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이승만 史](2) 한미동맹의 탄생  프롤로그

    인 보길 /뉴데일리 대표, 이승만 포럼 공동대표

    “진작부터 이럴 줄 알았다. 내가 뭐라 했더냐?
    북한과 중국에 공산당이 있는 한 평화는 없다고 하지 않더냐?“
    전운이 감도는 요즘, 천둥치는 하늘에서 이승만의 불호령이 쏟아지는 듯 하다.
    “휴전은 무효다. 하루빨리 파기할수록 좋다. 당장 북한공산당을 몰아내고
    중국 대륙에 진격하여 공산정권을 영원히 말살하라.
    안그러면 재무장한 적들에게 미국은 두고두고 피를 흘려야 할 것이다.”
    휴전협정과 한미동맹이 조인된 다음해 미국을 공식방문한 이승만은
    미국국회에서 자유통일을 호소하는 폭탄발언을 퍼부었다.
    (1954년 7월28일 미국회양원합동회의 연설).
    ‘통일 없는 휴전을 결사반대’한 이승만은 정전협정에도 서명하기를 거부하였다.
    언제라도 ‘단독북진’ 기회를 열어두는 것은 물론, 한국군의 단독북진 전쟁을 겁내는
    미군을 이땅에 오래 붙잡아두려는 묘수(妙手), 미국도 처음엔 이걸 이해못하였다.
    이승만은 그렇게 동북아의 평화구조를 탄탄히 만들어낸 것이었다.

  • 미국 대통령 당선자 아이젠하워는 1952년 겨울 서울로 날아와 휴전을 반대하는 이승만을 만났다.(경무대)
    ▲ 미국 대통령 당선자 아이젠하워는 1952년 겨울 서울로 날아와 휴전을 반대하는 이승만을 만났다.(경무대)
    평화가 너무 오래 길었던가. 이승만의 걱정대로 적들은 미국과 맞먹으려 덤빈다.
    지금 미국과 중국은 6.25전쟁이래 두 번째 전쟁위기로 치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지 두달도 안되는 사이에 7번이나 탄도미사일을 쏜 북한 공산당,
    이를 말리기는커녕 중국의 공산당주석 시진핑은 전투복을 입고 핵미사일등 신무기를 총동원하여  ‘6.25는 중국-북한 동맹의 승리’라며 미국에 무력쇼를 과시하고 있다.
    벼랑으로 몰리는 한미동맹, 이승만 평화체제의 수명이 여기까지일 수는 없는 일..
    6.25때 중국이 참전하자 일방적으로 휴전을 강요하는 미국과 정면투쟁을 벌인 이승만,
    “통일 없는 휴전은 결사반대”라며 “미국이 잘라놓은 한반도를 통일시켜놓고 가라”고
    혼자서 육탄전을 벌였다. “말 안들으면 죽이겠다”는 이승만 제거작전 ‘Ever-Ready Plan’에도
    아랑곳없이 “죽일테면 죽여라. 갈 테면 가라. 우리 운명은 우리가 결정한다”고 버티었다.
    미리 준비한 회심의 일격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하자 결국 미국이 굴복하면서
    ‘꿩 대신 닭’ 통일 대신 얻어낸 것이 한미동맹이다.
    “이 조약으로 우리 후손은 번영을 누리리라”던 이승만의 예언처럼
    대한민국은 산업화 민주화의 기적을 이루어 북한을 제압하였으며,
    청일전쟁-러일전쟁-한일병탄-만주사변-중일전쟁-태평양전쟁-6.25전쟁으로 이어진
    화약고의 주인공들 일본과 중국과 러시아까지 동아시아는 65년째 평화와  번영을 누려왔다.
    이승만의 신념과 예지가 만든 평화구조는 ‘이승만 평화체제’라 불러 마땅하다.
    벼랑끝 외교-불가능이라던 한미동맹을 성공시킨 이승만 드라마에 연구자들이 붙인 이름이다.
  • 왕정개혁을 외치다 한성감옥에 갇혀 고문당하던 사형수 24세 이승만.(자료사진)
    ▲ 왕정개혁을 외치다 한성감옥에 갇혀 고문당하던 사형수 24세 이승만.(자료사진)
    이승만의 ‘벼랑끝 전술’은 그러나 한미동맹 협상에만 나타난 단막극이 아니다.
    그의 생애자체가 벼랑끝의 연속이었다. 20세때 백재학당에 들어가 미국식 자유민주의에 눈을 뜬 이래 조선 왕정개혁을 위한 거리투쟁과 언론투쟁이 그러하였고, 24세때 한성감옥에 투옥되어
    사형수와 종신수란 극한적 수형과정에서 체득한 기독교 성령이 빚어낸 종교적 카리스마,
    그리고 미국 동부 아이비리그 명문의 학사(조지워싱턴) 석사(하바드) 박사(프린스턴)를 단 5년만에 쟁취한 것은 ‘벼랑끝 사명감’에 미친 청년 독립투사의 꺾일 줄 모르는 열정이었다. 
    동서양 최고 학문과 국제정치적 소양으로 무장한  글로벌 엘리트 지도자로 거듭난
    그의 카리스마는 3.1운동후 3곳의 임시정부 수장으로 선택받았고,
    해방후 전국민이 “이승만을 빨리 불러오라”고 미국을 독촉하여 기어이 건국대통령으로 선출하지 않았던가. 벼랑끝 조국을 구하려 벼랑끝 삶을 단련한 이승만의 벼랑끝 해결사 카리스마는
    하늘이 이 땅에 내려준 축복이라 하겠다.
  • 1910년 한일병탄 직전 미국 명문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35세 이승만.(자료사진)
    ▲ 1910년 한일병탄 직전 미국 명문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35세 이승만.(자료사진)


◆ 3개의 ‘벼랑끝 드라마’
독립투쟁 40년은 제쳐두고라도 대한민국 건국-호국과정에서 드러난 이승만표 ‘외교 독립론’의
결정판, 벼랑끝 투쟁의 성공사례 3개 장면을 간추려보자.
.
(1) 남북한 좌우합작 반대, 미국-소련과 싸워 ‘자유민주 공화국’을 만들어내다
해방과 동시에 뜻밖의 분단(38선) 조국을 물려받은 이승만의 목표는 물론 통일독립국 건설.
북한을 점령한 소련이 재빨리 소비에트 위성국(소위 ‘민주기지’)을 세우고 미국과 남한적화협상(미소공동위원회)을 벌이자 이에 분격한 이승만은 남한만이라도 ‘자유기지’ 구축(정읍 발언)을
추진한다. 좌우협상파 김구를 앞세워 이름만의 ‘통일정부’를 세워주고 철수하려는 미국은
이승만을 가택연금, 방송금지, 연설금지, 심지어 전화선까지 끊어 고립시킨다.
수차례 암살기도를 모면하며 미국으로 뛰어간 이승만은 때마침 반소정책(트루먼 독트린)으로
돌아선 미국에게 ‘유엔을 통한 남북총선거’란 해결책을 제시, 평생 갈고 닦은 외교독립론을 성공시킨다.
해방후 3년간이야말로 진짜 독립운동 기간, 미국의 이기주의와 소련의 침략주의와 싸우고 싸워야했던 건국투쟁, 동지였던 임정세력마저 우왕좌왕 한사코 건국을 반대하는 가운데,
온전히 이승만 혼자 싸운 ‘1인투쟁’이 거둔 승리가 자유민주공화국 대한민국 건국이다. 
  • 중국인으로 변장하고 시체운송선에 숨어 상해 임시정부로 가던때 대한민국 임시대통령 이승만(1920년 45세)
    ▲ 중국인으로 변장하고 시체운송선에 숨어 상해 임시정부로 가던때 대한민국 임시대통령 이승만(1920년 45세)


  • (2) 휴전 반대 이승만을 제거하려는 미국...‘대통령 직선제’로 내정간섭 원천봉쇄 성공
    유명한 부산정치파동(1952년)의 진실은 재조명돼야 한다.
    일찍이 이승만의 정적(政敵)들은 부산정치파동을 ‘독재의 출발’로 낙인찍었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미국의 내정간섭을 막아 미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투쟁이었다.
    제헌헌법에 국회간선제이던 대통령 선출방법을 국민 직선제로 바꾼 개헌파동,
    그것은 미국과 손을 잡고 권력을 잡으려는 정객들에게 독립국가의 정체(政体)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해야할 의무를 요구하는 사건이다.
    공산당과 전쟁중에 미국-야당 야합세력과 싸운 부산 정치파동은 이승만의 말처럼
     “내 평생 마지막 꿈” 미국식 자유민주체제를 확립하여 강대국의 내정간섭으로부터 국가를 지키려는 ‘정치독립전쟁’그것었다고 믿어야한다. 미국말 잘 듣는 정치인을 골라 국회선거로 대통령 삼아 전쟁을 끝내고 철수하려는 미국을 보기좋게 굴복시켜 버리고 얻어낸 직선제 발췌개헌,
    이때를 놓쳤다면 한국 정치판은 ‘미국의 꼭두각시’ 신세로 전락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박정희시대 이래 좌파운동권의 구호 ‘민주화’는 바로 65년전 이승만이 미국과 싸워 선취한
    ‘직선제 민주화 혁명’ 아니겠는가. 이번에도 그는 기획-연출-주역 ‘1인 3역’을 감당하여
    미국을 이겨냈다.<연재 ‘이승만史(1) 부산정치파동’을 참조할 것>
  • 해방후 유명한 연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를 부르짖는 이승만.(자료사진)
    ▲ 해방후 유명한 연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를 부르짖는 이승만.(자료사진)
    (3) 목숨 건 통일 절규! 배신당했던 ‘한미동맹’의 한을 풀어내다
    한미동맹의 핵심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원조는 1882년 서구 강대국 처음으로 미국과 맺은
     ’조미수호조약‘이다. 1904년 러일전쟁후 미국은 이 조약을 무시하고 러시아 지배권의 조선을
    승전국 일본의 ’보호국‘으로 묵인한다(1905 가쓰라-태프트 밀약).
    조미수호조약에 매달려 구원을 간청했던 고종황제는 끝내 나라를 잃었으나(을사늑약)
    그 43년후 이승만은 기어코 한미동맹을 체결함으로써 통쾌한 복수를 했다 하겠다. 
    약육강식의 패권주의 정글에서 최강국 미국을 사로잡은 약소국의 리더 이승만의 지략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의 승리로서 진작 우리 학계의 연구를 통하여 세기적 외교 모델로
    재정립되었어야 할 약소민족사의 명품이다.
  • 한국인의 가장 완벽한 민족전체성의 소유자 이승만 건국대통령.
    ▲ 한국인의 가장 완벽한 민족전체성의 소유자 이승만 건국대통령.
    월남 망국의 망령까지 재등장...또 대한민국이 ‘제물’일 순 없다
    7월이 가고 8월이다. 대한민국의 7-8월은 역사적 운명의 계절이다. 
    민족사상 최초의 총선거로 탄생한 국회가 최초의 자유민주 헌법을 제정 공포한 제헌절(7월17일), 사흘 후엔 대통령을 국회서 선출하고 24일엔 최초의 자유민주국가 대통령이 취임식을 거행한다. 3.1운동후 잉태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유산(流産)과 사산(死産)의 고비고비를 넘고 넘어 마침내 독립국가 대한민국을 출산, 8월15일 세계를 향하여 출생신고, 건국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건국만으로 건국이 아니다. 정치적 독립을 확보한 대통령 직선제 헌법이 탄생된 것도 7월 7일,
    사상최초의 직선제 선거 8월5일(1952년), 첫 민선대통령 취임식이 광복절로 명명된 건국기념일
    8월15일, 그리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날이 8월8일이다. 
    이와 같이 영광스런 민족사의 8월에 우리 운명은 다시금 강대국들의 손에 매달린 정세다..
    트럼프와 아베가 머리를 맞대고 남북한 바둑돌을 주무르는데 한국 대통령과 여야지도층은
    여름 휴가 중이다. 월남 망국의 망령 같은 키신저까지 나타나 “북한핵 해결엔 중국을 달래는
    미군철수 카드가 필요할 것‘이란 망발을 서슴치 않고 있다. 올해 95세의 노망인가.
    수천만 자유월남민을 공산당 월맹(북베트남)에 넘겨주고 자신은 노벨 평화상을 받은 그의 눈에는 이승만의 한미동맹 품에서 G20 경제강국으로 성장한 자유세계의 보물 대한민국이 중국 공산당
    입에 던져넣어도 좋을 협상의 미끼로만 보이는 모양이다. 
    설마 이러다 김일성의 환상이 현실화 되는 건 아닌지, 월남식 베트콩(베트남 해방 민족전선)에
    의한 적화통일을 기획한 김일성은 남한에 남민전(남조선해방민족전선)을 조직하여 민중봉기를
    연습하는 한편 핵개발에 올인하였다. 김대중 정권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남한의 퍼주기에 힘입어 완성된 핵과 미사일을 양손에 든 김정은의 협박공갈에 미국-일본-중국이 ‘구한말의 천벌’을 재현하기 시작한 벼랑끝 대한민국...그럴 수는 없다. 월남에 이승만이 있었다면 월남은 망하지 않았다는 미국 지도자들의 말처럼, 그동안 대한민국이 이승만 정신을 본받았다면 이런 지경까지 밀려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 하와이 병상의 90세 이승만.
    ▲ 하와이 병상의 90세 이승만.
    1965년 하와이에서 귀국을 열망하던 90세 이승만은 날마다 이런 말을 했다고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남북통일을 하려는 이가 있나?
    아, 이승만이가 한바탕 했으면 또 누가 나서서 해야 하지 않겠어?.
    죽어도 내 소원은 백두산까지 걸어가는 것이야.”.

    부끄럽다. 통일정책이랍시고 무조건 대화, 퍼주기, 연방제, 우리민족끼리 운운
    북한과 중국 공작에 놀아나는 오합지졸들의 불장난이 되풀이되는 치욕스런 정치판,
    모두가 자업자득이다. 이럴 때 이승만이라면 무슨 ‘벼랑끝 카드’를 꺼내들었을까.
    보고 또 봐도 스릴 넘치는 ‘한미동맹’ 드라마를 다시 보면서 ‘이승만 평화체제’를 무너트리려는 ‘내부의 적’부터 온몸으로 막아내야 할 때이다.
    오늘부터 연재할 [이승만史(2) 한미동맹의 탄생]편에서는 잘 알려진 한미상호조약 협상과정과
    군사동맹 전후 사정에 대하여 그동안 잊었던 자료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싶다.
    북한공산당과 국내 좌파들의 이승만 죽이기에 덩달아 춤추는 싸가지 없는 깡통들, 전쟁보다 평화라며 이승만 평화체제에 도끼질 하는 반동들, 자신들을 지켜주는 ‘안보 만리장성’ 한미동맹을
    누가 어떻게 만든 것인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