 독립국가를 세워야한다는 희망과 열정이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비록 분단의 상처 위에 세웠다하더라도 내 나라를 갖게 되었던 1948년 8월 15일에는 부강한 국가, 통일된 조국에 대한 열망과 감투정신으로 충만했다.
  6·25전란과 뒤 이은 정치적 혼란을 극복한 후에는 경제 건설에 매진하여 조국 중흥의 의욕과 자신감에 넘쳐 있었고, 자유통일의 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노력도 할 수 있었다. 동서냉전의 한 복판에서 평화통일 구상을 밝히면서 북녘 공산독재를 향해 담대한 제안을 했다.
  •   『...북한 공산집단에 대하여 “더 이상 무고한 북한 동포들의 민생을 희생시키면서 전쟁 준비에 광분하는 죄악을 범하지 말고, 보다 선의의 경쟁, 즉 다시 말하면 민주주의와 공산독재의 그 어느 체제가 국민을 더 잘 살 수 있게 할 수 있으며, 더 잘 살 수 있는 여건을 가진 사회인가를 입증하는 개발과 건설과 창조의 경쟁에 나설 용의는 없는가”하는 것을 묻고 싶은 것입니다...』 <1970년 8·15 경축사 중에서>

      그·러·나...
      “...나는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인위적인 통일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통일은 쌍방이 공존공영하면서 민족공동체를 회복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통일은 평화가 정착되면 언젠가 남북 간의 합의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일입니다. 나와 우리 정부가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평화입니다...”
      이 메시지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국제사회는 너무도 잘 알 것이다. ‘민의(民意)의 전당’에서도 이런 말씀이 들려온다. “가장 정의롭지 못한 평화라도 가장 정의로운 전쟁보다는 낫다”
      그리고는 이렇게 방향을 잡았나 보다. 
      “북핵 문제는 미국과 중국 등 국제사회의 주도적 노력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 정부도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긴장을 완화시키는데 노력하고 있다” 
      오늘 해방 72년, 건국 69년의 8월 15일에는, 위기 극복의 핵심이며 이 나라 미래의 청사진이 될 ‘자유통일’을 주도적으로 기획·설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형편이 되었다. 약간의 물질적 풍요 속에 의식의 불안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이 나라 앞에 닥친 상황·정세·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결연한 지도력과 올바른 따름의 자세는 아예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과문한 탓인지 앞으로 이 나라가 잘 될 것이라는,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나
    큰 바램을 갖는 국민은 거의 없는 듯하다. 그저 이쯤에서 시류대로 살고 지고가 만연하고 있는
    증거들을 찾는 게 어렵지 않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했다는 평가를 뒤로한 채, 곳간을 불리려는 노력은 아예 포기한 듯하고, 어떻게 하면 생색을 내면서 ‘지능적으로’ 곳간을 털어먹을까 하는 궁리만 요란하다. 
      비록 여론조사라지만,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 했느냐 따위를 추궁 당하지 않는다”는 어느 선동 전문가의 말을 그대로 실행하겠다는 듯...

      “내 생애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한 적이 없다”··· 아무개 일간신문 기사 중에 나온 내용이다. 어느 대학생이 작금의 이 나라 상황에 대해 소감을 말했다고 한다. 요즈음 이 나라에서는 ‘경험에 의해 계몽된 적이 없는’ 젊은이들에게 정치적 목적을 위해 추파(秋波)만을 던졌을 뿐이다. 
      냉엄한 국제정치와 안보 현실·정세를 젊은이들에게 얘기하는 순간 표(票)가 떨어진다.
    ‘상무정신’(尙武精神)은 역사책에서나 찾을 수 있는 고리타분한 단어다.
    그 뜻도 아마 ‘기업체에서 상무이사(常務理事)가 전무이사(專務理事)로 승진하기 위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 정도로 알고 있지나 않은지.
  •   ‘8월 15일’의 역사. 때론 고난으로 가득 찼고 혹은 환희와 희망으로 다가왔던 그걸 잊는다면, “이 나라는 다시 근·현대사의 질곡을 재현하게 될 것이다”라고 누군가는 외쳐야 한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어가는 유태인이 피로써 쓴 글이라고 한다. 아울러서...

      ‘가장 정의롭지 못한 평화라도’를 외치는 저들이 엄청나게 증오하는 분이지만, 저들도 이 나라 위기 앞에서는 한 번 쯤은 돌아봐야 할 말씀이다.

      “우리 백성이 다 죽어 없어질지언정 남에게 우리나라가 예속되어 노예는 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국민이 다 합심하여 죽기로써 우리 국토를 지켜 나가면 하늘이 우리를 돕고, 또 따라서 세계의 공론이 우리를 따를 것이니, 우리 국민은 다 이렇게 할 것을 맹세하고 나라를 지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  = 『JAPAN INSIDE OUT』 한국어판 서문<단기 4287년[서기 1954년] 8월>
    <더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