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자들의 대표' 국회의 부름을 공직자가 거부할 수 있는가
  •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18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강경화 외교부장관 임명장 수여식에 앞서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18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강경화 외교부장관 임명장 수여식에 앞서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연풍문(청와대 위민관 입구)에서 바라보는 여의도가 뿌옇다. 강경화 외교부장관후보자 임명 강행으로 촉발된 정국 경색의 탈출로가 보이지 않는다.

    정국이 얼어붙게 된데에는 장관후보자의 임명 강행,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요건 논란 등 여러 원인이 있지만,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회 운영위 출석 여부도 쟁점 중의 하나다.

    국민의 높은 기대 속에 출범한 새 정부의 스텝이 꼬이게 한 것은 인사검증의 실패다. 조국 민정수석과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인간적 인연을 이어간 안경환 법무부장관후보자가 낙마했다. 이외에도 여러 장관후보자들이 구설수에 휘말려 있다.

    김상곤·송영무·조대엽 등 이들 후보자들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는 불분명하지만 이번에도 국회에서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한다면, 협치를 공언한 대통령이 번번이 '강행 임명'을 하는 것도 정치적인 부담이다.

    이러한 난맥상이 일어나게 된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해법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의대표로 구성된 국회에서, 과연 '검증 라인'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당사자를 불러 알아보자는데 논란이 일고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회 불출석이 관례라는 것이다. '관례' 두 글자가 새 정부의 출범에 따라 한창 일해야 할 국회의 공전을 부르고, 청와대에 초조감을 안겨주고 있다.

    국회란 '대표 없는 곳에 세금 없다'는 원칙 하에 개설됐다. 국회의원은 납세자들의 대표다. 국민의 혈세로 급여를 받는 공직자라면, 누구라도 납세자들의 대표로부터의 출석 요청을 거부할 명분이 없다.

    내가 낸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 공직자가 하고 있는 일에 무슨 문제가 발생한 것인지 물어보는 것은 납세자의 권리다. 다만 국민 모두의 물음에 일일이 답할 수 없으니, 애써 총선을 치러 대의대표를 뽑았다. 이들의 출석 요청에 불응한다면, 선거를 치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물론 국회도 아무나 마구 부를 수는 없다.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사법부의 독립된 권한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면, 국회의 출석 요청도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 공소가 이미 제기된 증인들이 각종 청문회의 출석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회 출석 거부는 헌법이나 법률에도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저 관례라는 것이다. 아무런 근거규정이 없는 '관례' 두 글자만으로 민정수석이 번번이 국회 출석을 거부하고, 정쟁의 소재가 되는 악순환의 사슬은 이제 끊어내야 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박근혜정권을 실패의 나락으로 한창 몰고갈 때,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회 출석이 논란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이 때도 관례라는 이유로 출석을 완강히 거부했지만, 결과론적으로 그것이 정권의 실패를 막아내진 못했다.

    2년 전인 2015년 초에는 김영한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회 운영위 출석 요구가 있었다.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이 한창이던 이 때 차라리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출석했더라면 사태를 '호미'에서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국회 출석을 거부해 사태는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나중에 더 크게 터졌다. 사태의 확산에는 고인이 된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도 한몫 했다. 정권의 몰락은 '가래'로도 막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국회에 세 차례나 출석한 전례가 있다. 국회 운영위의 청와대비서실 국정감사에도 직접 출석했다. 대통령이 민정수석 시절에 했던 '아름다운 모범'을 따라 이제는 조국 민정수석이 스스로 결단해 새로운 관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민정수석이 인사와 관련된 사항으로 국회에 출석했다가 질의 과정에서 검증대상자의 무분별한 명예훼손이 우려된다면, 정보위에 준해 비공개로 진행한 뒤 정제된 내용만 4당 간사가 브리핑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여야가 정권교체에 따라 공수만 뒤바뀐 채 민정수석이 국회에 나오느니, 못 나오느니 하는 문제로 다툼을 벌이는 것은 전형적인 낭비적 정쟁이다. 법학자 출신인 조국 민정수석이 법적 근거 없는 관례의 악순환을 과감히 끊어내주기를 기대해본다.